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직업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존댓말로 쓴다고 썼는데 쓰는게 부담이라 점점 안쓰게 되더라. 그냥 대충 쓰기로 했다. 10년 전 하루에 수천에서 수만 명이 오는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끄적인 글이었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별건 아니지만 쓴다는 건 매력적이고 읽힌다는 건 치명적이다.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걸 안 할 이유가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자신이 어느 땅에 발을 딛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아니, 이걸 안다는 게 나 자신을 아는 것의 시작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건 인생의 가장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 중에 하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이 프로젝트의 일부이기도 하다. 근데 자신이 어떤 게임판에 서 있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 보면 참 복잡한 생각이 드는데 가끔 나도 그럴까 걱정이 된다.
난 사업가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S/W 엔지니어를 하고 IBM Global Technology Services에서 세일즈를 하고 작지만 알찬 브랜딩&마케팅 컨설팅회사에서 컨설턴트를 하고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마케터로 일을 했다. 그러나 이런 누더기 같은 이력서가 더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난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난 더는 이력서를 쓸 일이 없다. 이력서를 쓸 필요가 없다는 건 정글에 있다는 뜻이다. 정글에서는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생존, 생존을 위한 문제해결이 존재할 뿐이다. 사업가는 나의 마지막 직업이다. 내 마지막 직업을 후회 없이 잘 해내고 싶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매일 조금씩 지경을 넓혀서 죽을 때 가장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