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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삼프로젝트 Jul 13. 2021

지친 마음을 쉬어가는 곳,
옥수동 팔자집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6] 사람을 살리는 일, 팔자집 최현덕


혹시 사주 본 적 있으세요? 저희 사주 역사는 손에 꼽히는데요. 길 가다 친구가 보자고 해서 천막 안에 들어가 사주를 보았던 일(이 때는 제가 태어난 시간이 언제인지도 몰랐어요), 사주 카페에 가서 커플 사주를 봤던 일, 신년에 은행에서 제공하는 사주풀이를 보며 한 해를 기대해봤던 일 빼고는 정식으로 철학관에서 사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반면에 제 친구들은 사주 마니아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주를 보러 가서 조언을 구하고, 좋은 것은 함께 나누고 싶어서 친구의 친구까지 소개하는 마음이 넓은 친구들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복비를 내고 사주를 보러 가는 게 살짝 자존심이 상했어요. 내 삶은 내가 컨트롤하는 것인데 사주풀이를 듣고 휩쓸리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사주를 보고 온 친구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아, 친구들에게는 위로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올 상반기는 제 마음속에 질풍이 부는 시기였어요. 직장도, 집도, 연애도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답답했던 날, 친구에게 팔자집의 연락처를 건네받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들의 성지 ‘팔자집’의 문을 연 날,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공간은 심플하고 따뜻하고 컬러풀했습니다. 물론 다른 철학관을 가보지 않아서 비교 불가합니다만,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1시간 동안 사주 풀이를 들으며 제 마음은 큰 위로를 받았어요. 사주를 보고 팔자집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팔자집, 꼭 인터뷰 하자!”


활인 최현덕 @팔자집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팔자집에서 사주 풀이를 하는 최현덕입니다.


팔자집은 어떤 곳인가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철학관이죠. 철학이 맞긴 하지만 다른 의미의 철학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역술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곳에서 사주팔자를 가지고 상담을 해요.


상담을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잖아요. 

서양은 심리 상담이 발달이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일반적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철학관이에요. 실제로 심리상담학과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너네 이렇게 공부하면 역술인들한테 그 자리 다 뺏기는 거야!”라고 할 정도라니까요.(웃음) 그 정도로 우리나라는 역술원이 많이 자리 잡혀 있어요. 


심리 상담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역술원은 명리학에 근거한 사주팔자를 토대로 상담을 하는 곳이에요. 동양학은 중국이 근원지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사주팔자, 일본은 관상이나 손금, 홍콩은 풍수가 발달되어 있어요. 심리상담이든 역술상담이든 상담을 받는 사람의 아픈 점을 찾아주기도, 길을 열어주기도, 대화로 회고하기도 하는 등 총칭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점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데 사주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팔자는 또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주(四柱)는 숫자 사, 기둥 주자를 써요. 글자를 쓸 때 위에서 아래로 쓰게 되어있어요. 위에서 아래로 쓰니까 기둥같이 생긴 거예요. 생년/월/일/시 네 개의 기둥이 생겨서 사주(四柱)라고 말해요. 각 기둥 별 글자는 두 개씩, 총 여덟 글자가 되어 팔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덟 글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학문인 거예요. 사주와 팔자는 같은 말이에요. “아이고, 내 팔자야” 할 때 “이놈의 여덟 글자가 어떻게 생겼길래 이 모양이야” 하는 거예요.


알고 나니 너무 재밌네요. 점 보러 가자는 말도 많이 하잖아요.

점은 또 달라요.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의존하고 의지할 것을 찾는 성향이 있어요. 가끔 성공한 CEO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으면 “동전 던져서 했어요.” “그 순간 필통이 보여서 필통 사업을 시작했어요.”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점은 그런 우연에 나를 맡기는 거예요. 타로도 점술이에요. 고른 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팔자집도 오면 주역점을 봐드리고 그 뒤에 사주 풀이를 해드려요. 



팔자집을 하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해서 미대에 갔어요. 순수미술을 배우는 미술학도였어요. 보통의 미술학도들이 그렇듯 아티스트를 꿈꿨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졌어요. 미술학원 강사 일은 하기 싫고 돈을 모아 유학은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친구의 제안으로 갤러리 큐레이터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보통은 여성 큐레이터를 많이 구하는데 이 갤러리의 대표는 남자 큐레이터를 찾았어요. 인터뷰를 했는데 대표님이 저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하셨고, 그곳에서 7년을 일하게 됐어요. 면접보고 나와서 환호성을 질렀어요. 갤러리가 청담동 한복판에 있었는데 너무 멋진 거예요. 내가 작가가 되는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대생에서 갤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다 


꽤 오랜 시간을 갤러리에서 보내셨네요. 

처음에는 많이 깨졌어요. 순수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디자인 툴을 잘 못 다루거든요. 일러스트도 처음 배우고, 비즈니스도 처음이라 다부지지 못했고, 유학을 위해 언어도 배워야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늘더라고요. 팔자집 로고도 제가 만든 거예요. 갤러리는 저를 많이 성장시켜준 곳이에요. 사람을 대하는 방법, 비즈니스 마인드, 끝을 달리는 눈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준비하던 유학은 다녀오셨나요?

갤러리에서 일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대표님이 앞으로도 함께 갤러리를 하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고민이 정말 많이 됐어요. 갤러리에서 일하면서 해외 출장도 잦았고 아트페어도 나가는 등 즐겁게 일했거든요. 재미는 있었지만 영화로 치면 스탭이지 주인공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호황이었던 미술계가 가라앉기 시작해서 청담동의 갤러리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대표님이 제주도에 가서 귤농사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근데 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제주도에 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갤러리스트에서 역술인이 되기로 결심하다


애정을 담았던 곳인데 아쉬웠겠어요.

대표님이 처음에는 저를 붙잡았어요.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으셨던 거죠. 제가 그만둘 수 있는 길은 다른 옵션을 제시하는 거였어요. 저희 집은 역술인 집안이에요. 외할머니가 정말 유명한 무속인이셨고, 외삼촌 두 분이 역술 일을 하세요. 갤러리에 들어가기 전에 외삼촌이 가족들을 모아 수업을 열었는데 그때 역술을 배웠어요. 갤러리에 있는 7년 동안은 손을 놓고 있었는데 제가 역술 공부를 했다는 것을 대표님이 아셨거든요. 대표님을 데리고 외삼촌에게 사주를 본 적도 있었어요.(웃음) 


대표님이 정말 현덕님을 좋아하셨나 봐요.

네. 그래서 그만두는 길은 내가 역술인이 되는 것밖에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대표님 집에 가서 말씀을 드렸죠. “저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그 얘기 좀 그만 하래요.(웃음) “그럼 너 뭐할래?” 물으시더라고요. “저 역술할게요." 했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차마 그건 막지 못하겠다. 대신 갤러리에서 배웠던 걸 가지고 잘해봐라. 우리나라에 없는 다른 패러다임의 역술을 만들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든 해본다. 18시간의 축적.


그렇게 역술인의 길로 가게 되셨군요. 공부하기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당시 나이 서른넷. 말도 뱉었겠다 다시 갤러리에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도서관에 다니면서 하루에 18시간씩 역술 공부를 했어요. 근데 공부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부적을 쓸 때 옆에서 도장을 찍었거든요. 그때 들었던 용어들이 많아서 그런지 공부를 하면 쏙쏙 들어왔어요. 제 안에 역술인의 피가 흐르는 거죠. 한자도 많이 알고 있어서 접근이 빨랐고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주먹구구식으로 배우면 안 되겠더라고요. 미술의 역사를 알아야 그림도 더 잘 그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역술에도 바이블이 있지 않을까 찾아봤어요.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 삼대 보서가 있는데 이 보서는 무조건 읽어야 해요. 남이 주해한 거 말고 원론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공부한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부터는 조금씩 볼 수 있겠더라고요.




2015년, 드디어 팔자집을 열다 



엉덩이 싸움이 시작된 거네요.

여유 자금이 있어야 역술원을 오픈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영화 세트장에서 일을 하며 종잣돈을 마련했어요. 하…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총 14개의 영화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사다리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해야지, 페인트 칠도 해야지, 연평해전 영화에서는 배를 만드는 일도 했어요. 돈을 모으며 주경야독해야 했는데 영화 일을 할 때는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대신 돈은 많이 받았어요. 일을 하면서는 오로지 팔자집 생각밖에 없었어요. 공부한 걸 실전에 적용해보고 싶어서 영화판에서 함께 일하는 형님들의 사주를 봐드렸어요. “형님, 이혼하셨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 그게 거기 나오냐?”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시기였어요.(웃음) 


팔자집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갤러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도 딱 떨어져야 했고, 발음도 굉장히 중요했어요. 사주를 보면 저한테 좋은 숫자가 있거든요. 그게 8이었어요. 팔각집, 팔각형 등등 정말 많은 걸 생각했는데 사석에서 어떤 친구가 그냥 팔자라고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팔자집이 된 거예요. 이름을 짓는데 1년 정도 걸렸는데, 팔자집의 로고를 만드는 데는 딱 4시간이 걸렸어요. 



팔자집이 옥수동에 위치해있잖아요. 이곳에 오픈을 한 이유가 있을까요?

2015년에 이 자리에 팔자집을 열었어요. 집이 남양주인데 서울에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한 150군데 정도 보고 나니 하지 말라는 뜻인가 싶었어요. 한 번은 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건물주가 교회에 다니는 분이라서 철학관은 들어올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옥수동은 선택지에 없던 곳이었는데 부동산에 찾아간 날 딱 매물이 나왔어요. 그 자리가 지금의 자리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옥수동이 저한테 참 좋은 동네였어요. 구슬 옥(玉)에, 물 수(水)자를 쓰는데 저한테 금기운과 수기운이 잘 맞거든요. 산뜻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오픈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얻은 공간이잖아요. ‘잘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이게 최선이었나 싶고요. 아무튼 잘해보자 했죠. 그때가 이 더위 정도 됐을 때거든요.(6월) 사람이 안 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배너를 만들거나 플래카드를 걸어두는 홍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걸 한다고 잘 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역술인 외삼촌을 보면서 알게 되었거든요. 잘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은 사주를 봐주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방문한 손님은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정말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지인 찬스를 썼어요. 지인들도 한 두 달이 지나니까 올 사람이 없더라고요. 너무 더운 여름이었어요. 에어컨 트는 비용도 아까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웃통 벗고 앉아 가만히 있었어요. 그리고 계속 공부를 했어요. 분명 내 팔자는 사주 집을 운영하기에 좋다고 나오는데, 내가 잘못 봤구나, 아직 공부가 덜 되었구나 했어요. 근데 그게 어리석은 거죠. 어떻게 바로 되겠어요.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거죠.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제가 점을 쳤어요.(웃음) 그런데 돈방석에 앉고 귀인들이 줄을 서는 점이 나온 거예요. 그 점이 안 나왔다면 접었을 수도 있어요 정말. 나는 너무 힘든데 왜 좋은 점이 나왔지? 결국에는 하라는 뜻인가 보다 했죠. 



그 시간은 어떻게 버티셨을지 궁금해요.

벌어둔 돈은 팔자집을 오픈하는데 다 썼어요. 사주는 예약을 받을 수 있고 수중에 돈이 없으니 일이 없는 날에는 다시 영화판에 가서 일을 했어요. 그때는 사람이 오면 스페셜 서비스였어요. 3시간씩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니까요.(웃음) 복채도 20년 전 가격으로 받으면서 양으로 승부하려고 했어요. 와주신 분들이 주변에 소문을 내주면서 예약이 조금씩 늘었어요. 


지금은 예약하려면 3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 기점이 언제였나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귀인이 한 명 와주신 거죠. 상담이 끝나고 어떤 분이 “선생님, 이거 제가 블로그에 올려드릴게요.”하는 거예요. 저는 잘 모르니까 “아, 예. 고맙습니다.”하고 말았죠.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주말 아침부터 전화에 불이 나는 거예요. 예약을 하나 잡고, 또 하나 잡고, 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블로그를 보고 연락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점괘가 정말 맞았네요?(웃음)

그렇죠. 그때부터 예약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3달의 예약은 항상 잡혀 있고, 주말 예약은 6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할 정도가 됐어요. 감사한 일이죠.


블로그에 올라온 것이 시발점이 되었겠지만, 지금 7년 차에 접어들었잖아요. 현덕님을 꾸준하게 믿고 찾아주신 것 뒤에는 현덕님의 역할도 중요했다고 봐요.

처음에는 돈을 받고 상담을 해주니까 사명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럴듯한 하나의 상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인간은 모두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니까 다 아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아프다”하면 귀가 솔깃해지잖아요. 굳이 확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는데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넣기도 했어요. 그냥 밋밋하게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기교를 부렸던 거죠. 몹쓸 짓을 한 거예요. 


사주를 보러 오는 분들은 ‘이 사람이 뭔가 맞히겠지?’하며 기대를 하거든요. 당시에는 뭔가를 맞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근데 사주는 맞히라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낮은 수준의 상담이었어요. 방문해주신 분을 위한 상담이 아닌 반쪽짜리 상담이었어요. 




“현덕아, 상담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거란다.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내셨나요?

외삼촌이 역술인으로 지내신 지 30년이 되셨거든요. 삼촌이 그러시더라고요. “현덕아, 상담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거란다. 그걸 잊으면 안 돼”라고요. 그때 내 업은 활인이구나 싶었어요. 살 활 活 자에, 사람 인 人 자. 사람을 살리는 일. 누군가 나를 찾아왔을 때 활력을 주고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그러면 무조건 좋은 말만 해주시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희망을 주는 말만 할 수는 없거든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을 잘 풀이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 그게 상담가의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팔자의 이치는 명을 보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거든요. ‘아, 이 시기는 내 사주가 이래서 힘든 거구나’, ‘이 시기는 재물운이 없구나. 어쩔 수 없지! 다음 운의 때를 보며 앞으로 가자’할 수 있는 것처럼요. 


사주를 보러 어떤 분들이 주로 오는지 궁금해요.

정말 별에 별 사람이 다 와요. 천태만상인 거죠. 재벌가 사람, 연예인도 오고 알음알음 소개받아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아이는 사주를 봐주지 않아요. 자라나는 아이에게 앞으로 이렇게 될 거다, 저렇게 될 거다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밌게도 방문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행색으로 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람의 ‘꼴’이라는 게 있거든요. 지니고 있는 것, 말투, 향기, 옷차림으로 말을 해요.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꼴을 먼저 보게 돼요. 말하는 꼴, 행동하는 꼴, 그 꼴을 보면서 팔자를 같이 설명해드리죠. 



팔자. 부족한 것은 보완을 하면서 나를 바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특히 힘든 손님이 있나요? 

우리가 보통 케미라고 하잖아요. 역술에서는 궁합이라고 하는데 손님과도 합이라는 게 있어요. 같은 말을 해주도 못 믿는 사람이 있고, 깨닫고 가는 분이 계시는 것처럼요.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디, 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럼 그 상담은 반도 안 되는 거예요. 의미가 없는 거죠. 요즘은 명리학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어서 공부를 하고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상담이 더 잘 되기도 해요. 


저는 늘 궁금했어요. 사람이 정말 팔자대로 사는 것일까? 주어진 팔자를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해요. 여덟 글자는 생년월일을 기반으로 나오는 거니까 바뀌는 것은 아니죠. 거기에 살면서 운이라는 것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팔자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니까 큰 틀은 바뀌지 않아요. 같은 생년월시에 태어난 사람은 과연 똑같은 삶을 살지 궁금해요 저도.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있고, 나와 똑같은 팔자로 살아간 고대의 사람이 있을 것이고, 미래의 사람도 있을 거예요. 지금은 유튜브를 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는 거죠. 디테일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잘 풀리고 안 풀리고는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 더 궁금해지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든 정해진 팔자대로 산다고 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전혀 없는 것일까?

바뀌지 않는 것은 없어요. 모든 건 다 바뀌어요. 역술(易術)의 역 자는 바꿀 역이에요. 바꿔서 술하다. 내가 변하기 위해서 팔자를 들여다보는 것이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으로 살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거든요. 부족한 것은 보완을 하면서 나를 바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런 이치를 알고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명론(定命論)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거든요. 제한된 삶을 떠올리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잖아요. 제가 공부를 할 때 어떤 선생님이 일화를 하나 들려주셨어요. 옛날에 전쟁이 일어났대요. 그때 전사들에게 넌 오늘 죽는 날이 아니라고 말한 거예요. 그랬더니 나는 오늘 죽지 않으니까 더 열심히 싸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나를 화나게 하면 오늘은 내가 기분 나빠질 운인가 보다 해요. 돈이 뜯겨도, 상처를 받아도 지금이 그런 시기인가 보다 해요. 그러면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지더라고요.



사주를 보는 좋은 시기가 있나요? 

신년운은 새해가 밝은 뒤 보는 것이 원칙이에요. 신년에는 신년운을 보러 많이 오시고요. 팔자를 보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본인이 궁금하면 보는 거예요. ‘지금 회사를 그만둬도 될까? 지금 새롭게 사업을 시작해볼까? ‘운이 지금 시기에 따라줄까?’할 때 찾아오는 거죠. 


팔자집만의 특별함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팔자집을 시작할 때 서른여섯이었으니까 젊었어요. 영민하게 공부를 하고, 세련된 것과 접목을 시키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대화를 하는 게 제 장점이에요. 사주에 대해 자세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줘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내 상담이 손님에게 정말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상담해요. 상담이 잘 된 날에는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제 공간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제가 처음 사주를 보러 왔을 때 팔자집의 분위기를 보고 정말 놀랐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실내 인테리어, 로고 제작 모두 제가 했어요. 전시장에 들어갈 때 월 텍스트를 보고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팔자집 외부에 갤러리의 느낌을 주었어요. 실내 인테리어는 상담을 하는 곳이니 갤러리의 세련된 느낌이 아니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색감의 조화도 참 좋아요.

팔자에 5색이라는 게 있어요. 오행에서 파생된 개념인데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오방기(5색 깃발)도 빨강, 흰색, 노랑, 초록, 파랑을 써요. 여러 색을 함께 쓰면 좋거든요. 그래서 의자도 색이 있는 것으로 고르고, 창틀도 빨강으로 하면서 다양한 색을 찬란하게 두려고 했어요.



팔자집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지금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같은 자리에 계속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벌써 7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저는 그 시간이 덩어리로 느껴져요. 내 인생의 시간이 확 가버린 느낌이에요. 근데 어쩌겠어요. 다 내 팔자지(웃음). 


코로나의 영향은 없었나요?

다른 분들에게 미안한 소리일 수 있는데 역술은 전쟁통에 잘 되는 사업이라고 해요. 시기가 어려울 때 더 몰리게 되어 있어요.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관상을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워요.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세요?

남들이 하는 거는 다 해봐요.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요즘에는 식물에 빠져있어요. 물 주고, 분갈이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도 그려요.



어떤 걸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요.

별 거 아닌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 각자 다양한 이유로 돈도 없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만족을 한단 말이에요. 팔자라는 이론에서 접근해보면 운이 낮은 시기에는 자기의 처지나 상황을 낮게 만들어서 그 상황을 지나야 해요. 그러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운이 떨어졌는데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니까 힘든 거예요.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사람들 중 누군가는 팔자대로 운을 저조하게 만든 거죠. 그래서 행복하게 생명 연장을 하고 살아나는 거예요. 엊그제는 이정표를 보는데 종합운동장이 쓰여 있었어요. 근데 운동(運動)의 운자가 운명(運命)할 때의 운 자인 거예요. 옮길 운. 움직일 동. ‘운이 움직이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구나. 상담하러 오시는 분의 운이 저조하면 운동을 시켜야겠구나’ 깨닫는 거죠.


번아웃이 온 적이 있나요?

상담이 잘 안 될 때 오죠. 1~2년 정도 됐을 때 번아웃이 왔어요. 상담을 했는데도 찝찝하고 잘 안 맞는 손님들이 오면 힘들었어요. 가끔 사주도 잘 안 맞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왜 안 맞지? 내가 아직 공부가 덜 되었나? 자책했어요. 근데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해드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궁합이 잘 맞는 손님들은 단골도 되고요. 제가 손친이라고 불러요. 손님으로 와서 친구가 되거든요.(웃음)



자신의 공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애정이 담긴 공간은 느껴지잖아요. 음식도 한 숟갈만 먹으면 알아요. 사장님의 애정이 담겼는지 아닌지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애정’을 가지고 공간을 만들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역술 관련 책을 쓰고 싶어요.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술 풀이를 함께 담은 책이요. 손님들이 다녀 가면 자료조사도 하고 정리도 하고 있는데 제 삶이 바빠서 몇 년째 이야기만 하고 아직 못 쓰고 있어요. 


팔자집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요?

저 사람 정말 역술 잘하는구나. 다시 또 방문하고 싶다. 역술로 승부하고 싶죠. 역술원을 떠올리면 무서운 이미지가 있는지 친구를 데리고 오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역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팔자집이 쉽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저는 신이 아니고 여러분의 사주를 설명해주는 가이드예요. 저와 같이 자신의 인생을 탐방했으면 좋겠다, 저를 잘 이용해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덕 님, 지금 행복하신가요? 

네, 행복해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에요.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거든요. 힘이 있으면 사람들은 오게 되어있다. 이렇게 인터뷰를 와주신 것도 제가 힘을 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제가 꿈이 하나 있는데요.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도록 활동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어요. 배철수의 음악캠프. 고등학교 때부터 들은 것 같아요. 저는 배철수 님의 대화 방식이 정말 좋아요. 누군가 “음악이 별로예요.”하면 “그런 분도 계시지만 좋아하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삶이 다양한 거죠”하는 표현 방식이요. 철수 아저씨가 청취자들과 대화하는 게 상담하는 것과 닮아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매일, 같은 시간에 생방송으로, 30년을 넘게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편한 사람으로, 길게,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 인생의 첫 공식적인 사주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삶은 결국 내가 꾸리는 것이지만, 삶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미 지나온 일에는 태연해지고, 앞으로 다가올 일에는 기대를 채우는 것. 



내가 변하기 위해서 팔자를 들여다보는 것이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으로 살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거든요. 부족한 것은 보완을 하면서 나를 바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런 이치를 알고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앞으로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좋은 일은 기쁜 마음으로 끌어안고, 힘든 일은 언젠가 지나갈 일로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특히 현덕 님이 건넨 애정 가득한 말들은 씨앗으로 마음에 콕콕 박혀 언젠가 싹을 틔우고 자라날 거예요. 지금의 시간을 열심히 채워 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어나 있을 그때가 정말 기다려지고 기대가 됩니다. 



기획 및 글: 라씨&리에

사진: 지노




삼삼삼 프로젝트의 시작

한 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셋이 모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셋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한 달에 한 번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적인 인터뷰의 대상은 자꾸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공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자꾸 묻다 보면 공통의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와 영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스타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samsamsam.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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