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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지 않은 개, 피스는 짖을 수가 없었다… 미용실습견 ‘피스’의 외침]
부러진 턱뼈 탓에 입을 오므릴 수조차 없었다. 동물미용학원 실습 과정에서 미용대에서 떨어지며 턱뼈가 부러졌다. 심지어 피스는 번식장에서 태어나 유선종양도 가지고 있었다.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몸은 닳을 대로 닳은 상태였다……
내가 탈출하기 직전 번식장과 동물미용실습학원의 유착 관계가 세상에 드러났다. 뉴스에서 피스가 공개됨으로써 말이다. 미용학원은 실습용 동물이 필요했고, 번식장은 최소한의 돈으로 개를 팔면 그만이었다. 동물자유연대의 신고로 조사가 시작됐고, 학원 뒤편에 버려진 피스는 사장의 집으로 왔다.
피스의 상태는 뉴스보다 더 참혹했다. 입가죽이 너덜너덜 늘어나 있었다. 일어날 힘도 없었다. 옆방이었지만 말 한마디 건네기를 망설였다. 방치된 녹슨 도구 같았다. 타이틀은 피스의 외침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 모습이 내 기억 속의 마지막이었다.
작전시작 세 시간 전 드디어 이 집의 비밀을 밝혀냈다. 한은 아르바이트 도중에 가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먼저 집을 나섰다. 나는 혼과 팀이었다. 출입문 밖도 집 안과 다르지 않게 암흑의 공간이었다. 혼의 뒤꿈치 냄새만 맡으며 따라가니 계단이 보였다. 나오자마자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야 되는 게 의아했다.
한 층 정도 오르자 계단의 끝 단과 평지의 끝 선이 맞닿는 평평한 복도가 보였다. 혼이 복도에 올라서자 센서등이 켜지면서 건물의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의 양쪽 문에는 101, 102이라 적혀 있었다. 계단을 올라왔으면 일 층일 수는 없었다. 난 대체 어디서 출발했단 말인가. 이 집 속의 시간 시스템에 혼란스러웠던 건 꽤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들도 나와 같았다. 집마저도 빛을 피해 숨어야만 했고, 윗집의 층간소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수리를 밟게 허락해야만 했다.
혼은 챙이 눈썹에 닿게끔 검은 모자를 고쳐 썼다. 키가 작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나만이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는데 사뭇 비장했다. 건물을 나서기 전 그는 나에게 목줄을 채웠다. 그래야만 다른 인간의 신고를 피해 비밀스럽게 사장의 집까지 갈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얌전히 줄을 몸에 감았다.
종속의 줄과는 조금 달랐다. 건물 밖에서 본 건물 전면의 외벽과 창문은 복도에서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한의 집은 어떤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찾았던 화장실의 습기 찬 창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학생, 그 학생이 이끄는 개, 모든 것이 수상해 보였다. 혼과 발걸음을 맞춤으로써 인간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걸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사장의 집은 입구부터 스산했다. 개미 새끼 하나 없이 정문의 가로등 하나만이 달빛을 받았다. 덩굴모양으로 굽어 맞닿은 가시 모양의 철사들이 콘크리트 외벽 위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탈출한 뒤로도 아들을 잃은 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장을 대변하는 듯했다. 빈틈이 없었다. 사춘기 아들의 가출 정도로 시시하는 줄은 알겠지만 이토록 차가운 인간일 줄은 몰랐다.
사실 오늘 작전은 취소될 뻔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올 때 버스를 타야만 했다. 버스정류장 앞에 나의 목줄을 잡고 서 있는 혼을 바라보는 시선은 밤인데도 번쩍거렸다. 어찌나 밝던지 온몸이 따끔거렸다. 혼도 느꼈는지 내 엉덩이를 케이지에 들이밀었다.
평소 케이지 안이 무서웠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단 한 번도 케이지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알았다면 오줌을 지리진 않았을 거다.
버스 안은 마치 사장의 방 같았다. 케이지 창살의 틈 사이로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숨통을 조여왔다. 혼은 케이지를 자신의 무릎 위로 올린 채 창문 밖만을 응시했다. 열 정거장쯤 남았을까,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학생, 개를 데리고 버스를 타면 안 되지.”
혼은 눌러쓴 모자 때문인지 고개를 살짝 치켜들어 여자를 바라봤다.
“케이지에 넣으면 괜찮아요.”
“오줌이나 똥이라도 싸면? 냄새나잖아. 털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우리 애가 개털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이번 정류장에 내리렴.”
무식한 여자는 뒤쪽 대각선에 앉은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혼에게 어른인 척 짜증을 숨기며 명령했다. 오늘 오전에 샤워를 했기에 내 털은 인간들의 샴푸 향을 머금고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털이 빠질 정도로 내 모공은 넓지 않다. 여자의 남편은 탈모가 있는 빈 머리임이 틀림없었다. 괜히 나의 수북한 털을 보고 트집을 부리며 시샘하는 걸 보면 말이다.
“저희는 종점에서 내려요. 저도 돈 내고 탔으니까 불만 있으시면 아줌마가 내리세요.”
혼에게 이런 단호한 면이 있었던가. 이 모습이 그가 말했던 과거의 본모습인 걸까. 하지만 혼은 분명 떨고 있었다. 작은 미동이었지만 케이지는 흔들렸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어디서 어른한테 눈을 부릅뜨고 대들어! 내 애한테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책임질 돈은 있고? 이 시간에 이러고 있는 것 보니까 딱 양아치구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야!”
“맞아요. 그래서요?”
“그래서요? 너 나랑 지금 해 보자는 거냐? 어디서 개 하나 데리고 구걸이라도 해 보려는 모양인데 버스는 사치 아니니? 나중에 너 같은 놈이 범죄나 저지르는 사회의 악이 될 게 뻔하다 뻔해. 어디 학교니? 아니 학교는 다니니?”
여자의 말은 사실로 변했다. 버스 안에 그 누구도 혼을 도와주는 인간은 없었다. 오히려 여자는 그들의 대변인이었다.
“학생 내릴 거야?”
버스 기사가 버스를 도로 가장자리에 세우며 물었다. 혼의 의사를 묻기보단 명령이었다. 차라리 여자가 더 나은 인간이었다. 버스 기사는 여자처럼 개와 동승하는 승객은 싫었지만 여자처럼 악마로 보이는 건 싫은 듯했다. 혼은 뒷문을 지나쳐 기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저씨 버스비나 다시 내놔요. 내릴 테니까.”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이 버스에서 요동쳤다. 동전을 한 손에 쥐고 혼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케이지를 들고 뒷문으로 움직였다. 뒷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시발. 찌질한 새끼들.”
들어 본 ‘시발’ 중에 단연코 가장 차분한 톤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종점까지 걸어서 한 시간을 걷고, 종점에서 사장의 집까지 30분을 더 걸었다. 이미 우리는 지쳤다. 혼은 한이 올 때까지 말없이 나를 쓰다듬어줬다. 한은 작전 개시 이십 분 전 도착했다. 어디서부터 시동을 끄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라이트도 끈 채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12
혼과 나는 뒷문으로 향했다. 뒷문은 여느 주택의 대문처럼 인간 두 명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다. 선생을 비난했던 자신감에 비해 내 다리는 점점 싸늘하고 시렸다. 혼은 나를 안으며 너만 믿는다, 거기서 다시 만나자란 식의 눈빛을 전하곤 한에게 연락을 했다. 한도 준비를 마쳤는지 저 멀리 정문 쪽에서 엔진소리가 들렸다. 물론 혼은 들을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한이 클락션까지 울리며 소리를 증폭시키자 혼도 들을 만한 크기가 됐다.
문제는 나의 종족들이 우리를 알리는 소리를 낼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나만 들을 수 있었지만 이 또한 계획에 포함돼 있었다. 혼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의 집에 불이 들어왔다. 곧 사장은 나올 테고 작전의 문은 열렸다.
사장은 긴 추리닝 바지에 하얀 민소매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다. 그의 미간만 봐도 상당히 짜증 나 보였다. 사장은 빠르진 않지만 정문을 향해 쉬지 않고 걸어갔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굶주리며 기다린 관객들의 박수갈채 같은 우리 종족의 짖음 속에 그는 사라졌다.
후문에서 집까지는 네 다리로 뛰어가도 최소 십 분은 걸렸다. 혼은 나의 목줄을 풀어주며 진입 신호를 보냈다. 피스부터 찾았다. 한창 여론이 집중하고 있는 터라 상태도 좋지 않은 피스를 철창에 계속 가뒀을 리는 없다. 대체로 피스처럼 서사가 있는 개들은 센터로 인도된 이후에 동물자유연대와 유기견센터 봉사자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았다. 피스에겐 미안하지만 버려질 때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살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었다.
사장의 집 안은 무척 깨끗하고 넓었다. 이렇게 쉽게 적의 본거지에 들어오니 허탈했다. 콧대를 찡그리며 코 끝에 힘을 줬다. 약하긴 하지만 피스의 냄새가 한 곳에 몰려 있었다. 그렇지만 냄새는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바람이었다.
베란다 바닥에 피스가 축 처진 채로 누워있었다. 고통에 비례하여 상처가 회복된다면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태어난 게 고통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삶이 피스의 숨을 지탱했다. 계약기간이 끝나도 사장은 그녀를 안락사시킬 수 없었다. 방송국부터 유튜버까지 치유된 피스의 삶을 절실히 원했다.
내가 가까이 가도 그녀의 귀는 바닥에 쳐져 있었다.
“왜……다시 온 거야……”
이번에도 대화는 무리라 생각할 무렵 피스의 벌어진 입에서 쇤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아니 나 기억나?”
피스는 말 대신 꼬리를 한 번 들었다 내림으로써 답을 했다. 몸이 괜찮냐는 인사도 할 수 없었다. 절망 깊숙이 있는 존재에게 걱정과 위로는 기만의 다른 이름이었다.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그녀에게 몸이 괜찮으면 어쩔 거며 몸이 안 괜찮으면 또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싶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
그녀는 눈을 두 번 깜박였다.
“내가 여기서 탈출하고 다시 잡혀 왔을 때 나는 다시 어떻게 도망갔어?”
그녀는 떨리는 숨을 최대한 머금었다. 피 비린내와 비슷한 악취가 내 코를 찔렀다.
“사장 아들이… 미동도 없는 너를… 철창 앞까지 안고 왔다가 그 자리에서 갑자기 도망갔어.”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거 물으려 다시 여길… 온 거야?”
그러니까 나는 두 번이나 선택당했다. 처음 내 철창을 열었던 건 우연이라 하더라도 두 번째는 설명이 필요했다. 차라리 피스를 데리고 나가는 편이 유리했을 텐데 왜 나였을까. 특별한 서사도 관심도 없는 지겹도록 평범한 내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근데 왜 나는 기억이 안 나지.”
“그때 너는 마취총에… 맞았으니까.”
식곤증이 아니라 총에 맞아서 화단에서 눈이 감겼던 거였다. 피스가 말해준 것 외의 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왜 네가 아니라 나였을까 하고 그녀와 토론이라도 할 마음이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뒷산이 어딘지 알아?”
어이없다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다.
“뒷산이 뒷산이지… 저기 너 뒤로… 보이는 산이겠지.”
“그니까……사장 아들이 말하는 뒷산 말이야.”
피스는 숨을 크게 뱉었다. 한계에 다다른 호흡이었다.
“네가… 여길 나갈… 때 너를 바라보던… 애들… 의 시선……거기.”
피스의 온몸은 다시 해파리처럼 퍼졌다. 아직 저들을 짖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은 묻지도 못했다. 떠난 이후 이곳의 상황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은 그녀가 전부였지만 피스는 턱이 이미 바닥에 닿았다. 다신 걷고 싶지 않은 듯 네 다리를 바깥 방향으로 뻗었다.
“걸을 수 있어…?”
“……”
“미안… 해. 나보다 네가 나가는 게 더 나았을 텐데…”
“……”
“우리는 나갈 거야 이제……”
피스는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녀의 등뼈만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래도… 사장인… 줄 알았… 는데… 너…라서… 다… 행…이…”
혼은 안방으로 향했다. 으리으리한 크기에 비해 내용물은 단출했다. 이인용 침대 하나, 작은 책상 하나, 큰 장롱 하나, 침대 옆 작은 서랍 하나가 전부였다. 누가 봐도 키는 서랍 안에 있을 것만 같았다.
혼은 내 예상과 달리 장롱 문을 열더니 너저분하게 포개진 빨래 더미 중에서 남색 멜빵을 골라냈다. 바지에선 섬유유연제 냄새가 그윽이 났지만 얼룩과 찢어진 부분이 여럿 있었다. 혼이 그 바지를 거꾸로 들고 털자 키가 떨어졌다. 사장은 역시 예리한 인간이었다. 가장 낡은 곳에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는 발상은 모든 개의 생각을 꿰뚫어 본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나왔을 때 사장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한이 제대로 미끼 역할을 하는 듯했다. 엔진이 끓는 소리와 계속해서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정문 쪽에서 울렸다. 때마침 한에게서 다음 작전을 진행하라는 연락이 왔다. 행여나 나를 보고 짖을까 봐 몸을 최대한 낮추어 철창으로 향했다.
나와 그들의 후각은 거울이다. 내가 그들을 맡으면 그들도 나를 발견한 것이다. 점점 오토바이 소리는 희미해지면서 그들이 목을 푸는 소리가 커졌다. 피스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시선, 그곳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앞만 보고 달리던 내가 본 곳와 같은 방향일까. 아니면 그것부터 물어볼까. 그러다 더 짖으면 망하는 건데. 왜 나는 돌아보지 않았을까. 두려웠다.
혼이 내 고민의 울타리를 부쉈다. 그는 거침없이 케이지 문마다 키를 갖다 댔다. 처음으로 탈출한 몇몇 녀석들은 으르렁거리며 나에게 다가왔고, 아직 갇혀 있는 놈들은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쏟아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개 짖는 소리가 사장의 집을 쳐대기 시작했다.
혼은 쉿 쉿 하며 녀석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일시적이었다. 인간이란 존재에서 자체적으로 뿜어 나오는 강력한 명령의 냄새에 잠시 몸을 낮출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혼이 내 목에 감긴 하네스를 풀었다. 순간 개운해지면서 그들의 모든 시선이 제대로 보였다.
“저 애는 사장의 아들이고 나를 탈출시켜 준 인간이야. 너희 모두와 같이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다시 여기 온 거야.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 첫째, 지금부터 우리는 짖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뒷문으로 나간다. 셋째, 모두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하면서 너네를 따라간다.”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풀려난 녀석이 외쳤다.
“가자!”
피스가 말한 시선으로 일제히 모두가 달려갔다.
혼은 십자가에 박혀 인간들을 구원해 준다는 예수 같았다. 혼자 탈출했을 때의 내 모습과는 달랐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었다. 비록 혼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수백 개의 다리가 만든 땅의 울림은 가히 대단했다. 내가 앞만 보고 달렸을 땐 얼굴이 시렸지만, 달리는 친구들의 펄럭이는 꼬리를 보고 있으니 바람마저 행복해 보였다.
혼은 키를 가져다 놓고 오기 위해 다시 집으로 향했다. 키의 위치를 아는 인간은 몇 없었을 테다. 키가 사라진다면 범인이 누구인지 적어놓고 떠나는 것과 같았다. 약속대로 나는 내 친구들의 발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만남의 장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모여 숨을 죽이고 쉬고 있었다. 산 중턱 어디쯤이었지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 혼과 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은은한 오토바이 엔진소리를 들었다.
한의 오토바이 소리가 인접해 오자 나는 내 친구들을 주목시켰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찾은 첫날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붙잡히고 살해당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을 잊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려는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는 비겁한 결정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인이 있는 개도 없는 개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헤어지겠지만 절대로 우리가 우리 다움을 버리진 맙시다.”
연설이 끝나자 혼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였다.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울고 있었다. 혼의 양쪽 눈가에선 사장의 집 쪽으로 눈물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혼과 나는 결국 모두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하나씩 남겨두고 탈출했다.
눈치껏 친구들도 각자의 방향으로 떠났다. 그제야 혼은 털썩 주저앉아 나를 끌어안았다.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혼은 눈물은 너무나 짜고 따가웠다. 아팠다. 혼은 아빠를 나는 피스를 산에게 메아리쳐 달라고 부탁했다.
13
“형, 일어나 봐. 큰일 났어!”
혼은 눈을 찌푸리며 영이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게 됐다.
“지금 잠이 와? 형들 때문에 동네가 쑥대밭이 됐다고! 형들이 풀어준 개들이 시장의 과일, 생선, 고기를 뒤엎고 먹어 치우고 난리야. 식당마다 쳐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훔쳐 먹고, 온갖 거리에 똥도 싸고.”
혼은 여전히 잠에서 덜 깬 채 흐리멍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네 아빠가 경찰에 신고했나 봐. 경찰이 지금 CCTV며 목격자 제보며 물불 안 가리고 범인을 찾고 있다잖아. 엄중하게 처벌할 거래.”
나의 연설이 만든 결과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예상보다 사태가 심각해졌다는 건 알았다. 물론 인간들한테만. 하지만 혼이 추적의 대상이 된 것은 재앙이었다. 다행이라면 사장의 집은 산속이라 CCTV 따위는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목격자. 우리의 목격자는 내가 아는 한 어제 그 버스의 무식한 여자와 다수의 찌질이들이 마지막이었다. 혼도 나처럼 경찰이 잡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영의 흥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이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경찰이 형을 찾아다닌다니까?”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범인을 찾는 거지. 한이 어딨어?”
“어제 같이 있었을 거 아냐.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고 보니 작전 이후로 한이를 본 적이 없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 쯤이면 새벽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우리 옆에서 자고 있어야 했다. 혼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언론을 통한 경찰의 협박보다 한의 부재가 더 신경 쓰였다.
한은 저녁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혼을 보자마자 내쉰 한숨에선 절망의 온도가 느껴졌다. 가게주인으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경찰이 가게로 찾아왔다. 보호센터와 가장 가까이에 설치된 도로의 CCTV에 한의 오토바이가 찍혔다. 한은 가게의 오토바이를 타고 온 것이었다. 번호판을 조회한 경찰은 당연히 가게를 찾아 주인을 심문했을 테다. 그러나 한은 치밀하고 침착했다. 이런 상황까지 염두했던 건지, 일부러 한은 가게 오토바이를 탔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너네 사장이 경찰한테 다 불었어?”
“아니. 사장이 자기가 밤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그 근처에 갔다고 했어.”
다행히 운전자를 식별할 정도의 화질은 아니었다.
“그랬더니?”
“경찰도 비슷한 시간 대에 그곳을 지나친 오토바이가 수 십 대여서 별말 없이 갔어. 너네 아빠가 경찰에게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러워서 나왔다고 했나 봐. 경찰도 너네 아빠도 오토바이가 공범일 거라곤 생각 못하는 것 같더라.”
“그럼 우리를 찾을 방법은 없겠네?”
“그렇지.”
“근데 사장은 왜 널 도와준 거야?”
한은 한숨을 뱉었다.
“내가 사장이랑 딜을 했어. 밀린 저번 달 월급과 이번 달 월급, 야간수당까지 전부 안 받는다는 조건과 얌전히 그만두겠다는 조건 하에 비밀로 하기로.”
“네가 왜? 경찰이 네가 갔다 온 걸 알아도 증거가 없잖아.”
“바보냐. 내가 했다고 하면 경찰은 우리 집으로 오겠지. 그러면 너를 만나게 될 거고 네가 보호센터장의 아들이란 걸 아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겠냐.”
“그럼 내가 집에서 나가면 됐잖아!”
한은 철없는 아이를 보듯이 혼을 노려봤다. 한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분노에는 서로가 없었다. 그렇게 이번 작전으로 혼은 아빠를 잃었고, 한은 일자리와 생활을 잃었다. 나만 잃은 것이 없었다.
아 참, 나는 모든 걸 잃었었고 이제야 하나를 얻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