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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15. 2023

삿포로에 왔는데 눈이 많이 온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바도

삿포로에 왔는데 눈이 많이 온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지금 삿포로는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세븐 일레븐의 칙칙한 간판 위에도. 정방형의 파르코 건물에도. 가냘픈 겨울 나무들과 가로등 위에도. 마츠다의 번쩍이는 신형 스포츠카 위에도. 여분의 공간을 발견했다는 듯 눈은 삿포로의 모든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다. 마치 점층으로 채워나가는 비정형의 테트리스처럼. 마치 진공을 허용치 않는 공기처럼 빠짐없이. 마치 차별하지 않는 하나의 소소한 축복처럼, 상처 위에 포근히 내려진 소독약처럼 새하얗고 유보없이 내려진다. 밋밋한 흰색 혼다 씨빅 위에도 소복하니 눈이 쌓이면 그것은 분명 하나의 로맨틱한 정경이 된다.     


  일본인들, 적어도 삿포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겨울마다 매일 새로운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기 때문은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활짝 젖히니 전날과 그대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하 뭐야. 오늘도 크리스마스잖아’라고 졸린 눈을 비비며 중얼중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상이라면 매일이 똑같은 반복이라도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정도로 아름다운 아침 그리고 아리도록 이쁜 미설이다.     


  삿포로는 눈이 많이 온다. 적설량은 매년 면적 대비 8미터나 된다. 갓 내려온 따끈따끈한(?) 삿포로의 눈을 살짝 밟아보면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굉장히 부드럽다는 사실이다. 마치 스키 선수가 빙질을 확인하는 것처럼. 눈 밟기의 초보라도 그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입자 하나하나가 각자의 존재감을 품고 질량을 갖는다. 그렇게 내린 눈은 서로 연대하듯 뭉쳐 그에 마땅한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삿포로 길거리에는 버섯 모양의 눈 조형물처럼 본래 쌓일 수 있는 면적보다 더 튀어나와 있는 눈의 집적이 가득하다. 그것은 어쩐지 누군가 씌워 놓은 모자처럼 보인다. 역시 많은 나뭇가지에도 뭉덩뭉덩 물에 젖은 솜덩이처럼 보이는 눈덩이가 매달려 있다.     


  눈 내린 도로는 그야말로 빙판길이다. 미끌미끌하다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반짝반짝 맨들맨들 딱딱한 얼음이다. 길을 걷고 있으면 마치 누가 밑에서 식탁보를 휙 잡아챈 듯이 미끄러진다. 나도 몇 번이고 허리방아 엉덩방아를 찌었다. 감탄스러운 것은, 그리고 동시에 미스테리한 것은 길거리에 미끄러지는 차가 단 한대도 없다는 것이다. 다들 빙판 위를 아무 저항없이 신나게 내달린다. 부와앙 하면서 급가속도 하고 커브에서 고속으로 핸들링도 무리없이 한다. 그 모습에는 빙판 위에서 급정거하는 김연아처럼 일종의 미학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보면 정말 신기하다.


  사람들도 차에 못지않게 터프하다. 그것은 삿포로 사람 특유의 눈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눈 따위에 질 수야 없지‘하는 일종의 무심한 결의와 좋건 싫건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처럼 눈에 대한 삿포로인 특유의 애증이 담겨있다. 어쩌면 삿포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눈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공고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두툼한 파자마 같은 파카를 대강 뒤집어 쓰고 마당의 눈을 묵묵히 치우는 할아버지가 있다. 맨투맨 하나만 걸치고 맨손으로 제설 중인 카페 여주인. 미니 스커트에 털부츠를 신고 우르르 내려오는 눈보라 속을 터프하게 달려가는 소녀가 보인다. 목도리를 뒤집어쓴 귀여운 남자아이가 길모퉁이에서 콰당하고 크게 넘어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재차 달린다. 심지어 눈도 채 털어내지 않는다. 역시 삿포로에서는 눈을 털어낸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터프하고 게다가 쿨하다. ’쿨하다‘라는 단어가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의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는 정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게 찢은 휴지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만져보면 그것은 분명해진다. 차갑다는 것. 눈은 어떤 상상이나 무언가의 비유가 아니다. 포함하고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삿포로의 거리와 자동차들, 건물과 사람들은 무척 아름다워진다. 풍부한 상상이 되고 무언가의 비유가 되고 상징이 된다. 마치 하나의 단어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지만, 그것의 무수한 집적은 아름다움을 품은 하나의 글이 되는 것처럼. 역시 삿포로에 왔는데 눈이 많이 온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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