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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Mar 02.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리뷰 _ homo eruditio #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_ 룰루 밀러 지음 / 2021 / 곰출판


생선을 보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 도발적인 책 제목이 은유 혹은 비유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더랬다. 제목을 보고는 아마도 환경을 다룰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읽고 나니 이런 책은 무슨 장르에 속한다고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소설은 확실히 아니었고 그렇다고 에세이나 전기, 생명과학서, 혹은 르포 같은 하나의 타이틀을 달아주기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다 이 책에는 장르의 꼬리표를 붙여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류에 끼어 맞추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것", 즉, “분류에서 해방되는 것" 말이다. 


나는 아직도 물고기가 있는 세상에서 생선회, 생선구이를 먹으며 산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임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을 누구나 자신의 알 하나를 깰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룰루 밀러의 이야기 


일곱 살 즈음, 가족여행에서 그녀가 아빠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었을 때, 아빠는 그녀에게 말했다. “인생은 의미가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운명도, 계획도 없어….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너한테는 네가 중요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어.” 


만약 지금의 그녀라면, 나라면 이 말을 삶을 더 자유롭게 즐기고 살라는 말로 들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곱 살 소녀는 “너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라는 충격적인 말로 이해했다고 한다. 밀러는 가정사의 맥락, 개인의 연애사의 맥락에서 불안 불안하게 흔들리며 성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착(떠난 남자 친구가 돌아오는 것)을 붙들어 줄, 의지를 북돋아 줄 인생 멘토로서 데이비드 조던이라는 사람을 선택했다. 


데이비드 조던의 이야기


별을 좋아하던 소년 데이비드는 커서 어류 분류학자가 되었고,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 되었다. 룰루 밀러가 그를 멘토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데에는 지진으로 인해 모두 깨져 버린 물고기 표본들이 바닥에 흩어져 썩어가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고기들에게 물을 들이부어가며, 물고기 배에 이름을 바늘로 꿰매어가며 지키려 한 그의 투지를 잘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의 목적, 성취를 향한 열망은 누군가에게 그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매력적이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룰루 밀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우생학자로서의 그의 차별적 관점, 행적적 비리, 살인 범죄 연류에도 닿았다. 밀러가 보여 준 조던의 삶을 조각들을 줍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면이 있다. 사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과연 우리가 단면의 특성을 가지고 대상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것은 타당할까? 


상식을 넘어. 물고기를 넘어. 


책의 막바지에서 밀러는 1980년대 분류학자들이 분기학자들에 의해 깨달은, 혹은 직면한 현실의 한 곳에 닿았다. 그 사실은 바로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명의 나무로 본 가지의 어디에도 물속에 산다는 이유로 그 많은 해양 생명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분류로 둘 타당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산에 산다고 산새, 산곤충, 산짐승을 하나로 분류하는 것이 이상하듯이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고, 과학이 그게 적당한 분류가 아니라고 함에도 그 차이를 덮고 그 복잡성과 섬세함을 깎아내리며 우리는 관습적으로 물고기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만약 어류라는 분류를 내려놓으면, 우리는 어디에 가 닿게 될 수 있을까? 


룰루 밀러가 물고기라는 기존의 알의 경계를 깨고 가 닿은 곳에는 그의 관점의 변화, 삶의 확장이 있었다. 그녀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음을 알려주는 책의 에필로그는 책에서 직접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휴리스틱. 우리가 단편을 보고 믿어왔던, 정의해 왔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고무적이다. 그런데 심지어 문장과 구성이 매우 유려하다. 이런 글을 한번 쯤은 쓰고 싶어지게 할 만큼. 그러니 책이, 독서가 매우 가치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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