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신에게 사랑받는 3줄의 마법>을 읽고
오랜만에 이 책을 들었다. <돈의 신에게 사랑받는 3줄의 마법>
작년에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이 책은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돈의 신이 있다면, 나도 돈의 신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욕심을 버리라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와서도 이런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욕망에 붙들려서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큰딸의 하소연 때문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콘서트를 이번에 또 하는데 너무 가고 싶다는 거다. 그런데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웃돈을 주고 양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 데다가 서울에 가는 차비까지 합치면 30만 원 정도가 들어서 결국 취소했다고. 충동적으로 양도받겠다고 신청을 했다가 감당이 안 되어서 취소했다고 하는데,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딸아이를 보니, 속이 상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안 해주는 것과 못 해주는 것은 다르니까. 부모로서 마음이 좀 그랬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매정하게 버럭 했다. 벌써 2번이나 갔다 왔으니 충분하지 않으냐고 말이다. 모든 콘서트에 다 가는 건 무리다. 하지만 평생 이때를 후회할 것 같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해 봐라고 말해 주었다. 아마 아빠한테는 이야기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데 아빠 허락 없이 내가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고로 큰딸의 한 달 용돈은 10만 원이다. 정해진 것이 그 정도이지 사실 필요할 때마다 요청하면 1,2만 원씩 준다.
큰딸은 지난 2번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 용돈을 차곡차곡 모았었다. 옷도 안 사고, 화장품도 안 사고, 스터디 카페도 안 가고(스카를 안 간 것은 나름 즐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돈을 모아서 갔다 온 것이었다. 나름대로 무척 노력했던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꺼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부자 부모가 되어서 못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안 해 주고 싶어서. 하지만 이 책은 내용이 무척 쉽게 설명된 듯하지만, 쉬운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부자가 되는 비법을 설명해 주는 책이라 소개되어 있지만, 2번째 읽어 본 나로서는 내면 치유의 책에 가까웠다. 물론 그 결과로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자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 같고, 이 방법대로 하면 치유는 일어날 것 같았다.
시작은 부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읽다 보니 또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의 말에 내가 어이없는 반응을 한 것이 도저히 이해 안 될 때가 있었는데, 찬찬히 그 감정을 파고들고 그 뒤에 숨겨진 생각을 찾으려 해 보니, 내 마음속엔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비합리적인 반응과 감정은 비합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잘못된 문장들이 나의 적절치 않은 반응과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성이 감정을 통제한다. 그리고 그 이성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무엇이 나의 감정과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감정 아래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바꾸지 않는 한 감정과 반응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감정을 바꾸려고만 하면 안 된다. 감정 뒤에 이성이 조종하는 것이니까. 이성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나쁜 일이 벌어져도, 불만족스러운 때가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이해하려고 애써왔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속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은 채로 긍정의 효과만 보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변화나 발전이 없다고.
나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그 감정을 풀어쓰고, 그 속에서 실제 일어난 사실과 내 무의식이 덧씌운 환상을 구별해 내고 나면, 내가 어느 지점에서 잘못된 이성의 조정을 받아 왔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바로잡아 주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나의 단점이 드러날 때 무척 괴롭고 힘이 든다. 빈틈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삐끗 실수하게 되면 엄청난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파고들면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뒤에 숨어 있다. 그러면 질문을 한다. 왜 가치 있고 싶은데? 왜 인정받고 싶은 건데? 그러고 나면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라는 대답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버림받는다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청 두려운 일이지만, 어른이 된 현재 나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으면 아이에게는 큰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나를 버릴 사람보다 내가 버릴 만한 사람이 더 많은데? 그런 걸로 권력을 남용하면 안 되겠지만, 나는 홀로서기를 했고, 누가 나를 버린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말이 안 된다. 그러니 그 생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 버림받는다는 말은 그 자체가 나에게 영향을 못 끼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일하는 중에 틈틈이 이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오늘도 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