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의 끝에서
완벽주의자들에게 실패와 불완전함은 끔찍하다. 과장일지 모르나 더 이상 적절한 단어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혐오를 넘어 끔찍하기까지 한 실패와 불완전함. 참기 어려운 불편함이다.
특히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에게 이는 더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본래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이 불완전한 세상은 그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숨 쉬듯 짜증이 밀려오는 대상이다. 자기의 잘잘못을 바라보기 전에 눈과 귀로 이미 온갖 것이 망가진 채로 들어오니깐.
완벽한 이상을 꿈꾸는 사람에게 너덜너덜하게 파헤쳐진 회복 불가능한 무언가를 던져보라. 어쩌면 포기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내 감정을 예민하게 바라보기로 한 이후, 힘든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각종 짜증스러움과 분노를 이전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모른 척하고 외면할 때에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감정을 자꾸 직면하려다 보니까 내 안의 감정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러움과 두려움이 가장 큰 감정이었고, 이것만 해결하면 내 삶의 더 평화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점점 더 알게 되는 나의 감정은 분노와 짜증, 혐오였다.
이제까지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살아오다 보니, 저기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자기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과 우울 아래 숨어 있던 찬란한 분노와 짜증들. 때로 어마어마한 감정들이 밀려올 때 주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가벼운 장난을 쳤는데, 나에겐 아주 위험한 장난으로 느껴졌고, 금방 나는 상대를 죽일 듯한 분노에 휩싸였다. 남편도 바로 사과를 했으면 될 일이었겠지만, 남편은 당황했고, 나는 남편 다리를 손바닥으로 때려주었다. 감정이 실리다 보니 많이 아팠는지 남편은 마음이 상해서 이틀째 화를 내고 있다. 즐거운 여행 끝에 이런 사고가 생기다니. 이건 사고다.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사고. 아무도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긴장한 채로 집에 돌아왔고, 아이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냉장고 청소를 하고 밑반찬을 준비했다. 근 1년 만이다. TV 속 차승원이 깍두기를 담그는 모습에 나도 깍두기를 만들었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일단 만들었다는 데에 만족한다. 1년 동안 안 했던 일을 하게 된 원인은 내가 당뇨 전 단계라는 사실과, 남편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차승원의 깍두기가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 등이다.
사람들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 어떤 사건 사고로 인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왔던 생각이 합쳐져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모두가 완벽한 것을 칭찬하지 불완전한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완벽한 것이 살짝 어긋나는 그 지점에서 어쩌면 더 아름다운 것이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불완전함을 합리화하여 무던히 이겨내기 위한 그런 목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런 동기가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나도 내 마음을 100% 알지는 못하니까.
틀을 벗어난 아이디어가 독창성이라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 내는 것이 천재성이라면, 그것은 완벽한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불완전함을 지켜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지난 주말 내내 빠져 있었던 <더 지니어스>를 보면서, 천재들의 비범함과 독창성은 획일적이고 정제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놀라운 발상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어야 하고, 어디가 보기 싫게 툭 튀어나와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처참하게 망가진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고 누군가 말할지 모르지만, 처참하게 망가진 데에서는 말 그대로 온갖 것이 나올 수 있다. 정말로 온갖 것.
완벽할 줄 알았던 주말여행이 이 하나의 사고로 와장창 깨진 현장을 보면서 나는 절망했지만, 바로 그 사고 직전에 불완전함을 떠올렸기에 이 망가진 결말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불완전함의 매력. 어느 정도 고통이 있어야 그다음에 찾아오는 평화에 희열이 있고, 감사가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고 일부러 고통을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어쩌다 찾아온 고통이야 뭐 반갑게 맞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