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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이드한 프로젝트가 드랍된 후 남은 것들

8톤 트럭을 끌다 멈춘 기분. PM의 성장통

by 기획하는 족제비


2025년 11월 회고에서 다루려다가 조금 더 깊게 다루면 좋을 듯하여 별도의 글로 분리했다.

내 성장의 자양분으로 잘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한 글.




프로젝트 드랍

결론부터 말하면 10월부터 준비하고 막 드라이브가 걸리던 프로젝트가 드랍됐다. 프로젝트가 드랍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일반 구성원의 입장에서 경험할 때와 많이 다르다. 아이템 선정부터 임원 보고를 통한 프로젝트 승인까지 온전히 내가 메이드하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인 듯하다.



왜 출발했고, 멈췄는가

드랍된 배경에는 크게 조직의 내년 사업방향, 내부적인 이슈, 비즈니스 임팩트,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자의 파워 부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천재지변 같은 거라 불가항력인 느낌이 강한데, 내가 조직에서 영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발제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을지언정, 현재 고투마켓을 하고 있는 유관 조직의 중요한 초기 제품이 사용자 경험적으로 온전한 제품 사이클을 만들고, 비즈니스 임팩트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8월에 내 팀에서 출시한 인재 매칭 솔루션(H.X)이 8~10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피봇 할 방향을 찾고 있었는데, 이때 시도할 만한 방향이라고 판단이 섰던 것도 있다. (동시에 약 한 달 정도 느슨해진 팀의 에너지를 다시 쪼이기 위함)



어떻게 진행하고 있었는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과정을 돌아보면 아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1. 아이템 탐색 및 선정

임원·조직 보고, 내 제품의 상황, 유관 조직의 상황을 바탕으로 아이템을 선정했다. 원래 리딩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임원과 정례회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 잘 발제된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2. 프로젝트 가승인

임원, 리더 협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설계할 명분을 획득했다. 나와 구성원의 리소스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우린 무엇을 할 것이다'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었다.


3. 초기 리서치 및 프로젝트 컨셉 스케치

조직 구성원들과 팀을 구려 프로젝트의 고객 페르소나를 분류하고, 리서치를 진행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부터 로드맵 그리고 산출물(제품)의 컨셉추얼한 디자인을 스케치했다. 에너지를 특히 많이 쏟은 과정이다. 프로젝트는 발제됐지만, 양면시장이란 성격을 가진 '인재 매칭 플랫폼' 특성상, 구직자-기업 세그먼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을 정의하는 과정과 그들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의 형상을 그려보고,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이었다.


4. 보고 및 조직 컨센서스 정렬

스케치한 내용을 바탕으로 몇 차례의 임원 보고를 진행했다. 이후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고, 동시에 타 팀과 협업할 명분(힘)을 얻었다. 이 또한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특히 '보고'라는 과정 속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결론을 내고 싶은지' 정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운 게 많다. 이 과정의 레슨런은 '의사결정을 위한 보고의 기술'이라는 글로 남겨눴다.


5. 타조직 협업을 위한 킥오프 미팅 및 실무

타조직 협업을 위해 사업 조직, 다른 제품 조직과 킥오프 미팅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기업 고객 인터뷰 준비, 제품 상세 기획을 진행했다. 백엔드 개발자는 병렬적으로 DB 설계를 진행하는 등 구성원의 실무가 본격 진행됐다.


6. And so on..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과정 속의 경험은 Conlfuence에 자산화해놨으니, 추후 다시 빛을 볼 날이 생기길 바라는 중이다.



비록 프로젝트는 멈췄지만, 얻은 건 많다.

프로젝트 구체화 단계의 흔적 ⓒ작가편집

위 경험에서 나온 산출물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은 10월~11월 중순까지의 내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것들. 12월 동안 딥하게 정리해 놓을 계획이다. 프로젝트가 결론적으로는 드랍된 것뿐이지, 그 과정 자체에서 얻은 경험이 매우 값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메타인지를 위한 회고 프레임워크가 있다.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 책임감. 구성원이 할 일(장작)이 떨어져 에너지가 약해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안타깝고 아깝다. 특히나 한때 강렬하게 불타던 구성원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들이 의욕을 가지고 달릴만한 일을 만들고 싶었다. 이 회사에 좋은 동료들이 오래 남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 외로움.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독하고 외롭다. 누군가 섣불리 도와주기도 힘들뿐더러,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구성원과의 상호호혜적 관계가 깨지며, 지시 관계가 생기다 보니 언제나 늦게까지 남아있는 건 내가 됐다.

- 아쉬움. 그만큼이나 드랍됐을 때 아쉬움이 컸다. 언젠간 부활할 프로젝트임은 명확하지만, 당장 부화시키려던 알을 다시 땅에 파묻는 기분.

- 한편으론 후련함. 이 프로젝트가 드랍되는 과정 중 우선순위가 분명해진 조직의 목표와 프로젝트가 있다. 그리고 가장 파워가 강력한 제품팀으로 이동하게 됐다. 지금보단 조금 더 작아진 역할이지만, 보다 명확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 만큼, 한편으론 후련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 모든 일을 혼자 할 필요 없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실무를 구성원에게 적절히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을 활용한 레버리지를 만들자.

- 아이템, 프로젝트마다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모멘텀을 잘 캐치해야 한다. 조직의 눈이 어딜 향해 있는지,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장의 상황은 어떠한지 등 조직 내·외부의 정세를 읽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키워야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걸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 더 많은 성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 어떻게든 한 발자국 앞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 과정이 무척 힘겹고 무겁더라도, 그 과정을 겪음으로써 '본인의 역치'는 올라간다. 8톤 트럭을 쇠사슬로 허리에 동여매고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다만 바퀴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 그다음 걸음은 조금 더 쉬워질 때가 온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다음에 시도한다면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 협업의 시점을 앞당기기 (프로세스 관점). 기획의 '초안' 단계부터 핵심 구성원을 참여시켜, '나의 프로젝트'가 아닌 '우리의 프로젝트'로 빌드업 과정을 설계해 보자. 초기부터 팀의 오너십을 확보한다면 실행 동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 '실패 경험' 또한 '자산'으로 모듈화하기 (마인드셋 관점). 드랍된 프로젝트의 산출물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을 넘어, 언제든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기획) 모듈'로 관리하면 중단이 실패가 아니라, 훗날 더 큰 기회를 위한 사전 준비 역할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투입된 열정과 시간이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게 더 많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 다시 다음 스텝을 밟아갈 차례니, 다시 시동 걸 준비를 해야지.


짧게나마 함께 깊게 몰입해 준 구성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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