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문득문득 베란다에 서서 창문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기분이 들면서 저 밖으로 뛰어내리면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개운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목숨이 딱 2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목숨이 2개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려서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부분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졌고 내 인생에 태클을 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건 정말 내 계획대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태클을 걸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자주 안 보는 사이에 그런 건 그래도 적당히 참고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매일 보는 사람이 걸어오는 태클은 여간해서 무시하고 넘기기 힘들다.
40평생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산 나인데 집에서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내일 출근해야 하니 네가 혼자 애 데리고 거실에서 자.”
아이가 하나일 땐 그럭저럭 그러려니 지냈다.
문제는 애가 둘이 되고부터 더 심각해졌다.
첫째는 자기 손으로 밥 한 숟가락도 먹지 않고, 둘째는 자기 목도 아직 잘 가누지 못하는 젖먹이....... 그런데 남의 편이라는 인간은 갑자기 승진시험을 보겠다며 애들이 다 잠들고 전쟁이 끝나고 나면 들어왔다.
자주자주 엄마가 오셔서 도와주셨지만, 문제는 엄마가 가시고 첫째가 하원하면 시작됐다.
그때쯤 엄마는 내가 이상해지는 거 같다고 했다.
엄마가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짐을 좀 덜어주면 좋아질 거 같았는데 아니라며 속상해하셨다. 그때부터 이미 우울증이 시작된 걸까?
어쨌든 남편은 승진시험을 봤고 승진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의 승진에 나의 몫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 건강하고 남편 승진시키고 나 나름 잘 사는 거 같아.”라고 하자 돌아온 말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자신의 승진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고, 네가 한 게 뭐가 있냐고~~
힘이 쭉 빠졌다. 나는 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중요한 일들은 스스로 처리.... 내가 뭐라고 해봐야 그건 그저 잔소리에 불과한 말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냥 애 키워주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사랑 대신 우울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 당장에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받았다. 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마음의 병 따위에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치료와 약 대신 손에 책을 들기 시작했다.
내 병을 인정하고 나니 확실히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씩 훅 오는 전신 무기력과 불안감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나를 내어줄 수는 없다
나는 결코 내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게 그냥 놔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깐....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채로 보고 있지만은 않을 그런 사람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