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의 상서로움

분리의 어려움

by 오행시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녀는 나보다 2년 어렸고 공무원 시작은 1년 뒤였다. 그러니 길게 보면 큰 차이는 없는 건데 ‘명퇴신청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아니, 벌써? 왜?“

내가 놀란 만큼 말을 전해 준 이도 놀란 눈치다. 우리는 당사자의 마음을 모른 채 그저 지레짐작으로 그녀의 명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걸로도 설명되지 않자 우리는 결국 ‘때가 된 것 뿐이겠지.’로 결론을 내렸다.

이십대 초반 작은 어촌지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고 90년대 중반쯤엔가 우리지역으로 전입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7급 고참 시절, 그녀와 한 부서에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처럼 찬찬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해내는 이를 나는 지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연령이었음에도 나와는 늘 거리가 있었다.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던 30대 중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조직생활에서 주는 묘한 심리전, 예를 들면 경쟁심 또는 질투심을 유발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고 내가 그렇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말도 많은 내가 다가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친해 볼 여유도 없이 각자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우리는 다시 만날 기회를 잃었다. 정원 1,200여명, 그다지 큰 조직이 아니어서 공무원 생활 30년이면 두어 번은 족히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엮이질 못했다. 업무적으로 얼굴을 마주치거나 전화 통화는 가끔 했다. 몇 달 전 업무적인 일로 통화한 것이 그녀와 마지막 통화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녀의 명퇴소식을 다른 이를 통해서 접하면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한참 들어갔다 나왔다. 타인의 명퇴지만 이는 곧 내 삶도 살펴봐야 하는 의미임을 알기에.

『중년, 잠시 멈춤』에서 마리나 벤저민은 ‘어느 덧 50살, 젊음이 떠나자 인생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고 했다. 인생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는 것은 버릴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껏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온갖 걱정이나 욕심, 야망 그리고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직장이라는 굴레, 아무리 자기계발과 업무와의 조율이 훌륭하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성과와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끊임없이 자신과 겨뤄야 했다. 남들도 다 하는 거니까 그냥 해 나가면 될 텐데 워낙 성정이 깔끔하면 성과의 비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동안 잘 해왔던 그간의 것들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그 다음의 업무가 허접 쓰레기라 하더라도 재활용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 조차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조직 안에서의 구성원의 역할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공무원 조직이 일반 사기업과 다르다지만 일정한 형식을 갖춰 뭔가의 이익을 위해 구성된 조직이라면 성과나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공통된 조직의 숙명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이 조직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정하게 맞아떨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승진과 성과급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사실 그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승진의 기회를 과감하게 놓아버렸다. 경력이나 능력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과감한 결정을 시도한 것은 ‘좀 더 풍성한 인생을 위한 준비’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읽은 아니타 존스턴의 『달빛 아래서의 만찬』에 이런 글이 나온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내려 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한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표현했다. 한 때 우리를 구원해줬던 통나무는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붙잡고 있으면 더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것은 잠깐의 고난도 견디기 싫기 때문이다. 여태껏 나를 지탱해주던 통나무를 놓아버리면 그대로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은 지금껏 일상으로 누려왔던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의미이기에 누구도 감히 통나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더 깊은 물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인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상이 주는 매너리즘이다.

인생에서 완전한 기쁨이나 완벽한 절망은 없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사람, 생각, 조직이 어느 때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 일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지만 그걸 깨닫게 되고 실행에 옮기는 이는 아주 극소수다. 아니타 존스턴의 이야기는 일종의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다.

30년 이상 공직이란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지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안전하지만 물론 안에서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은 세월이었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나의 일과 싸워왔다. 지금도 멈추지 않는 싸움을 하면서 멀리 보이는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물론 조금만 더 살펴본다면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명퇴, 의원면직, 조기퇴직, 각각 사연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현재 조직을 나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구나 다 보이게 구멍이 뚫린 담벼락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문, 아주 드물게 이용되는 작은 오솔길로 연결된 문, 빗장은 채워져 있지 않지만 열면 안된다고 뇌리에 박힌 작은 문, 우리 주위에 숱한 출구가 있다. 그러나 정작 선택되는 문은 많지 않다. 왜? 우리는 정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배워왔다. 이미 밖으로 나간 선배들로부터 들은 내용이 정답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삶이 채워지지 않은 것이 명퇴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에게 채워지지 않은 것은 바로 열정의 부재에서 오는 박탈감임에도 말이다.

나는 요즘도 남편의 명퇴가 과연 옳았는가를 생각한다. 명퇴이후 농부로 살아가는 그의 여유로움이 별 볼일 없어 보였다. 처음 몇 달은 기쁨에 생기가 있던 남편도 이제 2년쯤 접어들자 일상이라는 굴레에 갇혀버리는 것 같다. 눈 뜨면 밭으로 가고, 해지면 집으로 들어오는 월급쟁이와 같은 삶. 물론 성과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야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는 없지만 일상의 굴레는 없어지지 않았다. 자유로움은 있지만 그는 주중에는 철저히 혼자 있어야 한다. 퇴직은 직장에서의 퇴직이지 인생의 퇴직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사람냄새나는 곳에 묻혀서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삶의 열정이다. 농사를 짓기로 했지만 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잘 가꾸고 때맞춰 물도 주고 풀도 뽑아줘야 보답을 한다. 땅과 작물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농사의 결실, 남편은 올해는 농사일지를 써보겠다고 한다. 이제야 농사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지. 남편에게 명퇴신청을 한 후배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지. 어떻게 떠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먼저 나간다는 것은 그 사람은 그 길을 찾았을지도 몰라.”

울타리 밖에 안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서 나서는 그녀를 생각했다. 나보다 생리적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훨씬 완숙한 그녀에게 ‘멋지다’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