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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난시 07화

추격

by 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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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도망가면 누군가는 추격한다.


강식이가 나를 찾아왔다. 저번에 헤어지면서 나를 미행했었다. 호흡이 꽤나 다급했다.

“그 친구가 잡혀 갔어요!”

“누구요?”

“노래 부르던 친구요. 경찰이 방금 데려갔어요!”

영은 노래하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잡아갈 명분이 없었다. 혹 형들처럼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에 불안했다.

“어디로 갔어요?”

“경찰서로 갔을 거예요. 어서 가 봐요.”

당시엔 경황이 없어 나에게 이 사실을 말해 준 이유에 대해 묻지 못했다. 경찰서의 위치는 알았지만 내부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개인 내가 주인도 없이 어떻게 그곳을 뚫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일반 인간도 아닌 경찰을.

물론 영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경찰서 앞에서 미친 듯 짖어댔다. 내 발로 못 들어간다면 영처럼 잡혀 들어가면 됐다. 영보다 소음공해는 자신 있었다. 주변 인간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내가 던진 미끼를 덜컥 물었다. 내가 도망갈까 봐 혹은 물기라도 할까 봐 경찰 두 명은 허리띠에서 얇은 방망이를 꺼내 들었고, 나머지 둘은 이상한 박스를 들고 나를 포위했다. 그들의 노력이 무성하게도 나는 부동의 자세로 계속 짖기만 했다. 겁 많은 경찰들은 내 엉덩이를 발로 밀어 나를 박스 안에 가뒀다. 내가 잡히기 위해 스스로 들어갔다는 생각은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박스 빈틈으로 서 내부가 보였다. 하지만 시야가 좁아 얼굴을 분간할 순 없었다. 다만 우리 종족의 소리가 들렸다. 톤이 높고 앙칼진 것으로 보아 인간의 품에서 나고 자란 작은 암컷 강아지임이 틀림없었다. 암컷은 나의 목덜미를 잡았다느니 콧등을 때렸다느니 아주 억울한 목소리로 자신이 피해자라 소리쳤다. 저 엄살쟁이에게 주목을 빼앗기면 안 됐다.

“꼴에 개라고 서로 인사하고 난리네.”

멍청한 경찰. 인간들은 꼭 이랬다. 개는 개를 만나면 짖는 줄 안다. 우리도 인간들처럼 모르는 개거나 아는 체하고 싶지 않은 개와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그래도 덕분에 칭얼대는 하이톤을 듣지 않아도 됐다. 경찰의 사나운 눈빛에 엄살쟁이는 입을 다물었다. 인간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영의 소리는 아니었기에 관심을 떼려 했다.

“뭐 해 조영. 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저 아줌마가 먼저 잘못했는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냐고.”

분명 조영이란 인간은 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놈 성질머리 좀 봐요. 지가 우리 집 강아지를 훔쳐 가 놓고 오히려 지가 성을 내잖아요.”

경찰은 영의 나이를 감안해 달라며 선처를 구했다.

“애가 아직 어려서 확 김에 실수한 거 같은데 이번엔 넘어가 주시죠. 설마 애가 아주머니 개를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그건 모르죠.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죠. 이런 애는 한 번 봐주면 다음엔 우리 집 개가 아니라 나도 죽일 놈이에요.”

여자의 음성이 귀를 따갑도록 쓸었다.

“제가 저번에 이 아이와 얘기해 봐서 아는데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자기 노래 못하게 해서 복수한다 치고 그랬을 겁니다. 아들이 엄마한테 대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번 한 번은 봐주시죠."

다른 쪽에서도 언성이 높은 대화들이 오가는 데다가 박스 안이라 저들의 대화를 듣는 것에만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동생이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래요. 제가 따끔하게 주의 주겠습니다.”

가만 듣다 보니 사과를 하는 인간은 한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동생을 경찰서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죄송하다는 표현은 전부 뱉어냈다. 내가 알던 한의 주파수가 아니었다. 사과는 서툴렀지만 소리의 떨림은 진심이었다.

“너도 학생인데 누가 누굴 챙기니! 됐고 부모님 오시라 해!”

한은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여자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궜다. 형의 약한 모습에 당황한 영은 형을 일으켜 세우려 애썼다. 나도 잠시 여자의 흥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내 쪽으로 관심을 유도했다. 공원에서 만났던 경찰이 나를 알아봤다. 박스에서 나를 꺼내 영에게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를 발견한 영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애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봐요. 발에 상처도 있고 코도 눌려있고! 난 이대론 못 넘어가요.”
여자는 단호했고 우리 셋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소진됐다. 그때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책임질게요.”

“당신이 부몹니까?”

“제내들 누나입니다. 부모님이 저 스무 살 때 이혼한 후로 애들끼리 살았어요. 저는 성인이니까 저랑 합의 보는 건 괜찮으시죠?”

말로만 듣던 한의 누나였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그 상상 속의 누나가 나타났다. 한과 영의 성격상 절대 누나에게 연락하진 않았을 테다. 법적 보호자가 필요했던 경찰이 급하게 연락을 취했다.

“강아지 치료비와 아주머니께서 놀란 것까지 해서 합의금 물겠습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

“어느 정도 선이면 선처를 해 주시겠습니까?”

“그건 나가서 얘기하도록 하고 동생들이나 잘 교육해요.”

여자의 음성이 한순간에 안정됐다.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니라 돈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하나의 쇼에 불과했다. 한의 무릎과 영의 눈물에도 흔들리지 않던 여자의 화는 누나의 합의금에 사그라들었다.

확실히 누나라는 인간은 어른이었다.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대화 한 번 해 보지 않고 맞췄다. 아니면 어른이란 인간들끼리 정해 놓은 약속이라도 있었던 걸까. 인간은 어른이 되면 전쟁을 끝내는 법을 하나로 묶어 놓은 듯싶었다.


경찰서를 탈출한 후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 형제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누나는 한에게 지갑에 있는 현금 전부를 건넸다. 보름은 충분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돈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누나가 동생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인데 왜 서로 왕래가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나는 정말 한 마디도 없이 매정하게 형제에게서 등을 돌렸다.

“누나!”

한의 말에도 눈을 한 번 깜빡이며 턱을 위아래로 흔들 뿐이었다.

“누나! 나도 누나처럼 어른이 되고 싶어 최대한 빨리. 돈도 벌고 동생도 꺼내줄 수 있고 싶은데……방법을 모르겠어.”

누나는 그의 말을 낭만만 가득한 열여덟 소년의 터무니없는 각오로 받아들인냥 피식 웃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냥 지금은 그렇게 살고 사람들이 너를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될 때 너도 이렇게 할 수 있어. 기다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뭔데?”

“학교를 다니면 학생답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미성년자답게. 정해져 있는 방법대로 눈치 보며 사는 거지.”

누나가 다시 등을 돌리려 하자 한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미성년자답게 사는 건 뭔데? 네 달을 넘게 찾아다녔어. 학교만 다니지 않을 뿐인데 왜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누나는 기어코 한숨을 뱉었다.

“네가 생각하는 어른은 뭔데?”

“지금과 다르게 사는 사람.”

“지금의 너는 뭔데?”

“어른이 되기 싫지만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

“네 눈엔 내가 어른 같아 보이니?”

“적어도 지금 나보단 어른이잖아.”
누나는 입을 다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많은 숨을 콧김으로 한 번에 내뱉으며 처음으로 한과 눈을 마주쳤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어른은 네가 되기 싫어도 돼. 나처럼 대비도 없이 스무 살이 되면 나 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지금 네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지금처럼 살아내. 알겠어?”

“누나…… 그게 너무 벅차.”

한의 고통은 영보다 깊고 어두웠다. 한은 자신도 모르는 몸속 깊은 어딘가에 영에 대한 의무감을 심었다. 그의 부모는 누나가 스무 살 때 떠났고, 누나는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돈을 벌기 시작한 순간 떠났다. 그는 동생이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떠나야 하는지 몰랐을 테다. 단지 어른이 된 인간들만이 그 시기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한은 떠난 자들과 다르고 싶어 보였다. 비록 무고한 학생의 돈을 뜯은 건 잘못됐지만 아직 그의 세계는 나와 같았다.


21


형제의 시계는 멈췄다. 한은 혼을 따라 일하러 가지 않았고, 영은 학교를 이탈했다. 한은 오토바이를 다시 탔다. 혼과 함께한 일은 배달에 비해 받는 돈이 형편없었다. 꼭 돈 때문은 아닌 듯했다. 키를 들고나가는 그의 눈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영은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이미 학교 내에서 강아지 납치범 혹은 도둑놈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학생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가방이나 사물함 속 물건들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했고, 선생은 종례시간에 반 전체 앞에서 절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놨다. 원래도 일반 학생들과는 다르게 살았지만, 영은 서서히 학교를 거부했다.

혼 역시 지쳤다. 나를 탈출시켜 준 그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은 그저 가끔 전단지만 돌릴 뿐 나머지 시간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실망과 걱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 넷은 혼과 한이 분리되면서 완전히 흩어졌다. 일단 나부터 움직였다. 영의 체포 사실을 알려 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도 할 겸 강식을 찾아갔다. 이성적으론 혼과의 협업은 포기해야 했지만 진심은 혼을 바랐다. 어떻게든 강식을 설득시켜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강식은 집에 없었다. 대신 그의 얼굴이 프린트된 종이들이 동네 주택가와 상가 벽면에 붙어있었다. 사진 속 강식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비평가만큼이나 이 작품에 대해 정확히 해석할 수는 있었다. 사장의 저택이나 어느 동네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이었다. 우리 종족들 사이에선 이 종이를 붙인 인간의 목적은 익히 알았다. 강식이는 실종됐다. 우리 동네 개들의 왕이 사라졌다.

증거도 충분했다. 코스모스와 국화는 저번보다 시들했고 이미 낙화해 잡초가 된 것들도 수두룩했다. 정원 가장자리의 작은 목재 집엔 아직 그의 냄새가 뚜렷이 남아있었다. 실종된 지 삼일은 넘지 않은 듯했다. 나무 그릇에 담긴 물의 온도도 미지근하긴 했지만 비교적 신선했다. 이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나의 모든 정보였다.


“무슨 일이야?”

백은 여유롭게 부동산 뒤편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번 백에게 속은 걸 생각하면 여전히 괘심 했지만 그녀는 정보통이었다.

“혹시 강식이 봤어요?”

“너 결국 만나러 갔구나. 그때 하려던 부탁은 잘 해결됐어?”

하얀 털 색깔만큼이나 순수한 척 거짓말을 했다. 이미 내가 강식에게 할 부탁의 내용을 알고 단합에 앞장섰던 그녀는 무식했다. 강식을 만났으면 자기가 이 동네의 확성기를 맡고 있는지 아직도 모를 거라 생각한 게 한심했다.

“아직은 제대로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어제 부탁을 들어준다고 자기를 찾아오랬는데 집에 없어서요. 동네에 붙은 종이를 못 보진 않았죠?”

백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때 묻은 거짓을 밀기엔 그녀는 너무 약았다. 내가 진신을 알고 있단 걸 눈치챈 듯 입을 살짝 내밀었다.

“못 봤다 해도 안 믿을 테고 봤다 하면 신뢰는 바닥이 날 거 같은데?”

“당신뿐 아니라 모든 개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왔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요 이제.”

그녀는 퍼진 자세를 고쳐 잡았다.

“뭐가 궁금한데?”

“강식에게 원한이 있는 개나 인간을 알아요?”

“원한보단 개들은 강식을 부러워하고 인간들은 강식의 집주인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너 걔가 왜 여기 왕인 줄 알아?”

첫 대면 이후로 나는 강식이 두렵지 않았다. 직전에 문 앞에서만 해도 겁에 떨었는데 말이다. 체구만큼이나 말과 생각도 전혀 위협스럽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똑똑했다. 인간들의 왕처럼 그는 폭군이 아니었다.

“글쎄요. 가장 머리가 좋아서요?”

“너도 머리는 좋아 보여.”

“이유가 뭔데요?”

“이 동네의 제일가는 부잣집의 개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것만으로 애들이 그에게 복종한다고요?”

백은 콧방귀를 뀌며 내 왼쪽 귀에 바람을 불었다.

“잘 들어. 개들에게 중요한 건 소시지 한 개야. 그와 친하게 지내면 지낼수록 얻는 소시지가 많아져. 그 소시지 하나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야.”


백은 한의 누나와 닮았다. 문제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상대방의 의지를 한순간에 꺾어 버릴 줄 아는 여자였다. 이때는 적어도 나는 한이었고 일시적으로 우리 종족의 어른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의 끝엔 강식과 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 아래 한은 위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범인이 누군지 알겠니?”

“소시지가 필요한 인간인가요?”

“그렇겠지? 누군진 모르겠지만.”

진실 같았다. 부동산에서 오가는 정보 속에서도 범인을 찾은 인간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누가 가장 의심스러운지 물으려는 찰나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너는 똑똑하거든? 그래서 모두가 너를 피하는 거야. 지금도 그들은 강식의 실종 원인을 너와의 만남이라 믿고 있어. 웬만하면 일이 해결될 때까진 집에 있어. 이건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백의 말이 맞다.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간 모든 정황이 나를 범인으로 확정하는 증거로 변할 게 뻔했다. 강식이 사라지기 전 나를 만났으니 말이다. 또 나의 목줄은 영이 손에 줬었다. 다른 사실은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범인인지 보다 범인이 있기만 하면 됐다. 학교에서 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22


다음 날엔 굵은 비가 쏟아졌다. 어차피 비는 결국 마르기 때문에 강식의 집으로 여지없이 향했다. 비에 젖은 정원의 냄새는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린 비에 묻어 흐르는 잔디의 냄새는 더욱 썼고 향을 잃어가던 국화는 달콤한 향기를 뿜었다. 당연히 강식의 자취 역시 내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텅 빈 그의 집 속에서 퍼지는 강식의 냄새는 어제와 달랐다.

완전히 낯설진 않았지만 어딘가 쿰쿰했다. 눈을 감고 콧구멍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정원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냄새가 짙어졌다. 확실히 꽃이나 식물 따위의 향은 아니었다. 강식이 흘린 털에서 풍기는 냄새를 덮었다. 다시 그의 집 앞에 멈췄을 때 나는 냄새의 주인을 확신했다. 그 무엇보다도 절실히 내 확신이 틀리길 바라며 코를 땅에 박아대고 문질렀지만 나를 속일 순 없었다. 혼의 냄새였다.


백의 말이 어른어른 맴돌았다. 아무리 곱씹어도 혼이 범인이 맞았다. 강식을 납치해야 하며 할 수 있는 조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간이었다. 돈이라면 당연하고 자신 때문에 망가진 형제에 대한 죄책감은 이유로 충분했다. 탈출한 나를 다시 데려온 것만 봐도 그의 의리는 납치의 원동력으로 완벽했다. 어쩌면 나와 목표는 같았지만 혼의 방법은 애초에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보단 현재 세계에서 자신을 지워버림으로써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존재가 되는 길을 말이다.

동네에서 강식을 모르는 개와 인간은 없다. 두 종족 모두에게 강식은 필요한 존재였다. 각자의 소시지를 자발적으로 잃을 바보는 없었다. 다른 동네일 가능성도 희박했다. 소시지를 하사하는 왕을 잡으러 온 적을 반겼다간 철창신세를 면할 수 없다. 오히려 추가 소시지를 기대하며 가장 먼저 적을 발견하고 처리하려 노력할 것이다.

동네에서 아직 강식이나 그 주인으로부터 소시지를 받지 않은 주민은 나와 혼뿐이었다. 나는 입이 가벼운 인간들에 의해 춤추는 개나 도둑놈의 개로 얼굴이 팔렸을지도 모르지만 혼의 얼굴을 기억하는 인간은 많아야 두 명이었다. 전단지 알바를 맡긴 가게의 사장과 학교 앞 골목에서 돈을 뜯긴 남학생이 전부였을 테다. 물론 내가 보지 못했을 때 다른 인간과의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혼은 그렇게 자신의 정보를 흘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다.


혼을 내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한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경찰도 예상할 테다. 강식의 단순 가출에서 납치로 수사 반경을 넓힐 수밖에 없다. 결국 최근에 강아지 납치로 의심받았던 영이 첫 번째 용의자가 된다. 영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한과 혼 그리고 나까지만 조사하면 끝이다.

나는 단지 내 반란이 실패할까 봐 두려운 게 아니다. 백한텐 솔직해져라고 충고한 주제에 정작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혼과 조 형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 존재가 내가 증오하는 인간이라도 말이다.

영은 내가 봤던 학생들처럼 웃으면서 하굣길을 걸었으면 좋겠고, 한은 끼니를 때우고 방세를 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혼은 그저 다시 내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게 강식이 말했던 지금의 편안함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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