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미국 월마트 쇼핑카트 속의 문화 충격

왈마트에서 만난 또 다른 미국

by 김세원

호텔에서 내가 계약한 집으로 옮기는 날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키 카드를 손에 쥔 채 마지막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3일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공간이 어느새 익숙한 생활의 흔적을 머금고 있었다.

로비로 내려가 프런트 직원에게 방 키를 건네며 체크아웃을 했다.
그 순간, 이제 진짜 떠나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프런트 뒤로 조용히 흐르는 음악, 낮게 깔린 조명, 익숙해진 카펫 무늬, 은은한 호텔 향기까지. 단 3일이었지만, 그 공간과 조용히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가방을 든 손이 조금은 가벼웠다.
아마 오늘이, 내가 계약한 집으로 처음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만들어주셨던 날.
새 책상에 앉아 연필꽂이를 정리하고, 내 이름이 적힌 서랍에 노트를 차곡차곡 넣으며 괜히 혼자 뿌듯해했던 기억. 내 방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 종일 설렜던 그 어린 날의 감정이, 지금의 나에게 고스란히 겹쳐졌다.

아파트 단지 안은 처음 왔을 때보다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씩 학생들이 돌아왔는지, 주차된 차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누군가의 방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이제 정말 미국에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실감을 더하게 만들었다.

양손에는 무거운 캐리어 두 개, 어깨에는 큼직한 가방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랐다.
현관 앞에 도착해, 어깨에 멘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 조심스럽게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 쪽에서 요리를 하며 TV를 보고 있던 두 사람이 내가 들어서는 걸 보고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곧 웃으며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Are you the new roommate?”

(새 룸메이트이신가요?)

“Yeah, my name is Yoosuk. Nice to meet you!”

(네, 제 이름은 유석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이름을 들은 두 사람은 살짝 멈칫하는 눈치였다.
조금은 생소했던 이름이었는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발음을 되새기듯 조심스럽게 따라 하며, 정확하게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 마음이 괜히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순간, ‘아, 나도 이제 여기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름을 물었고, 두 사람은 재미있는 룸메이트가 생겼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제이크와 크리스였다. 낯설지만 반가운 이름들이었다.
제이크는 키가 약 180cm쯤 되어 보였고, 금발에 가까운 밝은 갈색 머리를 짧게 정리해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말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또렷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크리스는 환하게 잘 웃는 얼굴에, 밝게 웃는 얼굴 속에 장난기 어린 분위기가 묻어났다.
갈색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기고, 말할 때마다 손짓과 표정이 풍부해서, 딱 봐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입학하게 될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보다 2년 먼저 입학해서 이 지역 생활에도 익숙한 듯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이름을 소개한 뒤, 내가 다시 양손에 든 가방을 들고 오려고 몸을 돌리자, 제이크와 크리스는 자연스럽게 한 명씩 캐리어를 들어주며 내 방까지 함께 걸어왔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방문을 열자, 기본적인 가구만 놓여 있는 조금 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에서 내 방으로 걸어오는 동안 두 친구의 방을 흘끗 봤을 때는 뭔가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었기에, 내 방은 유독 더 텅 빈 느낌이었다.
그때 크리스가 방안을 둘러보며 뭔가를 제안하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고, 혹시나 이런 상황이 올까 싶어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Actually, my English is not good. Can you maybe write it down?"

(사실 나 영어 좀 서툴러서… 혹시 적어줄 수 있어?)
그러면서 핸드폰 메모 앱을 열어 건넸다. 크리스는 웃으며 흔쾌히 받아들었고, 열심히 무언가를 타이핑했다.
그가 써준 문장은 이랬다.

“Looking at your room, it seems like you need to go shopping too. I was actually planning to go since Walmart nearby is having a sale on bullets. Wanna come with me?”

(네 방 보니까 너도 뭐 좀 사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나도 가려던 참이었어, 근처 월마트에서 총알 세일하거든. 같이 갈래?)

나는 그 문장을 읽고 ‘bullets’라는 단어에서 깜짝 놀랐다. 총알?!
내가 아는 바로 그 총알이 맞나? 대학생이 월마트에 총알을 사러 간다고?
크리스를 향해 손가락 총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하며,
"Bullets? Like... real bullets?"

(총알? 설마… 진짜 총알 말하는 거야?)
하고 다시 확인하자, 크리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방에서 총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는 사격이 취미라며 자주 연습하러 간다고 했다.
그 순간, 놀라움과 당혹감이 뒤섞여 마음이 뒤숭숭했다.
크리스의 익숙한 듯한 태도에 신기함이 들면서도, 대학생이 총알을 들고 다닌다는 현실이 아직 낯설고 무겁게 다가왔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대한 혼란과,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문화 충격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사야 할 게 많았다. 이왕이면 같이 가서 도움도 받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괜히 멋있는 척하며 외쳤다.
"Okay! Let’s go Walmart!" (좋아! 월마트 가자!)
그 말에 크리스와 제이크는 피식 웃더니,
"Not Walmart. It’s WAAAL-mart." (월마트 아니지. 와아~알마트지!)
하며 장난스럽게 내 발음을 고쳐주었다.

그 순간, 나는 미국식 발음과 억양의 차이를 몸소 느끼며 언어의 미묘한 차이가 주는 재미와 당황스러움을 경험했다. 나는 두 룸메이트와 함께 제이크의 차에 올라탔다.
새로운 집,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하는 첫 외출이었다.
게다가 목적지는 왈마트 , 나에게는 그 이름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는 제이크의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마트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넓디넓은 입구로 들어섰다.
크리스와 제이크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카트를 밀며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사야 했다.

치약, 칫솔, 수건, 샴푸 같은 기본적인 욕실용품부터, 침대 옆에 둘 작은 조명, 방 안을 채워줄 쓰레기통, 세탁세제, 행주, 간단히 끓여먹을 인스턴트 음식까지.

뭔가 사러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혼자 미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아… 진짜, 이젠 혼자 사는 거구나.’
눈앞에 쌓인 물건들을 보니 현실감이 더 와닿았다.
엄마가 챙겨주던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전부 내 몫이 되었다는 걸, 나는 월마트 한가운데에서 비로소 실감했다. 그렇게 크리스와 제이크의 도움을 받아 카트를 반쯤 채운 우리는가게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월마트 안에 총 매장이 있었다.

진열장에는 반짝이는 권총과 산탄총, 소총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그 옆 유리 진열대에는 실제 총알, 그러니까 bullets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엔 장난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격표와 설명, 그리고 크리스가 진지하게 살펴보는 표정을 보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총, 진짜 총알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우리가 장을 보고 있는 이 마트 안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고, 눈이 커졌다.
미국이란 나라가 총기 자유국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실체를 이렇게 마트 한가운데서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군대 다녀온 형들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훈련 중 실탄 12발을 받으면, 훈련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발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심하고 긴장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혹시라도 실수로 하나라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탄피 하나 없어졌다고 모래밭을 몇 시간이고 뒤지며 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엄중하게 다뤘던 총알이, 여기 미국에선 마치 할인 행사하는 과자처럼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크리스는 즐겁게 총알을 고르고 있었고, 제이크는 옆에서 농담처럼 다음 주에 사격장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진짜… 미국은, 다르긴 다르구나.”

그날 나는 세제랑 칫솔, 라면과 햇반, 수건과 베개를 사면서혼자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총알과 총을 파는 왈마트에서 진짜 미국을 처음으로 마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