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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1)

by 삼오십

꿈이었다.


눈을 떴는데도 몸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여전히 꿈속에 있는 것처럼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전에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는 한 이토록 생생한 꿈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꺼냈다. 생각나는 장면부터 기억을 따라 빠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A4 한 장이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 놓친 부분은 없을까. 꿈을 몇 번이나 되감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작게 쿵쾅, 하고 뛰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가슴 저린 고통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잠은 이미 깼는데도 그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꿈은 서로 이어진 여러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장면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나는 그 꿈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록한 꿈의 내용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단어, 문장을 따라갈 때마다 꿈의 장면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반복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꿈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표정, 그들이 있던 공기까지 세세하게 떠올랐다. 보통 내가 꾸는 꿈은 선명한 편이 아니었다. 가끔 소위 '개꿈'을 흥미진진하게 꾸기도 했지만, 잠에서 깨는 순간엔 언제나 느낌만 남고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좋았던 꿈의 경우엔 잠에서 깬 후 기억해 보려 애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생생히 떠오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꿈은 달랐다.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마치 현실에서 직접 본 장면처럼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이 다시 떠오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렇게 선명한 꿈이라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지몽'이라고 하던가.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보여주는 꿈. 예전엔 그런 걸 믿지 않았었다.


‘꿈이 내 죽음을 예고하는 건가?’


비록 꿈이었지만, 죽는다는 두려움보다도 꿈속에서 느낀 그 슬픔이 깨어난 뒤에도 따라붙는 게 더 괴로웠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 꿈과 기억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실제로 몇 번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마음은 더 깊이, 어딘가 심연까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꿈도 잊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양치하려고 욕실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 속 나를 둘러싼 공기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떤 강한 힘 앞에서 저항할 수 없이 굴복하게 되는, 그런 기운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하루하루 쌓여갔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슬퍼할 사람들에 대한 생각. 미처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미루다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들. 그 모든 것들이 마음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마음 어딘가에 부딪쳐 시린 통증을 일으켰다.


‘만약 정말 꿈대로 내가 죽게 되는 게 맞다면, 늦기 전에 정리를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집안을 정리해야 하나. 유언장도 남겨야 하나.’
‘컴퓨터랑 휴대폰 비밀번호는 쉬운 걸로 바꿔야겠지.’
‘뭘 남기고, 뭘 버려야 할까. 얼마 되진 않지만 재산은… 빚은…’

‘난 아직 인생의 반환점도 못 돌았을 나이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몸 안 어딘가에 다시 슬픔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죽는 건가…’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을 딱히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의연했던 것도 아니었다. 죽음을 염두에 둘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어디를 크게 다치거나, 죽을 만큼 아파본 적도 없었다. 그저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꿈 이후로 죽음이라는 것이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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