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정을 따라가 보자.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종종, 자주.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한쪽으로 치워버려서 그렇지 나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은 늘 있었다. 혐오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때로는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어쩌면 세상을 혐오하는 것의 기본 바탕에는 나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이 깔려 있지 않을까.
내가 왜 싫은지 그 감정을 파고들어 보았다.
내가 왜 싫은데?
부족하고 모자라니까.
왜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는데?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내 부족함이 드러나니까. 그때마다 나 자신이 싫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하고 모자란 게 왜 싫을까?
부족하고 모자라면 사랑받지 못하니까.
왜 사랑받아야 하는데?
사랑받아야 행복하니까.
알았다. 내 행복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사랑에 달려 있었다. 내 행복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나 외적인 상황에 달려 있어서 내가 그토록 불안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 거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 할 권리가 없다. 내가 아무리 잘해 주었다고 해도 나에게 어떤 마음을 주기로 결정하는지는 그 사람의 권한이다.
그래서 바꾸기로 했다. 내 행복을 내가 정하기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낄 때 행복하다. 고 설정하기로 한다. 희로애락을 느낄 때. 즐거움과 기쁨만 느낄 때만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니 그것도 행복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무엇도 내 행복을 빼앗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주는 사랑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순간 자유로워졌다. 그대로 나 있는 대로 괜찮다니.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니. 굉장히 신선하다는 느낌과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삶을 강요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여러 힌트들을 통해 그게 행복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 잘못된 문장을 굳건하게 믿으며 매일매일 나의 불행을 양산해내고 있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 속에 감추어진 수많은 잘못된 문장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내어서 모두를 바로잡아 깨끗하고 바르게 참되게 살아가고 싶으나, 그러려면 그 과정에서 나의 잘못된 문장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들을 건드려야 하고, 감정들을 느껴야 하고, 파고드는 머리 아픈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가치가 있다면, 해 볼만 한데, 이 감정들도 억눌려 있다 보니,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붙들어야 한다. 놓치면 아깝다.
그리고 까놓고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문장이 과연 바로잡아졌을까. 내 속에서 어그러진 것이 바르게 펴졌을까. 이 한 번의 깨달음으로? 그렇진 않을 것 같다. 큰 깨달음이고 큰 변화일 수 있지만, 그동안의 세월이 있는데, 자동화된 나의 생각의 흐름이 바로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사람의 사랑에 매달려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또 원래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알아차려야지. 그렇게 실수하고 또 깨닫고, 반성하고, 새롭게 되고, 그것도 재미있지 않나. 날마다 새로워지는 나. 어떤 날은 전진하고 어떤 날은 후퇴하고. 그리고 또 전진하고. 그러다가 또 크게 후퇴하는 날이 있더라도.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고, 막 스펙터클하고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도 계속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