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재명을 알아보다

by 또 래 호태

☞ 들어가며

인물에 대한 호. 불호를 떠나서 이제는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 한 명쯤은 있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번에도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4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4년 후 그 차기가 성공할지 여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소망은 과도하고 또 기대난망이어야 할까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최근에 핫이슈가 되고 있는 '뉴 이재명'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뉴 이재명'은 무엇인가


'뉴 이재명'은 인물 교체가 아니라 정치 방식의 전환을 주장하는 담론입니다.


그 핵심은 적대와 원한 중심 정치에서 실용·성과 중심 정치로 이동하겠다는 선언에 있습니다.


또한 강한 진영 상징을 넘어 확장 가능한 리더십으로 재포지셔닝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과거 민주화·개혁 서사에 정체성을 두는 레거시 지지층과 대비되어, 이념적 충성보다 문제 해결 능력을 우선하는 확장 지향 지지층을 겨냥한 개념입니다.


다만 그것이 실제 ‘사건’이 되려면 선언이 아니라 제도와 정치 문화의 변화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절과 확장 사이에서


'뉴 이재명'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와의 단절, 다른 하나는 새로운 확장입니다. 하지만 단절은 과거를 전부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요소는 남기고, 어떤 요소는 잘라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끊어야 하는가?"


왜 단절이 필요한가


어떤 사회든 방치하면 커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분노, 원한, 적대감, 패거리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처음엔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계속 두면 공동체 전체를 덮습니다. 그때 정치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과거의 상처를 반복 호출하는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한국 정치에는 이런 반복이 있었습니다.

보수는 특정 지도자의 죽음을 호출합니다.

진보는 다른 지도자의 비극을 호출합니다.


그 기억은 슬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집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기억이 미래를 여는 힘이 되느냐, 아니면 분노를 계속 재생산하는 장치가 되느냐입니다.


'사건'이라는 말의 의미


사회 현상을 논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진리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여기서 사건이란 발생한 특정 사안이 아니라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는 원래 저런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아, 다를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의 시간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뉴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치는 다를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철학이나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이것입니다.


사건은 이름이 아니라 변화로 증명됩니다.


무엇과의 단절인가


이 담론에서 말하는 단절의 핵심은 사람과의 단절이 아니라 정치 방식과의 단절입니다.

특히 이런 방식들입니다:

적을 악마화해야만 존재하는 정치

피해자 정체성을 계속 소비하는 정치

분노와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는 정치

과거의 상처를 반복 호출하는 정치


이런 정치에서는 적이 완전히 사라지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적이 있어야 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등은 끝나지 않습니다. 적대는 구조가 됩니다. 구조가 유지돼야 먹고사는 부류가 있습니다.


단절의 핵심은 정치방식과의 단절이지만 엄밀하게는 단절해야 할 정치방식을 확산하는 부류들을 단절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도권 다툼이 일어납니다. 소위 명.청대전은 레거시 지지세력과 뉴이재명 사이의 다툼이지만 결과 예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확장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확장은 무엇일까요?

확장은 단순히 지지층이 넓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언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미래를 말하는가

피해가 아니라 책임을 말하는가

적대가 아니라 제도를 말하는가


이 세 가지가 달라질 때 비로소 “이전과 이후”가 갈립니다.


반복 강박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심리학에는 이런 개념이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은 그것을 반복합니다.


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해결하지 않고

상징만 계속 불러내면 사회는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분노를 다시 자극하는 순간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타르시스는 잠깐 뿐입니다. 구조는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가.
그게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험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뉴 이재명'이 철학이나 담론에서 말하는 하나의 '사건'이라면, 그 사건은 이렇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정치가 덜 적대적이 되었는가

제도가 더 투명해졌는가

비판이 가능해졌는가

미래에 대한 설계가 구체화되었는가


이것이 없다면 그건 사건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정권 교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것이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이전과 이후가 나뉩니다.


마무리


정치 지도자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상징성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와 시민의 성숙입니다.


단절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확장은 열광이 아니라 실력의 문제입니다.


“뉴”라는 말은 선언이 아니라 검증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일까요?



☞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공작왕'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공작왕' 상징 인물이

사망했습니다.


기왕에 고정한 풍자적 글에 비판적 시각을 입혀 공작왕에 생존왕을 나란히 세워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책 제목에 '초인'을 초대했습니다. '우버멘쉬' 또는 '위버멘쉬'라 부르는 바로 그 '초인'입니다.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이며 가치를 새로 설계하는 존재. 지금은 시대적 가치가 새로 자리 잡아야 할 때입니다.


제가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부제_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 가치 설계가 그 주제입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긴 하지만 '뉴이재명'이 하나의 시대적 사건이 되도록 글을 써보겠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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