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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비바람에 꺾인 나무들

청계산둘레길+성남누비길 산행

by 서순오

지난 3월 1일에 출범식을 한 자랑산 청계산 산행에 참석한다. 인테리어 지기대장님 포함 모두 13명이다. 10여 일 전 금요일에는 인테리어 대장님 수도산 마지막 산행이었고, 오늘은 나로서는 자랑산 첫 산행인 셈이다. 하긴 근교산 위주로 산행하는 산우님들은 거의 매일 산행을 한다. 열정도 기력도 대단하다. 나는 1주 1산도 좀 많다 싶은데 말이다.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에서 만나서 진달래능선 쪽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청계산 초입에 양지바른 곳에 무덤들이 있다. 거기서 산행 준비를 하고 서로 인사를 한다. 출발! 그렇지만 진달래능선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늘 우리가 밥을 먹던 밥터를 찾아 점심식사를 한다. 산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밥터에는 깔끔하니 닦여있다. 그만큼 여러 번 사람들이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매생이 부침개, 취나물, 시래기볶음, 딸기, 바나나, 계란말이, 구운 계란 등 두루두루 맛있는 것들을 싸와서 맛있게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밥을 같이 먹으면 친해진다."

신기하게도 밥만 같이 먹었는데도 처음 보는 산우님들과도 한 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진달래능선에서 바라다보이는 조망터를 지나 편한 길로 걷는다. 그러다가 여산우님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발견!"

이제 막 분홍 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는 진달래꽃 봉오리이다. 올 들어 처음 보는 꽃이다. 이럴 때, 겨울에서 막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은 반가움 그 자체이다. 손가락을 모아 꽃봉오리를 환영하고 옆에서 함께 인증숏도 찍는다. 단지 한 개의 망울이지만, 이 꽃을 보아서 진달래능선을 통과하는 기쁨이 크다!


오늘은 정상 쪽 매바위도 매봉도 가지 않는 코스이다. 소망탑 쪽으로 간단다. 그 길을 들어서니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이다. 그동안 청계산을 여러 번 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길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길이 좋다. 잘 닦여져 있다. 느릿느릿 걷는다. 소망탑에서 기념사진 찍고 약간의 오름길 지나니 정자가 나온다. 잠시 쉬어간다.

"아, 여기구나!"

이전에 여고 친구들과 가파른 길로 정상 오를 때 차와 간식을 먹으며 쉬어갔던 곳이다. 이곳은 여러 번 지나간 곳이라 반갑다. 돌아서 돌아서 바로 이곳으로 왔구나 싶다.


정자 정면으로 매바위, 매봉 가는 급경사 가파른 계단이 보이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왼쪽 옆구리길로 간다. 길은 걷기가 좋다. 응달에는 간혹 잔설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은 땅이 많이 얼지도 않아서 아이젠을 차지 않고 걸어도 괜찮다.


원래 코스는 이수봉을 가려고 했는데, 여산우님 두 분이 혈읍재 가기 전에 옛골 쪽으로 그냥 내려간단다. 그래서 나도 따라 내려간다. 거의 5~6개월 만의 산행이라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서이다. 지난번 관악산 산행에서도 양쪽 발바닥에 물집이 아주 크게 잡혀서 약 일주일 정도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살성이 조금 약한 편이라 쉽게 벗겨지거나 물집이 생기기도 하지만, 또 빨리 낫는 편이기도 하다. 회복력이 상당히 좋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동안 병원 신세를 많이 안 지고 살아온 것이리라. 그저 감사할 일이기에 또 내 몸은 내가 알아서 관리를 잘해야 한다.

"무리는 금물이다. 느리게 천천히 꾸준히, 내 체력에 맞게, 내 보폭에 맞게!"

이건 내 산행 수칙이기도 하고 내 삶의 원칙이기도 하다.

"무엇을 많이 이루면 뭐 하고 못 이루면 어떠하랴!"

나는 그저 순리대로 내가 편안하고 행복한 게 좋다.


조금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데 이곳은 응달쪽이라 약간 길이 얼어 있다. 조심조심 한발 한발 걷는다. 먼저 내려간 여산우님 둘이서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래요. 다들 이수봉 안 찍고 이쪽으로 내려온 대요."

인테리어 대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단다.

"왜요?"

"글쎄, 여자들 셋이 따로 내려가니 재미가 없다나 뭐라나 그러네요. 뒤풀이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나는 기다리지 않고 내려간다. 나는 주로 혼산이 좋은 사람이고 뒤풀이도 안 하고 갈 생각이라서다. 운동하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술도 못 마시니 뒤풀이 가도 그냥 그렇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내려간다. 그런데 내 눈에 눈비바람에 꺾인 나무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아주 많다. 아마 다 지난겨울 폭설이 자주 내려서 그 눈 무게 때문에 나무가 시달린 것 같다. 예전의 청계산이 아니다.

"내가 산에 못 오는 동안 산이 몸살을 했구나! 청계산도 예외는 아니지."

한 열흘 전 관악산은 이러지 않았는데, 유독 청계산에는 부러진 나무들이 많다. 그것도 키가 큰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그렇지.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나무 밑동을 튼튼하게 하면서 천천히 자라야지. 그래야 쉬 안 꺾이는 거야."

나는 속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몸 전체가 아주 쓰러진 나무, 뿌리가 뽑힌 나무, 목이 부러진 나무, 허리가 꺾인 나무, 가지가 아무렇게나 헤집어진 나무들에게 한 마디씩 하면서 내려간다.

자리를 잡은 곳도 중요하다. 계곡 옆에 높은 곳에 서 있는 나무들이 거의 피해를 입었다.

사람이든 나무든 속히 자라거나 너무 높이 오르거나 그러면 부러질 확률이 높다는 걸 깨닫는다.


중간에 정자가 나오고 산우님과 물놀이하던 계곡도 나온다. 물이 맑다. 솔가지에서 떨어진 갈비들이 한쪽으로 수북이 몰려서 떠 있다.


한참 내려가서 나는 자주 가는 선녀폭포 쪽으로 가지 않고 옛골 방향으로 간다. 정토사와 옛골 이정표가 나온 데에서 또 옛골 쪽으로 간다. 성남누비길이 나온다. 길이 꽤나 길다. 길은 편안한 흙길이라 싱그럽게 걷는다. 그새 여름이 온 듯 날이 덥다.


하산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에게 톡을 한다.

"저는 뒤풀이 안 하고 집으로 가요. 담에 또 뵈어요."


나중에 집에 와서 자랑산 카페에 사진 올라온 걸 보니 다들 선녀폭포 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그쪽은 옛골로 내려가는 지름길이기도 하기에 아무래도 내가 오늘 제일 많이 걸은 것 같다. 10여 km는 족히 넘었을 것이다. 가끔은 같이, 가끔은 혼자, 내 수준에 맞게, 정상 안 찍어도 좋은, 여유 있고 행복한 산행이다.

청계산 진달래능신
맛있고 즐거운 점심식사
올 들어 처음 만나는 진달래 꽃봉오리, 이뽀이뽀!
소망탑에시
소망탑에서 단체사진
돌길 예쁜곳에서 여산우님들과 함께
매바위, 매봉 가는 급경사 계단이 보이는 바로 이 정자에서 쉬어간다.
이수봉 조망터에서
눈비바람에 꺾여진 나무들
선녀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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