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돌덩이를 깎아내는 퇴고의 시간
누군가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늘 입안에서 맴돌다 흩어지기 일쑤다. 살아온 세월의 무늬가 다르고, 아침을 맞이하는 습관이 저마다 다른데 글쓰기라고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동백의 씨>를 쓴 고동주 작가 또한 같은 질문 앞에 곤혹스러워하다 결국
"수필은 가슴으로 써야 한다."
라고 답을 했다.
가슴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에 호소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흔한 풍경 하나도 예사로 넘기지 않고,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으로 집요하게 살피는 행위이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서 삶의 어떤 의미를 길어 올릴 것인지, 그 서사에 어떤 빛깔을 입혀 부각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단계, 그것이 수필의 시작이다.
주제가 정해졌다고 해서 글이 곧장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 주제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할 '날것'의 소재가 필요하다. 때로는 신선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낯선 현장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적절한 소재를 낚아채면 틈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그 형상을 굴려본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장의 뼈대를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이 무형의 작업은 작가에게 가장 고독하면서도 뜨거운 시간이다.
생각의 틀이 잡히면 비로소 원고지 위에 요점을 정리하고 '초벌 쓰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이다. 작가들에게 가장 고통스럽고도 외면하고 싶은 시간, 바로 '퇴고'의 영역이다.
초고는 거친 돌덩이와 같다. 군더더기 살점은 없는지, 선택한 소재가 주제와 단단히 결합하였는지, 문학적 향취가 배어 있는지 살피며 애를 태운다. 읽고 또 읽어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 화수분처럼 터져 나온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중간 정서를 하고, 다시 한번 퇴고의 칼날을 들이댄다. 고동주 작가는 이렇게 세 번째 정서까지 마친 후에야 겨우 자식 같은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는다고 고백했다.
글쓰기 전에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며 깜박이는 커서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워밍업'의 시간조차, 사실은 이 고통스러운 여정에 몸을 던지기 위한 비장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고도 혹여 독자의 시선에서 외면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 그것은 글쓰기가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기술이 아니라 '뼈를 깎는 고통'임을 증명하는 증거이다.
수필은 나를 발가벗겨 세상에 내놓는 일이다.
나의 삶을 재료 삼아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퇴고의 끝에 단 한 줄, 내 영혼의 색깔과 꼭 닮은 문장을 발견할 때 작가는 비로소 숨을 쉰다.
오늘도 나는 하얀 화면 위에서 명멸하는 커서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가슴'으로, 누군가는 '술기운'을 빌려, 또 누군가는 '치열한 현장'에서 저마다의 수필을 빚어낸다. 이 뼈를 깎는 고통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비로소 한 편의 문학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