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을까?

by 서순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오른다. 주로 토요일에 산악회를 이용해서 가지만, 주중 하루를 빼서 혼자 근교 산을 찾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산을 탄 지도 햇수로 벌써 20여 년이 넘었다. 20대부터 시작해서 15년 정도 계속 산에 다녔다.


대학 다닐 때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거의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1학년 때 공공기관에서 사무보조를 할 때였다.

"이번 주에 산에 가보지 않으련?"

그때 사무관이었던 분이 점심을 사주시면서 말했다.

"산이요?"

나는 반색을 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등고산악회‘ 회장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분들과 지리산, 설악산, 치악산, 유명산 등 여러 산을 올랐다. 산악회 회원들은 나 대신 산행비도 내주고 점심도 챙겨주시곤 했다. 그때 나는 산행비 같은 걸 내는 줄도 몰랐다.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 대학 친구들과 가족 모두 산을 타곤 했다.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등 주로 서울 근교 산이었다. 그 당시 나는 스틱도, 아이젠도 없이 날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다. 오를 때는 조금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는 발을 팍팍 내달으면서 시원스레 내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북한산에 올라갔다가 가파른 길을 너무 무리하게 달려서 내려오는 바람에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하산 지점까지는 내 보폭으로 약 30여 분 정도 남은 상태였는데, 그만 무릎과 발목에 끊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져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하산을 했는데 나는 남편 팔에 의지해 절뚝이며 1시간 만에 겨우 내려왔다.


이튿날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골밀도가 약해서 높은 산은 절대 가면 안 돼요."

그렇게 나의 산행은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여 년이 훌쩍 지나버린 2018년 봄, 나는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새벽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다시 산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산을 어떻게 가야 하나?"

남편은 헬스를 했고, 아이들은 모두 분가했으니 함께 산행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토요산악회'로 인터넷 검색을 했고, 바로 회원 가입하고 산행 신청도 했다. 이천 원적산과 산수유 축제 산행이었다.


그 후 매주 토요일마다 빼놓지 않고 산에 올랐다. 그렇게 다시 산행을 시작한 지 6년이 넘었다. 그동안 블랙야크 100대 명산 프로젝트도 완등을 했고, 300여 개 이상의 산에 올랐다.

"기왕 산에 왔으면 정상은 밟아봐야 한다."

이것은 내 지론이기에 매번 산행을 시작하면 꼭 정상까지 올랐다.

산 정상에 서면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한눈에 쭈욱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 삶과도 닮았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아래를 내려다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곧 산을 내려오듯이 인생길에서도 내려와야만 한다. 언제까지나 정상에서 지내는 사람은 없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딱 한 권만 꼽으라면 단연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아주 얇은 그림책이지만 그 책은 읽을수록 다른 깨달음을 준다.


그 책에는 하염없이 줄지어 길을 가고, 자꾸만 높은 데로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이 나온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앞에 가는 애벌레를 따라간다. 애벌레들의 긴 행렬이 이어진다.


주인공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도 그들을 따라간다. 둘은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하늘로 치솟은 기둥을 따라 높이 오르기 위해서이다.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꼭대기까지 갔던 호랑 애벌레는 다시 내려와 이렇게 말한다. 그 사이 노랑 애벌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꼬치를 만들고 있다가 나비가 되어서 훨훨 날아다닌다. 뒤이어 호랑 애벌레도 꼬치를 만들고 나비가 된다. 두 나비는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다.


그러면 둘 중 누가 더 잘한 것일까? 애써 오른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르지 않은 노랑 애벌레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은 것일까? 젊었을 때의 나는 노랑 애벌레에게 표를 주었다. 그러나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호랑 애벌레에게 표를 주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는 정상에 올라봐야 한다. 왜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곳에서는 아래를 한꺼번에 바라볼 수가 있다. 풍경을, 허무를 다 알 수 있다. 정상에, 꼭대기에 서 보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르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조금씩 커나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목표를 해내었다는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산을 올라 정상에 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산 정상에서 탁 트인 절경을 바라보면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 동화된다. 한순간이지만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감이 밀려온다. 살아 있어서 산에 오를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은 언제 가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준다. 어여쁜 자태로 뽐내는 꽃과 피톤치드 뿜뿜 내뿜는 초록 나무와 빛깔 고운 단풍, 그리고 눈부시게 순결한 상고대 눈꽃으로 나를 반긴다. 때로는 운무 속 신선나라의 신비 속으로, 때로는 햇빛 가득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동화 속으로 나를 이끈다. 그뿐만 아니라 축복처럼 떠오르는 황금알 해돋이로, 금빛으로 물들이는 해넘이로 나를 초대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매주 토요일에 산행하는 이유이다. 엔도르핀이 팡팡 터져 나를 깨우고 먹이고 살찌우는 산, 산이 있어서, 산행할 수 있어서, 살맛이 난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가도 걸을 수 있는 한 산행을 계속하고 싶다.


<자전거 여행>(서순오, 20호, 아크릴화) ※산을 주로 타지만, 가끔은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 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에다 자전거를 그려넣어 보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꾸만 넓어지는 그림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