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수백 년 전의 우리나라는 제법 선진 문화국가였다. 태양을 적절히 활용하는 농업 기술을 확보하고 후세에 전수하는 모범적인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국가라는 훌륭한 사회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농토를 늘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一環)으로 해안에서 간척사업을 일으켰는데 하나의 예로 지금 강화도의 모습이 지도상에서 둥그런 고구마 모양이 되었다. 산지를 화전으로 개간하여 곡식 생산량을 늘리려고 하였다. 농사기술의 개발도 엿보인다. 곳곳에 저수지를 건설하여 수해와 가뭄에 대비하고자 하였고, 사람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호미, 낫, 쟁기, 달구지 등 농기구를 제작하기 위한 대장간도 발달하였다.
식물의 종자 개량과 보존을 위한 노력이 있었고. 농사기술을 연구하고 전승하기 위한 농서도 저술하였다. 설날이나 추석 등 주요 명절은 음력으로 정했지만, 농사를 짓는 데에는 태양의 활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태양력을 응용한 24 절기를 지켜 농사를 지었다. 오늘날에 보면 매 절기는 매달 5~8일 또는 20~23일로 떨어진다. 예를 들어 2023년에 청명은 4월 5일, 동지는 12월 22일이다. 아울러 대마초, 모시, 목화, 누에 등으로 옷감을 만드는 기술도 보유했고, 목재를 벌채하고 주위의 돌과 흙을 사용하여 집을 짓는 건축기술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자 문화생활에도 신경을 썼다.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고, 중국의 고시를 번역하고, 춘향전, 홍길동전 등의 소설이 전해 내려온다. 궁중음악뿐만 아니라 판소리 등 나름대로 음악이 발달하였고, 궁중의 행사를 그림으로 남기고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도화서에서 화원(畫員)을 육성하였고, 신윤복과 김홍도 등 훌륭한 옛날 미술가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러한 농경문화는 중국 등 대륙 세력의 영향으로 가능하였다.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사대주의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 중국에 정치, 군사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도 예속을 감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태평 세대는 해양 세력의 등장으로 파탄이 났다. 중국이 서구 열강의 표적이 되었고, 우리는 먼저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일본의 먹이가 되었다. 이런 서양 우위의 원인은 산업혁명으로 태양의 에너지 활용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꾼 과학 기술이었다. 이런 세계의 변화 속에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런 추세 속에 우리는 그 원인을 분석하여 나름대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교육에 힘쓰고 식자들은 문화 활동에 치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려는 세력이 등장하고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일어나서 많은 인명의 살상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19세기 초의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또한 사회적으로 큰 변혁을 겪게 되고 많은 사람이 신음하게 되었다. 산업화 사회에서 사람들이 기계의 부속처럼 일하며 큰 고생을 하였고,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 가서 중노동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 전쟁이나 혁명의 이름으로 많은 개인이 희생되었다. 한국전쟁도 그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전쟁으로 고생하고 희생된 사람들은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의 의식이 바뀌고, 국가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우리나라를 세계무대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시기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김규동(1925~2011) 시인은 그의 스승인 김기림(1908~?) 시인이 일제 말기 고향인 함경북도에 내려와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를 할 때를 회고하며 쓴 글에서 김기림 선생이 문학을 제대로 알려면 수학과 과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담겨 있다. 이 글에서 보면 김기림 시인 본인도 수학을 공부하여 일제 말기에 영어 교사에서 수학 교사로 직업을 바꾸기까지 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론, 고등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기림 시인은 한국전쟁 통에 행방불명되어 사망일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김기림 시인은 1930년대에 우리 문단에 모더니즘 이론을 도입한 기수로 참으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다. 모더니즘이란 기존의 현실주의(realism)와 합리적인 기성 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 문명이 가져다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를 일컫는다고 한다. 모더니즘을 신봉한 문인들은 기존 낭만주의 시들이 지닌 지나친 감정 노출 등을 비판하고 단단한 형식, 지성에 의한 감정의 통제 등을 표방하였다.
이제 이 책에서 필자가 쓰려고 하는 글의 주제는 우리 생활의 주변에서 느끼는 에너지에 관한 것이다. 어려서 농촌에서 자랐지만, 인류가 농업을 일으키면서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에너지를 생존에 활용한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 한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가 에너지의 관점에서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란 이름으로 황폐한 산림을 재건하고 공업을 일으키는 과정에 필자가 보고 공부한 내용을 기술할 예정이다.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이고 우리가 방송이나 통신에서 활용하는 전파와 빛의 성질이 같다는 것을 앞선 책들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전자기파도 결국 에너지의 전달 수단의 하나인데, 인류가 전파에 정보를 실어 보내는 기술을 개발하여 정보화 시대를 맞게 되었다.
필자는 지금 어떤 과학적인 패러다임을 전제하고 이 글을 저술하고 있다. 필자가 평생에 걸쳐 교육받은 자연과학적인 지식과 경험을 독자들이 이해하리라는 전제 아래에서 이 글을 한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필자와 과학적인 패러다임이 일치하지 않으면 글의 의미가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런 부분이 나오면 독자는 글이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고 그냥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시기를 바란다. 계속 읽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생활과학 에세이 시리즈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실로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체나 생명은 태양이 보내주는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태양이 없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식물 중에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흡수하여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하려는 식물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해바라기라고 부른다. 식물은 이동성이 제한적이니까 자신의 몸을 해를 향해 비트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동물의 경우 이동이 자유로우니까 추우면 해를 따라가고 더우면 해를 피해 간다. 그러나 동물은 태양으로부터 먹이를 직접 취하는 법이 없다. 초식동물은 식물을 먹이로 취하고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양식으로 취한다.
우리 인간은 잡식이다, 인류 문명사회의 발달로 인간은 현재 먹이 구하는 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의 발달로 지구상의 모든 변화는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고 이를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지구를 정복하였다. 필자는 여기서 ‘해따라기‘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는데, 해를 그냥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해를 따라다니는 존재라는 뜻이다. 식물 이름인 ’해바라기‘에서 두 번째 글자를 ‘바’에서 ‘따’로 바꾸면 된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sunfollower’이다. 해바라기를 뜻하는 영어 sunflower에서 ‘f’ 글자 다음에 ‘ol’을 첨가하면 된다. 요즈음 인터넷 시대에 팔로워(follower)란 용어는 낯설지 않다.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의 팔로워 숫자로 유명해진 사람도 있다.
윤회춘색(輪迴春色)은 다 지나가고 황국(黃菊) 단풍이 다시 돌아오누나.
이에- 지화자자 좋다.
천생만민(天生萬民)은 필수지업(必授之業)이 다 각기 달라
우리는 구태여 선인(船人)이 되어 먹는 밥은 사자(使者) 밥이요,
자는 잠은 칠성판(七星板)이라지.
옛날 노인 하시던 말씀은 속언(俗言) 속담(俗談)으로 알아를 왔더니
금월금일(今月今日) 당도하니 우리도 백 년이 다 진(盡)토록 내가 어이 하잘꼬?
이에- 지화자자 좋다.
서도민요, <배따라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해따라기’라는 말은 없고, ‘배따라기’는 있다. 배따라기는 ‘배 떠나기’가 본딧말로서, 공식적으로는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의 출발 광경을 묘사하는 서경(西京) 악부(樂府) 열두 가지 춤의 한 가지 또는 그 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다. 그러나 통속적으로 ‘배따라기’는 ‘배를 떠나보내는 노래’라는 뜻으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고기잡이하는 뱃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민요이다. 일명 서도(西道) 민요라고 한다. 민요 ‘배따라기’는 어부들의 고달픈 생활을 읊은 구슬픈 노래이다. <배따라기>는 1921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제목이고, 1973에 동명의 영화가 제작된 바 있다. 1980년대 초에 활동하던 음악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소설 <배따라기>에서 민요 ‘배따라기’를 부르는 인물 역시 뱃사람이고, 이 소설은 이 어부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리고 있다. 노래 속에 삭이지 못할 뉘우침이 잠겨 있고, 바다에 대한 애처로운 그리움이 녹아 있다.
‘배따라기’가 무언가 떠나가는 이미지를 갖고 숙명적인 인생을 묘사하는 말이라면, ‘해따라기’는 적극적으로 해를 따라다니는 진취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해따라기’는 해가 내려주는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많이 받으려는 적극성이 돋보이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책의 제목을 ‘해따라기’라고 지었다. 우리 모두 태양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그 노력이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과학 기술에 관한 지식이나 활동일 수 있겠으나, 각 개인이 나름대로 일상생활에서 생각해 볼 소지는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