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2019 서평
진부하고 다정한 미래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23.02.20 22:10 수정
고요한 활자들의 견고한 나열을 떠올릴 때면 종종 ‘위안’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곤 한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찾아오는 차가운 밤에 손에 쥐게 되는 것은 늘 한 권의 책이었다. 그래서 감히 문학 애호가라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문학에 대해 묻는다면 늘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문학이 무엇인지, 문학이 진정한 문학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문학이 좋은 문학이 될 수 있는지. 예술의 영역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축복과도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이 까다로운 질문에 우선 답해보려 한다. 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며 문학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 고찰하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향한 분석의 끄트머리가 미래를 향한 길과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나름으로 정의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무의미한 형태들의 창조적인 결합으로 백지 위에 삶을 직조하는 예술 장르.
먼저 ‘무의미한 형태’는 문학의 형식적, 도구적 특징을 반영한다. 부유하는 별개의 문자들은 무의미하나 그것들의 ‘창조적인 결합’이 이루어질 때 문학으로서의 첫 발자국이 내딛어진다. 문학의 아름다움은 우선적으로 활자들의 결합, 해체, 배열의 탁월함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그 결합은 ‘백지 위에’ 이루어진다. 이는 문학이 흰 지면 위에 세워지는 예술이라는 점과 따라서 기본적으로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배제하며 향유된다는 특징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할 때 빠져서는 안될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은 문학이 ‘삶을 직조’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이는 문학이 가상의 삶(혹은 그것의 한 곡면)을 탄생시킨다는 일차적인 의미이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 언어로써 재정립되어 문학 작품속에 옮겨진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인간이 타자와 관계 맺는 수단이자 개인의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기본 수단인 언어로써 만들어지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학과 현실의 인간 삶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 권의 문학작품이 탄생하고 향유되는 과정이 삶을 살아내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한 순간의 유희와 같이 순식간에 끝나지 않는다.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끈질기게 견뎌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끈질김에 문학의 본질이 있다. 한 자 한 자 정직하게 쌓아 올려 기어코 완결된 의미를 창출하는 작가의 끈질김. 시간과 인내를 들여 기어코 마지막 문장에 도달하는 독자의 끈질김. 기어코 끝에 이른 이들에게만 자신을 잠시간 허락하는 작품의 오만한 끈질김. 이 모든 끈질김은 삶을 살아내는 일의 끈질김과 상통한다. 그 때문에 문학은 삶의 가장 적확한 은유로서 존재한다.
문학이 ‘삶을 직조’한다는, 곧 삶의 은유로서 그것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점을 역설하며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삶의 변치 않는 요소가 곧 문학의 변치 않는 요소가 됨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문학이 미래로 나아가며 어떻게 변화하여 다채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는지를 말하기 이전에, 표면의 파도 아래 변하지 않고 침묵하며 중심을 잡는 핵심을 짚어 내기 위해서이다. 문학의 본질이 삶의 핵심을 그 자신의 핵심으로 갖는 일이 된다면, 미래의 문학도 미래에 존재할 삶의 핵심을 그 자신의 핵심으로 가져야 한다. 진부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문학에게 언제까지나 그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학이 결국 삶을 담는 예술인 한은. 그래서 문학의 미래를 생각할 때 다시금 문학의 본질에의 고찰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삶의 변치 않는 요소가 곧 문학의 변치 않는 요소가 되리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삶의 변치 않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곧 문학의 변치 않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을 김초엽의 소설에서 찾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즉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그로 말미암아 삶의 형태와 모습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는 없다면, 여전히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남아야만 한다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잃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먼 과거에서부터 먼 미래까지의 시간을 관통하여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그 자신의 대답을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들 속에 다채롭게 담아내어 우리에게 제안한다. 천차만별의 시공간을 넘어 변치 않을 우리 삶의 요소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것은 (설령 그것이 단 한 번도 온전히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타자와 닿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라고. 결코 쉽지 않으며 때로는 전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그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힘이 인류의 변함없는 유산이라고. 매번 놀라운 미래를 그려내는 작가가 제시한 것 치고는, 진부하고 또 어쩌면 나이브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문학 애호가들은 열렬히 동의할 것이다.
김초엽이 제시하는 시공간은 놀랍다. 그는 다양한 미래의 양상을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제시한다. 새로운 행성에 기초한 신인류의 사회. 소통이 어려운 외계 지성체들과의 조우. 소지하고 있으면 특정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물성이 기성품처럼 소비되는 사회. 한 개인의 기억과 인격성이 도서관에 인덱스로 저장되는 세계. 블랙홀을 통과해 또 다른 우주로 향할 수 있는 가능성. 우리가 미래의 시공간을 공상할 때 동반되곤 하는 자유롭고 광범위한 상상력이 매 단편마다 녹아 있다. 각각의 세계관에 대한 파악은 작품을 읽으며 어렵지 않게 자연스레 행해진다. 분명 그의 작품세계가 관심을 모은 첫 번째 요인은 이러한 낯선 시공간의 설정이 주는 흥미로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7편의 소설들을 모두 읽은 후 한 권의 완결된 책으로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다시 생각한다면 7개의 가지각색의 선들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소통과 이해에의 간절한 열망이다. 관계가 없다면 어떤 이야기도 성립할 수 없다.
언어 소통이 불가한 외계 생명체 ‘루이’와 희진의 교감과 우정,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 영속시키는 또 다른 ‘루이’들.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 ‘시초지’로 순례를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데이지.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위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셔틀이나마 올라타는 안나. 사라진 과거의 세계를 자신 속에 담아 기억하는 류드밀라. 부정적인 감정을 주는 물성을 구태여 소장하는 연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정하. 엄마의 책을 통해 먼 존재였던 엄마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지민. 자신의 우주 영웅 재경의 족적을 따르며 그녀가 했던 뜻밖의 결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가윤. 관계의 형태도 양상도 모두 다르지만 7개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바로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 그리고 마침내는 공존이다.
우주라는 낯선 공간이 문학에 들어오는 순간 단순히 시공간의 지평이 넒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는 그 자체로 다차원적인 곳이 된다. 김초엽의 작품세계는 각각의 차원에서 건너온 완전한 타자들이 만나 이해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초월하여 마주하는 순간들의 기록이다. 비단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만이 아니라, 김초엽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루는 마주침의 주체와 형태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서로 다른 행성인들의 만남, 인간과 인공지능의 만남, 과거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의 만남. 김초엽의 지면 위에서는 도저히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의 만남이 반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낯설고 힘겨운 타자와의 마주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인들을 마주하는 순간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김초엽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마저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을 낯선 시공간을 빌려 극화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끊임없는 마주침으로 인해 비로소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 나의 차원은 그의 세계, 그의 차원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기며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감정을 가진 모든 지성체들의 생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타자의 존재임을 의심할 수 없다. 나를 나이게 하면서 나를 세계와 연결하는 애정과 신뢰의 대상이 타자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 어떤 조건 속에서도 타자와의 관계를 지켜 나가고자 하는 우리 삶의 귀중한 순간들을 직조하여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공상과학 문학 속 인물들의 삶 역시 결국 현재 우리의 삶을 은유하는 것이라면, 미래를 다루는 김초엽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이러한 메세지는 일견 뻔해 보일지라도, 분명 우리에게 결코 얕지 않은 떨림을 준다. 인간 존재, 그리고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조건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뭉클한 다정함이 작품 곳곳에 숨어있다. 내게는 시공간의 변화라는 파도 아래에 그런 변치않는 다정함이 숨어있는 작품이 언제까지고 좋은, 뛰어난 문학으로 읽힐 듯하다. 결국 그런 다정함이 어느 차가운 밤에 홀로 앉아 한 편의 문학을 펼쳐드는 무수한 이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