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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른살 May 13. 2019

조금 불편한 독일 해치백 문화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지난주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이제 집 정리도 대충 끝났고 날씨만 덜 변덕스러우면 최고의 날들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사를 하면서 독일 해치백 자동차 문화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으니 이번 이사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4번 정도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해치백 스타일의 차가 배정됐다. 독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해치백이나 왜건형이 많다. 주차된 차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실용성이나 공간 활용도가 높은 해치백 스타일의 자동차를 선호한다는 짤막한 설명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왜?’라는 질문에는 스스로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일메나우 한 호텔의 지상 주차장
일메나우 시청 앞 주차장

질문에 대한 힌트는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대형 TV나 책상, 의자, 테이블처럼 무겁고 큰 부피의 (조립형)물건들을 마트에서 직접 사서 차에 싣고 나르는 과정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날씨가 풀리니 요즘은 주말이 되면 차에 한가득 그릴 도구와 간이 테이블을 싣고 놀러 가는 독일 가족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사를 하면서 독일의 해치백 문화에 특히나 공감했던 건 이사 과정에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독일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포장하고 직접 나르기, 짐을 싣고 이동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 이용하기, 무겁고 긴 물건은 좌석 위치를 조정해 차 안에 잘 넣기... 얼핏 당연해 보이는 광경이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 내가 생활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해치백 자동차 폭스바겐 골프

경험했던 곳 중 생활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중국은 이동이나 운송비용이 저렴한 만큼 선택지도 넓다. 기사 딸린 짐차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그리 비싼 편이 아닌 데다가 상하차 서비스를 추가로 요구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합의가 가능한 편이다. 거리나 짐 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굳이 직접 차를 빌려서 이삿짐을 싣고 나를 필요가 없는 환경이다. 친구들끼리 캠핑을 가더라도 렌터카보다는 소형 짐차를 왕복으로 예약해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이 적다. 요즘은 어플로 (기사 딸린)화물차를 예약하고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 정착돼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한국은 중국보다는 이사나 운반비용이 비싼 편이지만 관련 서비스 업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수고를 덜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환경이다. 이삿짐 업체에 맡기면 ‘안전하게 도어투도어'까지도 가능한 게 한국 아니겠는가. 봉고차를 빌려서 스스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부터 업체에 100% 이삿짐을 맡기는 것까지 ‘현실상 가능’한 곳이 우리나라다. 이밖에도 원클릭 총알배송 같은 택배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굳이 낑낑대며 차에 한가득 장을 볼 필요도 점점 없어지는 분위기다. 

독일에 주문 배송 시스템이 없는 건 (당연히)아니지만 육중한 물건이든 작은 생활용품이든 독일 사람들은 택배 주문보다 직접 사서 나르는 것을 훨씬 익숙하게 여긴다. 택배가 오는 날에는 꼭 수령인이 집에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도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인건비, 교통비, 서비스비가 모두 비싼 독일에서 한국이나 중국에서처럼 행동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사를 할 때 도움이 필요하면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으고, 비용은 꼭 필요한 곳에 쓰는 나라가 독일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데에는 기본적으로 독일인들의 체격이나 체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독일은 개인이나 가정이 일상생활에서 가급적이면 서비스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해결하려는 문화가 깊게 퍼져있는 나라이다. 이런 독일인들의 생활 습관과 자동차 디자인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접점이 해치백이나 왜건형 자동차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독일의 해치백 문화를 접할수록 한국의 택배 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해치백 자동차를 가진 독일인이라고 해서 아마존으로 온라인 주문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한국인들이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한다고 해서 세단만 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해치백과 택배 문화의 이면에는 '편리함'에 대한 양 극단의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직접 구매하고 스스로 운반하면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누군가의 과도한 노동도 줄일 수 있다. 택배를 이용하면 비용은 들지만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물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지난 6개월간 한국에서보다 덜 편리한 생활을 독일에서 해보니 답답하고 불편함을 자주 느끼는 건 사실이다. 재밌는 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불필요한 소비가 줄고 몸을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아지니 정서적, 육체적으로 훨씬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조금 불편한 독일의 해치백 문화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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