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고는 왜 생길까
[♪ 밝은 음악]
이지은: 안녕하세요, '안개 속을 걷다'의 이지은입니다! 오늘도 불확실성과 친해지는 시간, 함께해요!
언젠가 저녁에 아빠가 신나서 들어오셨어요. "역 앞에 삼겹살집 새로 생겼는데, 회사 박 과장 말론 진짜 맛있다더라. 주말에 거기 가자!" 엄마도 "좋지! 오랜만에 외식이네!" 하시면서 들뜨셨죠. 제가 그 식당을 검색해보니, 별점 개수도 너무 적고, 평균 별점도 너무 낮더라고요. 근데 두 분이 기대에 차 계신데 "평이 안 좋은데요" 하면 분위기 깨잖아요. 저도 "좋아요!" 했어요.
30분 줄 서고, 먹어보니 기대 이하. 나오면서 아빠가 "박 과장이 맛있다 했는데... 걔가 원래 과장이 좀 심하지..." 하시더라고요. 엄마도 "나는 사실 어디든 괜찮았어, 같이 나온 게 좋았던 거지" 하시고요. 다들 확실하지 않았는데 확실한 척했고, 제가 알고 있던 정보는 아예 공유되지 못한 거예요!
[띠링!]
여러분 직장에서도 이런 경험 있으시죠? 회의에서 방향이 정해지려는데,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있지만 분위기상 그냥 넘어간 적 말이에요.
오늘은 바로 이 문제를 다뤄볼 거예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결정을 내릴 때, 불확실성을 숨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솔직하게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인정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여럿이 모이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족회의부터 이사회까지, 의료진의 협진부터 배심원 평결까지, 중요한 결정일수록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려 합니다.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대중의 지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때 집단지성이 발현된다고 설명했습니다[1]. 소 무게 맞추기 대회에서 개인들의 추정치 평균이 실제 무게와 거의 일치했던 유명한 사례처럼 말이죠.
하지만 막상 회의실에 앉아보면 정반대 일이 벌어집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참모진 중 아무도 비현실적인 작전에 제동을 걸지 못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도 그렇습니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금융 전문가들이 모여 있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취해 있었고,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비관론자'로 낙인찍혔죠[2]. 2023년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에서도 경영진은 금리 상승 위험을 과소평가했고, 내부의 우려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3].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이런 현상을 집단사고(groupthink)라고 불렀습니다[4,5]. 집단의 결속과 한목소리를 내려는 욕구가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는 현상입니다. 재니스가 제시한 여러 증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거짓 확신'입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가 확신에 차서 "이것이 해법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대화는 멈춥니다. 많은 조직에서는 확신을 미덕으로 여기고, 의구심은 약점으로 봅니다. "한 80% 정도는 성공할 것 같습니다"보다 "성공을 확신합니다"가 더 전문적이고 유능해 보이죠. 특히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는 "확실하게 말하라"는 압박이 강합니다. 스타트업에서도 "우리 제품은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는 창업자의 확신에 모두가 동조하면서, 시장 조사나 고객 피드백의 불확실한 신호들은 무시됩니다. 한 사람이 확신에 차면 다음 사람은 더 강하게 확신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확실함의 경쟁이 시작되는 거죠.
두 번째는 '다양성 억압'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이 보여주듯, 자신의 판단이 다수와 다르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조차 부정합니다[6]. 회의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입을 닫으면, 그 침묵이 다른 의견들까지 잠재우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더 직접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 이견을 꺼냈을 때 "지금 그런 얘기할 때 아니지"라는 한마디로 정리되면, 회의실 전체가 그 신호를 학습합니다. 이런 일은 리더의 선호가 명확하거나, 구성원들이 비슷한 배경을 가졌거나, 외부 의견으로부터 고립된 집단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집단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가 집단사고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위험 신호 자체가 조직 안에서 점진적으로 무뎌지는 현상도 있습니다. 1986년 챌린저호 참사가 그렇습니다. O-링 손상은 이전 발사에서도 반복되었지만, 매번 사고 없이 귀환하면서 엔지니어들조차 이를 '허용 범위'로 재분류했습니다. 사회학자 다이앤 본(Diane Vaughan)은 이 과정을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고 불렀습니다[7].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험을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매번 무사히 귀환한 경험이 쌓이면서 위험의 기준선 자체가 조용히 이동했습니다. 발사 전야에 일부 엔지니어들이 추운 날씨 속 O-링 결함을 경고했지만, 조직은 이미 그 위험을 '늘 있던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새 경고는 별다른 무게를 갖지 못했습니다.
메커니즘은 셋 다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알고 있던 우려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위험 신호가 무게를 잃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처방은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고 확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100% 확실합니다"가 아니라 "70% 정도로 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정치학자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의 연구에 따르면, 확률 추정치를 공유하고 토론한 팀이 개인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습니다[8]. 확신도를 숫자로 표현하면 나머지 30%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불확실성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확신으로 인한 맹점도 피할 수 있죠. 앞서 본 애쉬의 동조 실험에서도 한 명만 솔직하게 답하면 나머지의 동조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물론 실험실과 달리 실제 조직에는 직급의 비대칭이 있습니다. 리더가 먼저 "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라고 인정할 때,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훨씬 큽니다.
두 번째 처방은 응용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 제안한 사전 부검(pre-mortem)을 시행하는 것입니다[9].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1년 후 이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왜 실패했을까?"라고 묻는 것이죠. 핵심은 실패를 기정사실로 놓는 데 있습니다.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은 반대 의견이지만, "이미 실패했다, 왜?"라고 묻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우려를 표현하는 것이 분위기를 깨는 행동이 아니라 함께 답을 찾는 일이 되는 구조죠. 이 간단한 전환이 과신을 깨고, 앞서 본 침묵의 악순환을 차단합니다.
세 번째 처방은 다양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 가롤드 슈타서(Garold Stasser)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 토론에서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만 반복 논의되는 공유 정보 편향(shared information bias)이 일어납니다[10]. 한두 명만 알고 있는 핵심 정보는 공유되지 않죠.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자 다른 핵심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그 정보가 토론에서 공유되지 않아 결국 열등한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를 막으려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만들거나[11], "각자가 아는 특별한 정보를 먼저 공유하자"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만 역할로 맡긴 반대 의견은 그 반론을 논파하는 데 집중하게 만드는 반면, 진심에서 우러난 반대는 문제 자체를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보게 합니다[12]. 진정한 다양성은 역할 배분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화에서 나옵니다.
집단의 지혜는 다양성과 독립성이 보장될 때 발현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각자의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거든요. "100% 확실해"라는 거짓 갑옷을 벗고, "70% 정도 그럴 것 같아"라는 솔직함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더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드러난 의견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정의 질을 좌우하죠.
이지은: 어떠셨나요? 저도 이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회의 때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요. 확실한 척하느라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들을 놓쳤을까 싶더라고요.
결국 핵심은 이거예요. "확실해!"라고 단언하는 것보다 자신의 확신도를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거든요.
우리 가족도 이제는 외식 장소를 정할 때 각자 얼마나 확실한지 솔직하게 말해요. 얼마 전에도 아빠가 유튜브에서 본 맛집 얘기를 꺼내셨어요. "가보고 싶긴 한데, 영상만 봐서는 확신이 안 서네. 협찬일 수도 있고..." 하시더라고요. 엄마도 "나도 그 맛집 들어봤어.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음식이 맛있다고 했던 것 같아." 하시고요. 그러니까 바로 "제가 리뷰 글 찾아볼게요!" 할 수 있었어요. 불확실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정보를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리뷰를 보니 평이 좋아서 안심하고 갔는데, 이번 외식은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띠링!]
오늘의 미션! 이번 주에 가족이나 동료들과 무언가를 결정할 일이 있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100% 확실해" 대신 "○○% 정도 그럴 것 같아"라고 말하기
다른 사람에게도 "얼마나 확신해?"라고 물어보기
각자의 확신도를 공유한 후 함께 결정하기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훨씬 건설적인 대화가 될 거예요! 정확한 숫자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꽤 확실해'와 '좀 불확실해' 정도만 구분해도 충분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의견이 다를 때 증거를 기반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저는 이지은이었습니다.
[♪ 밝은 음악]
참고문헌
1. Surowiecki, J. (2005). 대중의 지혜 (홍대운, 이창근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원서출판 2004)
2. Lewis, M. (2010). 빅 숏 (이미정 역). 비즈니스맵. (원서출판 2010)
3. Barr, M. S. (2023). Review of the Federal Reserve's supervision and regulation of Silicon Valley Bank.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4. Janis, I. L. (1972). Victims of groupthink: A psychological study of foreign-policy decisions and fiascoes. Houghton Mifflin.
5. Janis, I. L. (1982). Groupthink: Psychological studies of policy decisions and fiascoes (2nd ed.). Houghton Mifflin.
6. Asch, S. E. (1956). Studies of independence and conformity: I. A minority of one against a unanimous majority. Psychological Monographs: General and Applied, 70(9), 1–70.
7. Vaughan, D. (1996). 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 Tetlock, P. E., & Gardner, D. (2016). 슈퍼 예측: 그들은 어떻게 미래를 보았는가 (이경남 역). 알키. (원서출판 2015)
9. Klein, G. (2007). Performing a project premortem. Harvard Business Review, 85(9), 18–19.
10. Stasser, G., & Titus, W. (1985). Pooling of unshared information in group decision making: Biased information sampling during discus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8(6), 1467–1478.
11. Schwenk, C. R. (1990). Effects of devil's advocacy and dialectical inquiry on decision making: A meta-analysi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47
(1), 161–176.
12. Nemeth, C. J. (2020). 반대의 놀라운 힘 (신솔잎 역). 청림출판. (원서출판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