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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PLERS Jun 08. 2017

불면

아 잠 안 와 미치겠네

샘, 솜, 와이프, 나 모두 전주에 다녀왔다.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는데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내내 전주, 장수, 고창에 있으면서 가게 생각, 직원 생각, 메뉴 생각, 매출 생각, 돈 생각을 좀 안 해보았다. 전주 시내 구경을 하고 말 걸리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황태를 사다 맥주와 먹고 외조부모님 산소에도 다녀오고 작은 외할머니 사과 과수원도 다녀오고 전주 한식 명인이신 이모할머니의 식당도 다녀오고 장인어른 산소에도 다녀오고 고창 장어도 먹고 전주에서 뜬다 하는 카페도 다녀오고 수요일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다시 서울로 왔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집을 떠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만날 가게 생각, 직원 생각, 메뉴 생각, 매출 생각, 돈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말이다. 3일 동안 항상 띵하던 뒷골이 개운하고 두근거리던 마음도 안정되고 얼굴에 웃음끼도 돌고 사랑하는 와이프 얼굴 더 자주 보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너네 없이는 못 산다고 더더더 고백하게 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느릿한 삶이 얼마나 매력 있는지 알게 되었다. 


딱 3일뿐이었다. 서울로 올라갈 때가 오니 제 버릇이 나온다. 전라도의 농작물을 보고 나니 서울에서 이걸 가지고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와이프에게 이런저런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던지며 "말 되지 않아?"하는 말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러면 그렇지. 수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윤경 양식당 잠실점으로 향했다. 몰려오는 점심 손님들에게 연신 인사를 하고 계산을 하면서 주방을 보니 일 하는 게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 한 두 분이 나가시면서 음식에 대한 컴플레인을 살짝 하고 가신다. 혹시나 해서 SNS를 뒤져보니 잠실점 음식에 대한 이슈가 살짝 보인다. ㅅㅂ. 점심을 치고 집으로 왔다. 쉴 틈도 없이 컴퓨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돈 보내 줄 곳이 몇 곳 있어서 돈을 보내주고 해야 할 일 들을 적어 보았다. 대충 적었는데 번호로 20개가 넘는다. (이걸 다 할 수는 있을까?) 뭔가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하다. 일찍 일어나 운전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일찍 자고 싶다.


2살, 3살 아이 둘이 있는 집에서는 일찍 자고 싶어도 일찍 잘 수가 없다. 첫째가 낮잠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12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난 정말 오늘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싶었다. 일찍 일어나서 동네도 한 바퀴 돌고 기도도 하고 하루 계획도 세우고 으쌰 으쌰 잘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애들이 자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도깨비 카드를 들고 나왔다. 도깨비가 전화하는 앱을 이용해 첫째를 위협해서 침대로 보내 재우는 데 성공했다. 이미 시간은 12시 반. 


나도 그냥 자고 싶었다. 아니, 잘 수 있었다. 애들 재우면서 나도 졸렸다. 아무것도 없었다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꿈나라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러. 나 내일 윤경 양식당 본점 직원 이모님이 쉬시는 날이라 인력 사무소에 사람 보내달라고 문자를 넣어야 한다. 잠실점 설거지 이모도 보내달라고 해야 한다. 잠이 올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이모 생각에 번쩍 일어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그리고는 잠이 오질 않는다. 젠장. 


맥주 한 캔을 따고 컴퓨터를 켜고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사업하다 보니 페북에 잡담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별 사람들 보지 않을 것 같은 브런치에 남긴다. 이런 쓸데없는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 뭔가 의미 있는 걸 쓰려면 졸라게 골 아픈데 잡다한 이야기 쓰고 있으니 글이 술술 나간다. 맥주도 맛있다. 그러나 난 자고 싶다. 일찍 일어나서 동네 산책도 하고 커피 한잔과 함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처럼 명상이나 기도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뭐 그렇게 살고 싶다. 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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