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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Apr 11. 2023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요즘 핫한 소설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었다. ‘엄마를 부탁해’가 어머니에 대한 찬가라면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존재로 그려졌는데 이 책의 아버지는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않다.


아버지 고상욱에게는 지리산 빨치산 출신으로서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위대한 혁명가”의 모습,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가장의 모습, 국졸이지만 늘 알려고 하는 지식인의 모습, 무뚝뚝한, 천상 옛날 아버지들의 겉모습 아래 속정 깊은 아버지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이 깔려있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이유도 민중이 가난해도 인간대접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고, 그가 경제적으로 쪼들린 이유 힘든 이웃을 위해 그저 보증을 서주기도 하고, 이해타산을 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더 관심이 많아서였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네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진면목은 그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그중에는 십대인 다문화 가정 출신의 노랑머리 소녀도 있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와 담배 친구였다. 상가를 지키며 아버지를 돌아보게 된 딸은 마침내 아버지를 정의한다.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라고. 그런데 혁명은 아무나 못한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 없이는 변혁을 꿈꾸지도 자신을 바꿀 수도 없다.


이러한 ‘아버지의 해방 일지’의 아버지는 한국 문학에서 휴머니스트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앵무새 죽이기’의 아버지가 미국 문학에서 그런 것처럼.


‘앵무새 죽이기’의 아버지 애티커스는 변호사이다. 1930년대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미국의 남부 소도시에서 그는 억울하게 강간죄로 기소된 흑인남성을 변호한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관련한 백인들의 위선과 독선을 다룬 책으로 유명하고, 미국에서는 애티커스의 정의로운 모습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회자되어 왔다. 애티커스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칙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몸소 구현해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이들에게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흑인을 속이는 것이 더 나쁘다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싱글대디인 그는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관심 있는 주제로 말하는 것과 같은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자세도 하나하나 일러준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티커스는 살해당할 위기에서 구출되어 혼수상태인 아들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다. 옆에 있던 딸이 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안아서 방으로 데려가는 동안 딸은 비몽사몽간에 책에 대해서 아는 체하며 종알댄다. 아빠에게 안겨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대는 딸의 모습은 ‘아버지의 해방 일지’에서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 아버지와 한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딸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두 책 모두 딸들이 작가가 되었다. 또한 모두 자전적 소설이니  딸들은 가슴에 담은 아버지의 다정함과  인간애를 자신들의 펜 끝에 흘려놓았던 일테다. 그들의 펜을 따라가며,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흑인이 노예 아니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혼란기도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더, 크나큰 연민으로 사람버지가 필요함을, 그의 등만 보고 따라가면 되는 아버지가 필요함을 느낀다.





(사진:  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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