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 서가숙
언제나 외국의 식당에서 주문하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다. 군침 도는 이국적인 냄새에 코 꿰어 들어간 적 다들 있죠. 상상만으로도 벌써 행복한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된다. 메뉴 주문과 화장실 문의는 여행 회화의 필수. 타국에 와서 하루 이틀정도 지내면 어느정도 그 지역 언어로 주문하는 방법이 자연스레 체득된다. 오더 매뉴얼 시스템. 그래도 왠지 매번 긴장되기 마련이다.
해외에 한국어 메뉴를 찾을 확률은 지나가던 여자가 나에게 번호를 물어볼 확률과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식당에 영어로 된 메뉴를 기대한다. 불행히도 영문 메뉴가 없다면 이제는 지금까지의 인생 경험과 눈치를 십분 활용해야 하는 순간이다. 직원의 눈치를 살피고 메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료와 요리법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있다. 셰프 추천이나 베스트 메뉴가 있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잘못하면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음식을 위장에 꾸역꾸역 집어넣어야 한다.
문제는 눈대중으로 간신히 선택을 마쳤더니 추가로 선택할 사항이 있는 경우다. 아주 난감하다. 우선 추가 옵션이 있다는 점원의 현지 언어를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나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모르니 불안감이 고약한 냄새처럼 올라온다. 태국 음식을 먹는다고 하면 고수를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산초가루를 추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맵기와 달고 짠 정도를 정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간도 작아서 참 걱정 할 것도 많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복어 텐동을 시켰을 때 추가 선택 사항에 독을 뺄지 넣을지 결정하는 항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실 그저 가볍게만 여기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은 규슈 지역 유명 텐동 집에서 복어 믹스동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덜덜.
예전 이야기인데 홍콩에 갔을 때 피쉬 볼과 육수맛이 아주 그만이라는 국수집에 간 적이 있다. 지방 선거 투표 용지처럼 기다란 종이에 체크하여 주문하는 곳이다. 일필휘지로 슥슥 작성해서 제출하고 무척 먹음직스러운 국수를 받았는데 첫입에 끔찍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과 매운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주문 과정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다. 예의상 끙끙대며 끝까지 먹기는 했다만 아직도 식당에서 겪은 곤혹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 먹고 후기를 찾아보니 반드시 ‘신맛 제외’를 선택하라고 피해자들이 강력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도 여기에 외칩니다. 신맛 제외!! 나는 모든 재료와 맛을 최대치(多)로 넣어달라고 했으니 고생깨나 했다. 상남자는 언제나 피곤한 법. 참고로 모든 항목에 필요 없다(無)를 고른 사람도 있는데 밍밍한 육수에 면만 나왔다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오사카 우메다의 밤거리에서 그럴싸해 보이는 야키토리에 들어왔다. ’메뉴-오 구다사이’ 주문 매뉴얼 1번입니다. 책자를 펼쳐 ‘닭(鶏)’자만 읽고 우리는 하나하나 시켜서 꼼꼼히 먹어 본다. 으음. 이건 지코바 소금구이. 으음. 이건 염통 볶음. 윽, 대충 익힌 간이군. 그러다가 이건, 껍질만 익힌 닭고기 타다키가 나왔다. 오늘은 실패. 닭 육회가 나올 줄이야. 먹어보니 특유의 육향을 제외하곤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어쩐지 닭의 생살을 씹고 있으려니 살아있는 닭의 기억이 시적시적 연쇄적으로 찾아온다. 입 속의 조류는 껍질이 붙고 털이 돋는다. 살아있는 닭의 피는 비릿함을 자아낸다. 윽, 역시 생닭 같은 걸 먹는게 아니었는데. 그때쯤 속으로 꿀떡 넘어간다. 으음,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
사실 날고기와 육회를 구별하는 기준은 아마도 단순한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겪었던 덜익은 치킨에 대한 작은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히 타국의 음식점에 가서 주문에 실패했다는 말도 결국엔 일종의 인식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역시 ‘먹을만 하니까 팔겠지 뭐’ 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여행 태도라고 생각한다. 말은 쉽죠. 그나저나 나는 맛있는 낫또 찾기를 이번까지 네 번째 실패했다. 아무래도 이런 건 주문만의 문제가 아닌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