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인 vs 외국인

동가식 서가숙

by 주말



낯섦과 익숙함은 어디에서 구분되는 요소일까. 아무래도 나는 지금 일본에 와 있으니까, 일본어를 못하는 입장에서 나는 일본인과 더 동질감을 느낄까.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영어권 국가의 사람과 더 동질감을 느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카페나 음식점에서 전기를 빌려 쓰지 않는다. 한국이라고 해서 전기를 빌렸다가 갚는 문화 같은건 없지만, 카페에 들어가 휴대폰을 충전하는 일은 역시 당연시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여행객의 골치는 늘 휴대폰 배터리 잔량 유지다. 사진도 찍고, 중간중간 길도 확인해야 하고, 파파고로 일본어 해석도 해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일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충전할 곳을 못 찾아서 휴대폰이 꺼진 적이 여러번 있다.


문제는 도쿄와 같이 교통이 복잡하고 혼잡스런 도시에서 휴대폰 없이는 올바른 길찾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다. 일본식으로는 도쿄에서 야마모토군 찾기. 그렇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는 필요에 등 떠밀려 동질감과 이질감을 명확하게 나눠보게 되는 것이다. 자, 도쿄를 잘 알고 있는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아니면 도쿄를 잘 모르더라도 말이 통하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 것인가. 물론 사실 나도 외국인입니다.


나는 결국 누구에게 말을 걸었을까. 정답은 바로 둘 다. 지능이 모자란 사람처럼 일본인에게 더듬더듬 짧은 단어로 물어보고, 외국인과는 서로 난해한 노선표를 보면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결국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시는 일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까다로운 환승을 마쳤고, 알고보니 정반대로 잘못 알려줘서 그 길로 장장 2시간을 헤맸다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여기까지만. 이 이야기의 결론은 서울 사람이라고 모든 노선을 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도쿄 사람이라고 정확한 환승 안내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어째 좀 이상한 결론 같다.


살다 보면 처음부터 묘하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일종의 동류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것은 인종이나 언어와 같은 집단 문화권 구분을 떠나 하나의 개인적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끔 누군가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꺼낼 때 나는 동질감을 넘어 일종의 동일감을 느끼곤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나에게 곰인형보다도 더 큰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질감도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것은 다른 의미가 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여행했을까. 유명한 곳이 아니라 멋진 곳이 명소가 되는, 목적지가 없이도 어딘가 도착하는 여행. 구글맵과 와이파이 없이 유선 전화로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하던 시절. 그런 시절에는 이질감이라는 말이 하나의 상찬은 아니었을지 곰곰 생각해본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나는 그들이 느꼈을 생경함과 고독을 상상해본다. 친밀하고 내밀한 마음 편한 고독.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이질성 그 자체인 여행을. 혼잡한 시부야의 복판에서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상상해 본다. 약속 시간에 1시간 넘게 늦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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