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교환일기 제2편 - 원에게
원에게 ...
안녕 원. 다시 너랑 교환일기를 쓰게 돼서, 좀 설렌다.
이런 걸 뭐라고 하지, 밀담? 맞다. 딱 그런 느낌.
비밀까진 아닌데 왠지 사람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
우리만 아는 온기 같은 거.
털 얘기부터 시작한 네 이야기가 참 좋았어.
정말이지 털에서 시작해 존재의 결까지 닿는 그 이야기.
너답고, 그래서 더 좋았어.
그래서 나도 조금 털어볼게. 옷 이야기야.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어.
"예전엔 집착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는 바로 떠올렸지.
"옷"
하고 대답했어.
혹시 원, ‘영이가 옷을 엄청 잘 입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근데 말이야, 의외로 나 옷에 꽤 진심이었어.
하루가 멀다 하고 패션 블로그 들여다보고, 패션잡지 시즌 룩북 넘기던 시절도 있었지.
매일 아침 옷 고르느라 전쟁치렀고,
어떤 날은, '이게 나만의 무기일지도 몰라!' 싶기도 했지.
그러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또 ‘조금은 다르게 입는 나’를 꿈꿨던 것 같아.
그게 내 무기였던 거지.
심지어 대학교 땐 단 한 번도 같은 조합으로 옷 입고 나간 적이 없었어.
(이 말은 진짜야. 농담 아님.)
근데, 그 질문이 ‘집착했던 것’이 아니라, ‘이젠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잖아.
맞아.
지금의 나는 옷을 거의 사지 않아.
2년 동안 산 옷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밖에 없을 걸?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이젠 ‘나’라는 걸 설명하는 언어가 옷 말고도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아.
글이라든지, 말이라든지, 표정이라든지.
그리고 ‘허영심’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떠올려봤어.
아마 그땐 인정받고 싶었겠지.
예쁘단 말, 센스 있다는 말, 멋지다는 말.
근데 이제는 그런 말 없어도 괜찮아.
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어서.
두 번째 질문은 이거였어.
“그렇다면 지금 집착하는 건 무엇인가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지.
“이너뷰티…?”
진짜 그랬어. 내면의 아름다움에 집착… 아니 몰두하고 있어. 그게 더 정확하지.
집착은 찐득하고 좀 아픈 말이잖아.
몰두는 건강하고 뿌듯한 느낌이 나.
이 집착은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고, 무엇보다 삶이 윤택해져.
그 윤택함에 요즘 나는 거의 취해있을 정도라니까.
기억나?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내 모토는 "즐.건 사람"이라고. 요즘 나는 그 말에 맞춰 살고 있어.
내 몫만큼 즐겁고,
내 몫만큼 건강하게.
근데 ‘즐.건 생활’을 하려면 하나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더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말이, 나를 부드럽게도 만들고 단단하게도 만들었어.
나는 남들의 '시선'에는 둔감한데, '리액션'에는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더라고.
내가 한 말에 누가 기뻐해주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 같아.
근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면,
속에서 괜히 노여움이 올라오고. (부끄럽지만 사실이야.)
그래서 올해 나를 붙잡아주는 말은 이거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걸 자꾸 되뇌면서 살고 있어.
그 말이 나를 좀 더 나답게 해주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러면서도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 지금 이 교환일기처럼 말야.
원아, 너는 요즘 무엇에 몰두하고 있어?
p.s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를 실천할 수 있는 재밌는 짤이 있어서 그것도 첨부해
2025년 4월 6일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