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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Sep 22. 2021

반추

삶의 의미 찾기


소나 염소 따위가 삼킨 먹이(꼴)를 다시 되새김질하듯이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곰곰

생각하는 일이 '반추'다. 누구나 다 잘하지 못한 부분과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후회할 수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있는데, 부정적인 생각의 반추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는

걸 보았다.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실패는 용납하지 못하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쉽게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사실 내가 나 자신을 찌를 때가 가장 아프다. 남이 찔러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도 한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를 찌르면 치유되기 어렵다. 반추하다가 내면적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기비판과 자학으로 이어져 끝이 없다. 우울증 성향이 있으면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져 자존감이 

확 떨어진다. 이런 반추를 줄이기 위해서는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자신만의 활동을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도 책상 정리나 청소, 바느질 같이 단순한 일을 하다 보면 곱씹던 생각이 사라진다.  

부정적인 반추는 비합리적 완벽주의 신념이 나를 분석해 내놓는 평가다. 주관적으로 만들어진 평가

틀이기 때문에 왜곡되어 있다. 평가 결과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생각이든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몸과 정신적 상태가 적절하게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려면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삶이란 내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남들은 다 잘났고 뭐든 잘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를 비교하다 보면 끝이 없다. 나는 더디고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도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고 나름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나 남들과의 관계에서 현실을 벗어난 초월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위험하다.

남을 의식하고 멋져 보이려고 조급해하지 말자. 한 걸음씩 내 목표에 정진해 나가면 내 어깨에 걸머진 책임,

존재의 무거움이 삶의 보람이 될 수 있다. 뭔가에 매여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되기도 하니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반추를 통해 우리는 자기를

받아들이고, 억누르기보다 개방함으로써 자기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주인(주체)이

되는 순간 반추는 빛을 발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친구가 전시회 제목을 <반추>로 잡아서 처음 접하게 되었었다. 오래전 일인데 

뭔가 있어 보이고 그림의 의미를 살려주는 말인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인생에 회한을 느끼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고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가꿀 수 있게 하니까.



<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 명규원 作


그 친구는 대학 동기로 잘 웃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이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나중에 점점 가까워졌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결혼식을 했고, 우리는 큰애를 비슷한 시기에 낳았다.

12년 만에 미대를 재입학할 기회가 왔을 때 친구가 하던 입시학원에 가서 과외를 받았다. 수묵화에

미숙한 나를 격려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참 고마운 친구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다가 쉬고

있을 때 셋째를 임신한 몸으로 방문해서 언제 또 낳아 키울지 걱정했는데, 4년 후 나도 넷째를 낳게

되었으니 우린 통하는 게 많았다.

친정어머니가 자궁암으로 돌아가셔서 자신도 암보험에 들었다고 하더니 난소암으로 10년 가까이

투병해야 했다. 가끔씩 통화하고 서울에 올라가면 만나다가 재작년부터  소원해졌다. 간과 척추에 전이

되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을  없었다. 그래도 항암치료를  견디고 워낙 씩씩해서  지내는  알았다. 그런데 작년 봄에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놀랐다.

슬프고 허망해서 눈물이 났는데 친구 남편과 통화하면서 울먹이고 말았다. 우한 코로나 때문에 조문도

사양한다고 해서 조의금만 보냈다. 암이 뇌로 전이되어 급속히 상태가 악화되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할 수 없지만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 난 기분이 들었다. 막내아들도 대학에

들어갔으니 할 일은 거의 다 한 셈이다. 인생의 여정도 생명의 기한도 우리가 알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고통 없이 편히 쉬라고 하느님이 부른 것으로 이해하며 위로를 삼을 수밖에....


나만 깨지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음침한 생각과 씁쓸한 회한과 때때로 증오에 찬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혼란스럽고 불안하며 두려운 감정을 느낀다. 잘못과 실수와 고통을

피하기 어렵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외롭지 않고 

희망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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