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교환일기 제4편 - 원에게
원에게
원, 안녕.
3주라는 시간은 참 묘하다.
어떤 날은 쩍쩍 늘어지다가도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훌쩍, 오늘이야.
혹시 이 글을 읽기 전에
<요조 -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를 틀고 들으면서 읽어줄래?
그 사이 나, 빠져버린 단어가 하나 있거든.
‘영원.’
그러고 보니 우리 일기 제목도 영원이네.
너와 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참 절묘하지?
사전에서 찾아봤어.
‘영원하다’ — 어떤 형편이나 모양 따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 시간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 상태.
그걸 보고 새삼 알았어.
나, ‘영원한 행복’을 꿈꿨더라.
올해 3월, 우리 반 아이들을 처음 만났어. 말도 안 되게 나랑 잘 맞는 아이들이었거든.
작년까지는 힘든 아이들이 있었는데,
근데 올해는 이게 말이 돼? 싶을 정도로 예뻤어.
난 그냥 그 행복의 향에 취해, 봄을 만끽하고 있었지.
그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아버렸지 뭐야. 진심으로.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작은 틈이 생기기 시작했어.
별 일도 아니었는데, 난 그 균열을 견디기 어려웠어.
내가 만든 ‘행복’이라는 조각상이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어.
벅찰 만큼의 행복을 느꼈기 때문일까.
요조 노래가 생각났어.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정류장이 어딘가에 진짜 있었으면.
어느 날, 시무룩한 나를 보고
남자친구가 말하더라.
“영, 너는 고통은 언젠가 지나간다는 걸 너무 잘 아는데
행복도 언젠가 지나간다는 건 잘 모르는 것 같아.”
그 말에
잠깐,
머리가 띵했어.
맞아.
난 고통에는 초연한 편이야. 상처를 받아도 금방 회복해.
회복탄력성이 아주 좋은 편이거든. 그러니까 고통에는 제법 단단한 편이야.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그런데,
행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더라.
너무 귀하고, 너무 소중해서 시들지 않는 장미꽃이면 좋겠다고 순진하게 바랐던 것 같아.
근데 생각해보면, 원.
삶은 다 변해.
내 마음도 시시때때로 바뀌어.
오늘 좋았던 노래가 내일은 싫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몇 년 뒤엔 다시 애틋해지고.
오늘 좋아했던 사람에게 내일은 상처를 주기도 해.
이렇게 변덕스러운 인생에서 행복만큼은 영원할 거라 믿었다니,
좀 귀엽지 않아?
서른 넘고야 깨달았어.
영원한 고통이 없듯, 영원한 행복도 없구나.
있다면, 그건 변화뿐이겠구나.
요조 노래 가사처럼,
행복이라는 찰나가 스쳐갈 때
영원이라는 정류장을 꿈꾸면서도
가만히 누워, 선처럼 지나가게 놔주는 용기.
그게 필요하구나 싶었어.
그렇다고 지금의 행복을 허투루 보내고 싶단 말은 아니야.
‘순간’을 사랑하고, ‘순간’을 잘 보내줄 수 있는 마음.
그게, 요즘 나에게 가장 큰 단어였어.
그리고,
원이 물었던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말야,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균형은커녕 지독한 일중독자야.
그럼에도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운동은 빠뜨리지 않는거야.
'영원히' 다정할 수 없지만, 체력이 좋으면 '자주' 다정할 수 있더라고.
영원히 행복하고 다정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고 싶어.
그러기 위한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운동하기 !
또, 하나는 영원의 교환일기.
늘 일만하는 내게 이 일기가 나를 삶으로 데려다주거든.
고마워. 영원의 교환일기가 혹 영원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겐 참 소중해
모쪼록 원,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정류장은 없지만,
그럼에도 자주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
그럼에도 자주 우리가 평안하길 바라.
영원은 없지만, 지금 이 마음이 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다음 정류장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답장 기다릴게. 총총
2025.05.19.
영 씀.
p.s
마지막으로 요조의 노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의 가사를 첨부해.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닿지 않는 천장에 손을 뻗어보았지
별을
진짜 별을 손으로 딸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럼 너의 앞에 한 쪽만 무릎꿇고
저 멀고 먼 하늘의 끝 빛나는 작은 별
너에게 줄게
다녀올게
말할수 있을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텐데
그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과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우리 영원까지
함께 가자고
말할수 있을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