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세요?”
“손님 몇 번 모셔다 준 적은 있는데, 뭐 하는 덴 지는 잘 몰라요.”
기사님은 처음 인상 그대로, 필요 이상 추측하지 않는 말투였다. 궁금함을 견딜 수 없어 물었지만 더 들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쉽지만,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기사님에게 그 명함에 적힌 주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택시는 조용히 출발했다. 그 길이 기사님과의 마지막이었다. 도착 후 택시비를 건네며 몰래 접어둔 사례금 봉투도 함께 놓고 내렸다. 감사함이든, 미안함이든, 빚진 마음으로 안동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기사님이 알려주길, 조금 더 걸어가야 명함의 주소에 도착한다고 했다. 택시가 멀어지는 걸 보고 나는 다시 그 종이를 펼쳐 보았다. 저만치에 기와지붕이 얹힌 집이 하나 보였다. 처음엔 박물관이나 공공건물인가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휴대폰 앱을 켜고 주소를 입력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집이 맞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안쪽은 훨씬 넓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들이 있었다. 싸우는 소리인지, 기합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울림들이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가까이 가야 하나망설이고 있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어쩌면, 정말로 죄일 수도 있었다. 사유지에 무단으로 들어왔으니까.
“실례합니다. 이걸 주신 분이, 여기로 가보라고 하셔서…”
나는 주머니에서 이제는 구겨진 명함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허 선생님이라고 하시던 노인분이셨는데요.”
내가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 남자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웃으며 손짓으로 나를 안내했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그 노인이 보냈다는 말 하나에 바로 길을 열어주는 태도에 기이하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아까 들었던 큰 소리의 정체가 보였다. 탈을 쓴 사람들이 공연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까의 남자는 나에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연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이 공연의 연출인 듯했다. 배우들이 움직일 때마다 기합을 넣거나 중간에 멈추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몇 번을 멈췄다 이어지던 연습이 정돈된 듯 이어졌고,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허설이 시작된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등을 곧게 세우고, 몸동작을 줄이며, 정숙을 유지하려 자연스레 긴장했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침도 미리 꼴깍 삼켰다.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탈을 쓰고만 진행되진 않았다. 어떤 장면은 탈을 벗고 연기했다. 내용은 별다를 게 없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웃기는 장면에서는 나도 웃었다. 긴장감이 오를 때는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뭉클한 장면도 있었다.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몰입되어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극의 흐름이 이상하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죽는 역할을 맡은 배우가 탈을 벗더니 연출에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연출이 뭔가를 말하며 그를 나무라는 걸 보면 진짜 상황인 것 같기도 했다. 그 배우는 결국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몸을 일으킬까 말까 수십 번 생각했다.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인가 불안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친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 배우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나에게 걸어오는 게 분명했다. 순간, 나는 목이 굳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