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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다 Oct 21. 2021

그래서 그 고기 어디서 사 온 거야?

66화. 엄마 그리고 나












크게 다쳤던 적이 있었다. 20 중후반? 쯤이었는데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퇴근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누가 나를 밀고 갔고 넘어지지 않으려 중심을 잡다가 왼쪽 발목이 바깥쪽으로 아예 돌아가 버렸다. 처음엔 이게 아픈 건가 아니면 감각이 사라진 건가 당황한 나머지 우왕 했고 누가 나를 밀고 갔는지 보지도 못하고 목격자도 없었다. CCTV 보았지만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단순히 인대가 늘어나거나 삐끗 했겠거니 싶어서 절뚝이며 집에 가 찜질을 했고 그때 당시 나는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근하면서 정형외과를 들려야겠다 생각하고 큰 통증이 있었지만 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은 심각하게 부어있었고 저리기까지 했다.


병원에 가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진료를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대가 늘어난 줄 알고 부목을 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이 없고 통증은 24시간 지속되었다. 바람만 불어도 아니 그냥 조금만 스쳐도 온 다리가 잘리는 듯한 통증이었고 시리고 아리고 저리고 정말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분명 통증은 이리도 심한데 왜 만지면 다리에 감각이 없을까 무서운 마음에 신경과를 다시 방문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였다.


비골 신경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신경은 돌아오겠지만 감각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강제 퇴사까지 하게 되었다. 당장 걸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하라는 말인가.


그 후로 나는 병원 치료에 집중하게 되었다. 복합성 통증 증후군이라는 진단도 받고 붕대를 감는 그 순간에도 아프고 서럽고 이 현실이, 이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눈물만 흘렸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다 괜찮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통증에 시달려서 잠 못 이루고 매일 밤을 울며 앓던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엄마였다. 어언 1년을 쉬었다. 미친 듯이 기어 다니느라 팔꿈치에 굳은살이 배겼고 피가 났었다. 제대로 화장실에 가지도 못했다. 재활 치료를 권유받았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그것마저 하지 못했었다. 그 와중에 우리 언니는 도저히 나를 케어하지 못하겠다고 나가버렸고 그 죄책감에 나는 모든 걸 더 내려놓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도 없었으면서 들고 있는 거라고는 달랑 내 정신력 하나였으면서 그것마저 내려놓았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울면서도 엄마는 나를 보면 웃었다. 제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해서 어떤 날은 휠체어를 타고 엄마와 나갔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통증이 심해져 다시 들어오고 이걸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엄만 출근하기 전 미리 내가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차려놓고 나가고 나더러는 절대 치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일도 안 하는 와중에 병원비만 자꾸 나가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누워만 있는 거라니 자괴감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 자신이 가장 비참하고 한심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항상 양념 갈비를 사 와서 저녁에 구워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늘 삼키지도 못하고 입에 넣은 채 엉엉 울기만 했다.


엄마도 그런 나를 보며 울면서 또 입은 웃었다. 울지 말라고, 네 탓이 아니라고, 누구나 다 아플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다고, 엄마가 네 옆에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엄마는 내가 기운이 났으면 좋겠다며 매일 같이 양념 갈비를 사 왔다. 나는 저녁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내 저녁을 차리느라 바쁜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먹었던 그 밥상이 여전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큰 힘을 받고 스스로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큰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발을 넣고 똑바로 서는 것부터 연습했다. 통증은 생각보다 컸지만 그 통증은 내가 노력하면서 세 달 만에 사라졌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몇 날 며칠 고생했는데 재활을 시작하니 통증이 많이 사라져서 잠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한쪽 다리에 부분마다 감각이 없다. 그리고 아킬레스건이 짧아 계단도 제대로 내려가지 못한다.


그래도 걷고 있다는 거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됐다. 엄마가 그때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 내 스스로가 강해질 때가 있어. 강해지겠다고 마음만 먹어서는 절대 강해지지 않아. 너는 지금 진짜로 강해지고 있는 거야.”

.

.

.

나는 그 시기에 모든 걸 잃었다. 최악의 상황이었고 내 인생에 바닥이었다. 그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 나는 엄마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로 인해 강해졌으니까.


아직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엄지발가락부터 통증이 생기고 시려온다. 그래도 이런 느낌이라도 드는 게 어딘가 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치면서 좋은 점이 생겼다면 계단 내려갈 때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 엄마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것, 그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엄마-

그 양념 갈비 어디서 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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