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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난시 05화

by 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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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가 결국 죽었다. 사장의 관리가 잘못됐다는 기사와 번식장과 동물미용실습학원 간의 유착관계를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어떤 국회의원은 유기견 시스템에 대한 정책적 변화가 시급하다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우리는 금세 잊혔다는 사실이다.

혼과 한은 일자리를 다시 구했다. 한은 일당식의 식당 배달이나 퀵 서비스 배달을 했다. 이마저도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 정도로 월세의 반 정도 되는 돈이었다. 면허도 없는 혼은 운이 좋은 날에만 전단지를 뿌려 받는 3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둘은 얼마 전부터 같이 나가기 시작했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돈이 시급했다.

나는 암흑 같은 반지하 방에 혼자 누워있기만 했다. 누워있고 싶어서라기 보단 혼과 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누워서 하는 생각은 피스로 시작해서 나의 친구들로 끝났다. 그들 중 몇 명이나 다시 사장에게 잡혀갈지, 맹세에도 불구하고 배신자로 변질하여 인간의 노리개가 된 놈은 누가 될지 상상했다. 또 나는 언제쯤 다시 한번 우리의 자유를 위해 달릴 수 있을지, 마치 철학자처럼 시간을 때우는 것에 만족하는 동시에 다시금 그날의 환호성에 빠졌다.

자아도취 되는 시간도 썩 길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날 이후로 바뀐 것은 한 개도 없었다. 오히려 나만 다시 혼자가 됐을 뿐이다. 원래 지도자는 고독한 법이라던 선생의 말을 위로 삼았지만, 불안에 대한 도피의 일종이었다.

미래보단 과거가 좀 더 안정감을 줬다. 미래는 어떤 준비도 없이 단순히 새로운 세계의 선구자로서 또 다른 혁명에 성공한 모습만 그려줬다. 과정은 없고 마지막 장면만 보여줬다. 그때마다 그날의 영광은 이 모든 과정의 빈 구석을 채워줬다.

결국 인간 세계에서도 변한 건 없었다. 어쩌면 단지 철창 속에서 탈출시켜 줬다는 것에 대한 일시적인 감사표현으로 신념을 지키는 척 연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 신념이 잘못된 욕심일 수도 있다. 우리 종족의 존재 자체를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파괴하는 오만한 행동이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정조를 지키다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잡혀 조용해진 것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불확실함이 커졌다.

몸은 점점 피폐해졌다. 사고의 끝은 저린 나의 다리였다. 파르르 떨리는 짜릿함에 기지개를 켤 때면 혼과 한이 집에 돌아왔다. 작전 이후 둘보다 내가 잃은 게 많았다. 혼이 아침에 차려놓은 밥과 물을 먹고 나면 또다시 나만의 사고에 갇혔다. 보이지 않는 철창은 탈출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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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게 없으면 기다림은 사라진다. 이 집엔 인간 하나가 더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밥은 영이 챙겨줬다. 아침부터 고인 텁텁한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됐다. 첫 만남 때부터 일관성 있게 그는 나에게 큰 호감을 보이진 않았다. 대신 무심한 듯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조용히 건넸다. 여전히 자세를 낮추고 눈을 맞춰주는 모습에 묘한 끌림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의 생활도 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둘은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고 영은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온다는 것 정도였다. 원래 밤이 매력적인 이유가 비밀스러운 어둠인 것처럼 영의 외출이 궁금해졌다.

그를 미행했다. 현관문은 어떻게 열고 나왔냐고? 난 보통 인간들보다 지적이며 탈출 전문가이다. 게다가 나의 미행은 인간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간들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을 일방향적으로 간직하려는 변태적인 성향이 있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모퉁이 하나만 달라져도 그 뒷모습을 놓친다. 적어도 내가 인간이라면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면, 그렇게 먼 거리를 두고 따라가진 않겠다. 어차피 미행의 끝은 대상을 만나기 위함 아닌가. 쓸데없는 작전을 세우는 시간에 등 뒤에서 최대한 따라가겠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한심한 인간과는 달리 나는 시각은 물론이거니와 청각과 후각까지 사용할 수 있다. 영의 시야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 위치에서도 나는 그의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인간은 저마다의 냄새와 소리가 개들에 비해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이만큼 편한 미행은 없다.

먼저 영은 집 앞 큰 사거리에서 편의점을 들렀다. 구매한 품목까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비닐과 플라스틱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맡았다. 영은 편의점 건너편의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중간중간 나무에 뒷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해도 그의 자취가 강하게 코를 자극했다.

영은 갑자기 샛길로 빠졌다. 아스팔트만 걷다 보니 발바닥이 조금씩 아렸는데 촉촉하고 푹신한 흙길이 나와 한결 발이 편했다. 약간의 거미줄이 귓가를 간지럽혔고 날파리들이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길의 끝엔 공원이 있었다. 슬슬 더워진 날씨에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꽤나 많은 인간들이 산책 중이었다.

질서라곤 없었다. 중앙 무대 위엔 해진 천막 아래 아이들이 서로를 잡겠다며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무대 앞 공터엔 축구공 하나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학생들과 네트 위로 셔틀콕과 족구공을 넘기며 서로에게 나가라고 압박하는 어른인간들도 있었다. 공터 뒤로는 계단식으로 된 관람석이 있었다. 이곳은 서로에게 기대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과 중년의 부부들과 그 가족들의 지정석이었다.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갈 때에 뜻하지 않던 많은 요구와 거친 입술들"

인간들이 갑자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누가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질서 없이 무대를 포위해 오는 인간들의 뒤통수에 가려 단번에 마법사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갈 때에 하얀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겠지"

그는 다시 주문을 걸었다. 그러자 서서히 인간들은 무대 앞에서 정지했다. 마법사의 그림자는 영의 그림자와 겹쳐있었다.

영은 지팡이 대신 마이크와 기타를 들고 무대 끝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그의 앞에 멈춘 인간들은 궁금한 눈빛으로 영을 쳐다봤다. 나도 귀를 최대한 펼쳤다. 평소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었기에 인간들의 노래 중 기억하는 멜로디는 과거 주인집의 장녀가 리코더로 연습하던 클래식 몇 곡과 서양 민요 한 두 곡 정도였다. 그런 것과는 다르게 음보단 가사가 또렷이 들렸다.

"나의 오늘이 흘러가면 서글픈 추억들 중에 작은 조각이 되겠지 참을 수 없는 시간들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사라지듯 나를 스쳐가네"

꼬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사를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이 노래는 어른이 불러야만 했다. 영은 어른을 흉내 내고 있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지만 어른이 돼야만 하는 아이처럼 불렀다. 관객들에게 읊조리듯 무언가 묻고 있었다. 마치 내가 고민의 철창에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작게 소리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내일이 다가오면 소년의 꿈을 이뤄 줄 작은 노래가 돼 줄게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은 오늘도 미련 없이 나를 남겨 두고 떠나가네"

마지막 소절과 함께 영은 바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라도 대답을 해 주고 싶었지만 저 많은 인간들의 중심 속에 짖을 용기가 없었다. 신고를 당할 게 뻔했다. 주변 상황을 보고 있는 와중에 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수와 노래 제목을 말했다. 몽니라는 밴드의 소년이 어린이 되면이었다. 곡 소개가 끝나자 약간의 박수와 함께 몇몇 인간들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빈 기타 케이스 안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고 떠났다. 그 뒤로 영은 다섯 곡 정도 더 부른 뒤에야 지팡이를 접었다.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에게 더 가까이 가진 못했다.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영은 공원의 언덕을 올랐다. 산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높이였지만 나름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꽤 운치 있는 동산이었다. 팔각정 지붕 아래 그는 한참을 눈만 깜박이며 가만히 앉아 기타를 꺼냈다. 한 마디씩 끊어가며 소리를 냈다. 다음 공연을 연습하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주문에 걸렸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의 발 앞이었다. 약간은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지만 예상했었다. 나라도 나의 비밀 공간이 다른 개에게 들키는 건 싫었다.

“너도 내가 불쌍해 보이지?”

어차피 우리는 대화할 순 없었다. 아까 노래할 때처럼 답을 원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대신 영의 다리를 핥아줬다. 영의 피부는 여름이지만 쌀쌀했다. 목은 좀 아팠지만 그가 날 바라봐줬듯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래도 평소보다 오늘은 오 천 원이나 더 벌었으니까. 근데 너도 참 운이 없다. 어떻게 와도 우리 형 집으로 오냐. 아침 점심 저녁 세끼 꼬박꼬박 챙겨주고 옷도 입혀 주고 잘 때도 안아주는 그런 주인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너도 고생이다.”

아마 영이 나에게 말한 집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이었나 보다. 너만 버려진 집에서 살아온 게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나의 과거를 말해 주고 싶었다. 그가 들을 수만 있다면 그의 허탈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을 누구보다 가장 솔직하게 공감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 형 정말 불쌍한 사람이야. 지금 내 나이 때에 가족 모두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거든. 괜히 나 같은 짐 때문에 학교도 그만두고 일만 했어. 매일을 가게마다 들러 구걸하듯 자기 좀 써 달라고 빌고 또 빌고. 그럴 때마다 가게 주인들이 뭐라고 한 지 알아? 중학생이 일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했대. 형은 한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부모 없는 자식임을 들켰고 아무도 그를 써 주지 않았어. 학교도 부모도 없다는 이유로.”

영은 괜히 기타 통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렸다.

“그때 형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형이 빨리 어른이 될게라고 하더라. 그 이후로 돈에 미친 사람처럼 자기 좀 써 준다는 일은 전부 하더라고.”

영은 자신의 민망한 진심이 어디로도 새어 나가지 않을 거라 한심했는지 혼자 묻고 답하며 말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 네가 우리 집에 온 뒤로 달라졌어. 그날 밤 이후부터 말이야. 철 없이 작전이네 뭐네 하면서 무슨 재미가 들린 건지 나에게 그러더라고. 어른이 되기 싫다고. 어른이 되면 너무나 쉽게 나를 버리고 떠나버릴 거 같다고.”

이번에 영은 기타의 줄을 의미 없이 긁었다.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또 어른이 돼야만 한데. 그래야 월세도 제때 내고 내가 학교에도 다닐 수 있다고. 형은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아닌 걸까? 아직 형도 학생이었으면 지금처럼 밤에만 사는 불쌍한…불쌍한… 뭐라고 불러야 될까? 불쌍한 열여덞은 아니었을 텐데.”

한동안 혼자 더 떠들더니 기타를 다시 넣고 집으로 향했다. 나와 나란히 속도를 맞추어 걸었다.

16

우리가 매일 삼 내지 사만 원 정도 벌어올 때 혼과 한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나와 영이다. 우리가 같이 공연을 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혼은 친구 동생에게 자신의 동료를 맡겼다.

“혼이 형. 어차피 형들 아침에 나갔다 밤늦게야 들어오니까 내가 강이 좀 데리고 다녀도 되지?”

“갑자기 강이는 왜?”

“학교에서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나만한 애가 개랑 같이 버스킹을 하더라고. 혼자 노래할 때보다 사람들이 관심도 더 많이 주던데? 물론 돈도.”

“강이가 뭘 하는데?”

“가만히 있는 역할?”

“우리 때문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게. 금방 알바자리 구할 거야.”

“지금 그게 한 달 반째야. 강이 사료도 이제 다 떨어져 가. 알바 구할 때까지만 데리고 다닌다?”

혼과 한은 초라한 자신들의 상황에 어떤 반대도 할 수 없었다. 한은 연신 영에게 미안하다고만 눈빛을 보냈다.

“형, 미안하면 하루빨리 어른이 돼.”

나도 나가고 싶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밤에 혼자 다니다 보면 분명 한 번은 사장의 방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영의 옆에 있으면 언제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주인이 있는 개로 보였다. 우리의 공연 역시 그의 예상대로 영화 같았다. 나는 하루 종일 쌓인 갑갑함을 날리고 있을 뿐인데 인간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영이 연주를 하며 노래를 할 동안 나는 정말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도대체 인간들은 나의 무슨 부분 때문에 그토록 나에게 열광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죽여야 한다며 온갖 신체부위를 사용해 폭력을 가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는 비싼 편의점 소시지, 우유, 빵, 심지어 돈까지 내게 던져줬다. 영의 빈 기타 케이스엔 차곡차곡 지폐들이 쌓였다. 어떤 날은 만 원짜리도 두어 장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옆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인간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인간 세게에서 돈을 번다는 어른 인간들의 삶이 이런 걸까. 나를 공격하는 적에게 꼬리를 흔들어줘야 하며 속으로 분노를 썩혀야 돈을 버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버리면서까지 번 돈으로 다시 자기 같은 어른을 만들어냄으로써 복수의 희열을 느끼는 걸까. 버는 방법만큼이나 쓰는 방법도 이중적이었다.

어제는 죽이기 위해 살상 도구에 투자를 하더니 오늘은 그에게 만찬을 선물하기 위해 소비했다. 그러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진다. 자신이 개였다면 지금처럼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삶 대신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살았을 거라든지, 영처럼 음악을 하는 예술가였다면으로 시작해서 결국엔 학창 시절에 잠겨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무단결석에 대한 환상, 비행 청소년처럼 놀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을 강요하는 선생과 어른들 면전에 시원한 욕 한 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신들의 나약함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항상 어른이 되기 전을 동경하고 추억하며 행복을 느낄 거면 왜 굳이 어른이 되려고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건지 아주 연구 대상이다. 어쩌면 노래 몇 곡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영이 가장 현명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합동공연은 그리 오래 흥행하진 못했다. 주변 아파트에서 우리를 소음 공해, 고성 방가로 경찰에게 신고했다. 경찰은 우릴 강제 해산시켰다. 영은 경찰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비롯한 개인정보들을 모두 불었다. 우리는 우리의 관객 눈앞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다. 더 이상 경찰들은 우리에게 최후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공원에서 몰아냈다.

“부모님 번호는?”

“부모님 없는데요.”

영은 혼과는 또 달랐다. 농담이라 착각이 들 정도의 부드러운 말투로 대항했다.

“일 하시고 계시니?”

“아뇨. 몇 년 전에 집을 나갔어요.”

“그럼 누구랑 같이 사니?”

“형이랑 강아지요.”

“형은 몇 살인데?”

“열여덟이요.”

계급이 더 높아 보이는 경찰이 질문하던 다른 경찰에게 그냥 보내라는 손짓을 보냈다. 영락없이 귀찮은 표정이었다.

“그럼 오늘은 보내줄 테니까 어서 집으로 가. 한 번 더 밤에 공원에서 노래하면 그땐 경찰서 가야 된다?”

경찰이 영의 정수리를 문질렀다.

“저 아저씨. 근데 왜 제가 공원에서 쫓겨나야만 해요?”

“사람들이 잠을 못 잔다데. 특히 근처 단지 사람들이 불만이 많아.”

“공원 주인은 아니잖아요. 왜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돼요?”

영은 여기서도 혼과 달랐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경찰을 상대로 강하게 대응했다. 부드러운 어조 때문에 경찰도 함부로 무력을 이용한 일방적인 통보를 할 수 없었다.

“저도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아무리 공원에서 가깝다 하더라도 아파트까지 제 노래가 그렇게 크게 들릴까요? 이 공원엔 저녁이면 산책하는 사람들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술 취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밤까지 시끄러워요. 어쩔 땐 저도 제 소리가 잘 안 들릴 때도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떠날 때쯤, 그니까 공원이 한적해질 때쯤엔 저도 집으로 가요. 듣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뭣하러 혼자 노래를 부르겠어요, 경찰 아저씨.”

영의 말은 사실이다. 이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 나만큼 귀가 예민한 인간은 절대 없다. 영의 노래보다 취객의 쌍욕이 소리의 높이부터 크기까지 모두 한 수 위였다.

“우리도 매일 여기를 순찰하기 때문에 네가 노래하는 걸 자주 봤어. 네 말대로 공원은 항상 충분히 시끄러워. 오히려 저 아파트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크면 더 컸지 네 노래보다 안 들리진 않을 거야. 하지만 공원에서 떠드는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은 다르지. 노래가 공원의 목적은 아니잖아. 특히 밤에는 더.”
이건 확실히 억지다. 공원의 목적은 뭘까. 편하게 숨을 수 있는 것? 도망가다 쉴 수 있는 곳? 당연히 영도 그 목적에 대해 반박할 줄 알았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혹시 제가 그럼 피의자의 대표인가요?”

중학생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경찰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말대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영만큼 마땅히 적당한 대상은 없었을 것 같다. 결국 계급이 높은 경찰이 끼어들었다.

“어쨌든 의도적으로 소음을 내는 건 너잖니. 또 네가 노래해서 사람들이 더 모여드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어. 그리고 생각해 봐. 아파트 주민은 잠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돈을 내. 공원은 무료잖아. 그럼 적어도 밤에는 네가 조용히 하는 게 맞지 않겠니? 가장 많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인 건 맞으니까.”

영도 달라진 경찰의 태도를 인지했다. 더 이상 말 끝을 흘리지 않고 단단하게 굳혔다.

“잘못을 했다면 모두가 벌을 받는 게 맞지 않아요? 조금이건 많이 건.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저한테 하는 거처럼 다 공원에서 나가라고 해야 맞지 않아요?”

경력이 많아 보이는 경찰도 쉽게 굽히지 않았다.

“너 선생님이 문제가 가장 많은 애를 왜 교실에서 잡는 줄 아니? 가장 잘못이 많은 애 하나를 바꾸면 나머지는 알아서 눈치껏 바뀌거든.”

“결국 제가 대표가 된 게 맞네요. 이것도 제가 이런 애라서 그런 건가요?”

영은 처음으로 목젖이 흔들렸다. 경찰은 다시 부드러운 말로 끝맺음으로써 승리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지금이란 것을 알았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서로가 약속한 걸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지. 최소한의 배려와 양보를 무시했기에 일어난 합리적인 불평이란다.”

인간의 약속은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다. 배려와 양보는 항상 돈이 많거나 나이가 많은 쪽의 편이었다. 특히 약속을 어겼을 경우, 인간은 항상 책임을 물을 소수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이건 나도 겪어 봐서 안다. 옛 주인집 동네는 가정주택 단지라 대부분이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밤이면 한 놈의 선창으로 시작해 나중엔 떼창이 됐다. 경찰이 말한 인간의 약속대로라면 적어도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동네의 모든 개가 처단당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도 경찰은 가장 크게 짖은 파란 지붕 집의 개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그래도 가장 이상한 점은 약속의 적용이 대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같은 약속이라도 아이와 어른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게 진행됐다. 보통은 어른의 손을 들어줬는데 그 이유는 대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이 밤마다 기타를 짊어지고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도 이래서가 아닐까. 돈을 벌어야 돈이 있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할 수 있으니까.

영은 경찰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나의 목줄을 강하게 움켜줬다. 경찰들도 불편한 얼굴을 풀고 경찰차로 돌아갔다. 영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와중 갑자기 경찰차를 향해 나를 안고 달렸다.

“아저씨! 그럼 저는 어디에서 노래해요? 저번에 상가 광장에서도 안된다고 하더니 공원도 안된다 하고, 그럼 어디는 돼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잖니. 시간이 중요한 거지. 밤에 말고 낮에 해. 공원에서 낮에.”

“낮에 해도 잡아가잖아요.”

“우리가?”

“저라고 낮에 안 해 봤겠어요? 학교는 다녀야 하잖아요. 어차피 학교에 있을 시간에 노래나 부르고 있으면 선생님부터 해서 모든 사람들이 저를 학교나 땡땡이치는 양아치 취급을 해요. 그런 사람들 앞에선 노래도 기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경찰은 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고민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럼 주말에 공연을 하면 되겠다. 그치?”

“주말엔 노래할 자리가 없어요. 대학생들이나 어른들이 전부 자기네들끼리 약속한 시간대에 맞춰 공연을 해요. 저는 오늘처럼 항상 쫓겨나죠. 저도 장소를 빌리려고 물어봤어요. 근데 항상 예약이 꽉 차 있데요. 전 처음에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계속 공연하는 사람들이 바뀌더라고요. 그냥 저라서 안 되는 거였죠.”

영이 특히 주말엔 집을 일찍 나서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평일보다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테고, 그만큼 돈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장소를 찾으러 나선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허락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니 인간들의 약속은 역시 영의 편은 아니었다.

“그럼 학교에서 하면 되겠다.”

“학교요? 제 노래를 들어주는 건 잠시 뿐이죠. 애들 공부에 방해된다며, 또 공부하는 애들한테 쓸데없이 안 좋은 영향이나 미친다고 뭐라 해요. 애들은 더 해요. 앞에서는 박수치지만 뒤돌아서면 저처럼 살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야 된다며 수군거려요. 학교는 그런 곳이에요.”

경찰도 이젠 지쳐 보였다. 괜히 무전기를 켰다 껐다 하더니 다른 신고가 접수 됐다며 대충 위로와 격려 사이의 웃음을 보이곤 가버렸다.

“강아… 우리 이제 공연은 그만할까?”

단지 공연에 한정된 물음이 아니었다. 영에게 공연은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보여주는 방법인 동시에 수입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괴리감이 영을 지치게 했다. 그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필요한 물음을 건넸지만 결국 최종 마무리는 돈으로 끝나야만 했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함은 살기 위함이자, 한에게 짐이 되기 싫음이자, 보다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념과 완벽하게 충돌하는 인간이 어른이었다. 결국 그는 나에게 지금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답한 것이다.

한동안 영은 밤에 나가지 않고 나와 같이 잠들었다. 여름의 화끈함도 이렇게 풀이 죽어갔다.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낙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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