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PLERS Jun 20. 2017

목적과 수단

THINGS 3

오래간만에 밤을 새웠다. 밤을 새우고 지금 새벽 1시를 넘기고 있다. 20대 이후로 밤새고 이런 컨디션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오늘 좀 이상하다. 아무튼 밤을 새운 이유는 좀 황당하다. 종이에 대충 적어둔 할 일 리스트를 컴퓨터에서 정리할 서비스를 고르고 적용하는데 밤을 새웠다.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일을 하느라 밤을 새우는 게 아니라 일을 정리하느라 밤을 새우다니 드디어 정신이 나가셨나 보다.


할 일을 정리하기 위한 서비스로 THINGS 3을 선택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애플에서 주는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고 나온지도 얼마 안 되고 소개 영상이나 디자인이 좀 멋진 것 같아서 선택했다. 데스크톱은 얼추 6만 원 정도 하는 것 같고 폰은 1.2만 원 정도 하는데 다행히 데스크톱 버전은 15일 트라이얼 기간이 있어서 써보고 있고 아이폰용 앱은 과감하게 질렀다. 목적보단 수단이 먼저다.


난 계획이나 관리, 일정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굳이 적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고 가끔 삘 받아서 적다가도 중간에 맘에 안 들어 다 지우거나 버려버리는 스타일이다. 일정 관리 따위는 없고 일이 있으면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디데이 새벽에 삘 충만하게 받아서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스타일이다. 문제는 살면서 이런 방식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러. 나 이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관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이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일도 많고 손님도 많고 암튼 많다 많아.(빚도 많다) 그래서 먼저 찾은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설루션 즉 수단이다. 수단은 비쌀수록 좋다. 메모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적어도 몽블랑에 가죽 껍데기 노트는 준비해야 그 마음가짐이 오래갈 수 있다. 나 같은 의지박약인 사람들을 위한 방법이다.


아무튼 THINGS 3을  깔고 할 일을 정리해보니 프로젝트가 8개 투두 리스트가 50개 정도 된다. 오늘 하루 일정도 캘린더에 고이고이 적고 나니 아침이라 바로 계획에 맞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산책도 하고, SNS에 포스팅도 하고, 거래처도 챙기고, 매장도 돌고, 음식 맛도 보고 뭐 평소에 빼먹고 지나가는 일을 꼼꼼하게 하나씩 챙기다 보니 졸린 줄도 몰랐다.


참으로 훌륭하고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제일 신뢰하던 33 HAUS 점장이 집이 멀어져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한다. 에휴. 암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적과 수단을 도치시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오늘 아니 어제 할 일이 20개 정도 되었었는데 아직 클리어 못한 게 13개다. 그래도 어딘가 7개는 했다는 소리 아닌가? 으하하하.


자자.

작가의 이전글 BUSINES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