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편? (너는 내가 편해?)

(Are you still be free when with me?)

by 찰스 생각

편한 이들과의 시간, 공간, 생각 나누기는 항상 즐겁다. 반대로, 불편한 이들과의 시간, 공간, 생각 나누기는 ‘그렇지 않은 척하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동안 이런 것들은 첫인상을 부여받는 것(수동태)처럼 편함과 불편함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거라 생각했다. 풀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알고 있는 그 어떤 편안함 과 그 어떤 불~편안함이다.


요즘 즐거운 취미활동 공간에서, 자주 보는 이들 속에서 불 편안함이 내 속에 생기면서, 이제야 스스로에게 “편한 이들은 누구인가?” 질문해 보았다.


‘누구의 정의’는 그의 인생에서 영향을 미친 정치적 성향, 경제적 위치, 성장의 과정, 직업 및 직장 경험, 가족 구성원 속의 위치 등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쌓인 정성적 결과물(Qualitative Outcomes)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물을 그 누구의 생각, 성격, 성향, 습관 등으로 표현해 볼 수 있을까?

그 누구는 각자가 살아온 시간만큼, 영향을 받은 만큼 안정적으로 그것들을 쌓고 만들었고, 그 만들어진 것들을 그 누구는 세상을 보는 마음속 기준으로, 그리고 표현의 등대로 사용하지 않을까?

그 결과, 그 세월만큼 그 영향만큼 우리들 각자는 서로 분명히 다르고, 또한 각자는 쉽게 외부 영향으로부터 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나이 든 이들이 젊은 이들의 논리적 말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화내고 또는 나이로 이겨보려고 경우를 본다. 한국 살면서 이런 경험 많이 했다.


각자는 이리 다르고, 각자의 정성적 피조물 오류를 인정하고 바꾸는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만나는 많은 이들 중에서 편한 이들을 찾고, 그렇게 찾아진 편한 이들과의 시간, 공간, 생각 나누기를 좋아한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 편안한 시간, 공간, 생각 나눌 수 있었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 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다름이 만나서 갈등, 분쟁 없이 그 편안함이 어찌 생겨날까? 싶다.


질문과 답변 속에서 답이 있었네!

이들은 그들의 세월 속에서 쌓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기, 상대 이야기 들어주기, 자신을 쉽게 설명해 주는 것들이 반영된 성격, 성향 및 습관들을 가지고 있어, 상대는 이런 이들과의 시간, 공간 속에서 생각 나누기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더 깊어지고 편해지는 이들을 보면 고요하며, 응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과하고 감사하는 것에 아낌이 없는 이들이다. 그분들이라고 그런 불 편안함이 없었겠는가? 결국 그것들은 그들을 위한 마음이 된다. 이들의 행복은 밖이 아니라 그동안 스스로가 타인에 보여준 결과물의 크기 일 것이다.


넌 네 편? (너는 네가 편해?) Are you still be free when with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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