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왜 왔니
20년에 걸쳐 우리 집에 왔던 동물들 중 지금은 김옹만 아직 집에 누워있다. 말 그대로 야옹이다. 올블랙에 센스 있게 화이트로 포인트를 준 고양이다. 김옹은 하루에 최소 15시간은 잠을 잔다. 그래서인지 항상 뱃살이 출렁거린다.
김옹이 처음 어떻게 우리 집에 동거하게 됐는지는 지금 당장 떠올리고 싶지 않다. 어차피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익숙한 김옹과 낯설게 만나는 장면을 밟게 될 테다.
요즘 부쩍 김옹은 애교가 많아졌다. 고양이가 영역동물이란 사실이 거짓처럼 느껴진다. 잘 때도 엄마나 내 품에 꾸역꾸역 들어온다. 마치 검은 핫팩을 두르고 자는 듯하다. 잠결에 팔로 김옹의 뱃살을 쳐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가 변했다.
석 달 전 칠월이가 우리 집에서 나갔다. 칠월이도 나가기 싫어했고, 우리도 나가지 못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막을 순 없었다. 칠월이는 김옹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긴 시간 동안 우리 집을 지킨 강아지다. 칠월이는 김옹과 반대로 올화이트에 갈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소파에 둘이 앉아 있으면 마치 거대한 바둑을 보는 듯했다.
바둑도 그렇듯 흑백이 보기엔 조화로워도, 어쨌든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다. 보통 흑이 선이기에 공격 포지션이고 백은 보다 고수라 방어부터 한다는 바둑의 관례를 들어본 적이 있다. 김옹과 칠월이도 그랬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칠월이는 쉬고 싶어 했지만, 어린 김옹은 그녀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참 김옹은 남자고 칠월이는 여자다. 물론 바둑처럼 승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건 아니었다. 단지 조금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서로 등을 맞대고 잠에 들었다.
칠월이를 보내주던 새벽에도 김옹은 늘 잤다. 괘심 했다. 아무리 개와 고양이는 다르다지만 친구가 떠나는데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칠월이가 잠시 집을 비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칠월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한다는 걸 알았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우리 가족은 이제 칠월이 사진을 보면 눈물보단 웃음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야 김옹이 다시 보였다.
김옹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을 더 자는 건 아니다.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있다. 김옹이 움직일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다가도 화장실을 가다 칠월이를 앞발로 톡 건드리던 김옹이었다. 또 김옹은 사료와 츄르를 제외하곤 사람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래도 김옹은 항상 주방에서 어슬렁거렸다. 주방에서 엄마가 음식을 하고 있으면 칠월이가 그 아래에서 고기를 달라고 졸랐다. 칠월이를 만져주고 있으면 김옹은 어디선가 야옹하고 뛰어와 몸을 비비기도 했다.
그렇다고 김옹은 칠월이처럼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 밖을 나서는 걸 두려워한다. 하루 종일 김옹과 있어보면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딱 하나 생긴다. 너는 이 집이 네 세상인데, 여기가 재밌니?
김옹은 여전히 자고 있다. 밥도 먹고 물도 마시며 화장실도 간다. 츄르를 들면 눈이 커지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힘이 없어 보인다. 유연한 몸을 늘렸다 접었다 하는 일도 귀찮아 보인다. 괘심 하다고 생각했던 게 많이 미안해지는 중이다.
그렇게 보면, 칠월이가 우리 집에 왔던 이유는 김옹이 있어서였을까. 분명 칠월이가 한참은 먼저 들어왔으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 김옹이 집에 있는 이유는 칠월이가 좋아서일까.
둘이 함께 놀던 모습으로 가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