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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May 05. 2023

사람들은 친절이 고프다

그동안 친절이라는 이슈에 간간히 사로잡혔었다. 가장 최근은 인기 소설인 ‘불편한 편의점’에 나오는 친절에 대한 멘트를 만났을 때이다. 그 책에 나오는 또 한 명의 친절의 화신인 희수 샘의 대사였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귀부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으로 유명한 영미작가 헨리 제임스(1843~1916)의 발언이 내게 강한 울림을 주었었다.(이 말은 그의 전기에 나온다고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이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친절을 강조해서일까? 90년대 미국에 갔을 때 내가 미국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은 그 당시 한국사람들에 비해서 무척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돌도 안된 아들을 안고 마트 문 앞에 당도하면 으레 가까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문을 열어 내가 지나가도록 붙잡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신선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들은 아기를 안고 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자신의 뒤에 사람이 오고 있으면 뒷사람이 통과하기 편하게 문을 잡고 기다려 주었다.(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으니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20년대 한국에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안타까운 것은 그 친절이 대체로 이해득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같은 직장에 있어도 심지어 한솥밥을 먹는 관계에서도 이런 심리가 자주 발동한다는 것이다.(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그러나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씨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독고씨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위로라는 키워드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친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작가도 몇 군데에서 친절을 강조하는 문구를 흘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독고씨의 친절이 비현실적이고 그건 감상주의의 산물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천하기 어려운 친절은 없다.(전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한 사람을 혼내는 것은 아주 통쾌하지만 예외로 하겠다.) 당신이 편의점 알바라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그 공간에서 달리 할 일도 없다. 유튜브나 영화를 덜 보고 오가는 손님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관심이 어쩌면 친절로 가는데 가장 큰 관문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장벽은 성격일까? 성격 탓을 하는 사람은 고생을 덜해봐서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도 독고씨처럼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가령 혼술하는 남자에게 유효기간 막 지난 핫바를 가져다주는 것은 쉬운 일 아닌가? (지구를 위해서도 정말 보람 있는 일이다.)


친절은 지렛대 효과가 있다. 베푸는 사람은 작은 친절인데 상대방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나와 데쓰게임을 하는 자만 아니라면 나로 인해 어떤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밥 딜런의 할머니도 이러한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에 온 손님들이 독고씨의 친절을 단술처럼 받아 마시고 힘을 내서 삶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기이다. 그런데 작가의 또 하나의 메시지는 친절의 범위에 잊지 말고 가족을 넣으라는 것이다. 독고씨가 그의 뒤를 이어 야간 알바를 맡을 곽씨에게 하는 말이다.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 될 겁니다.”[중략]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편의점 여사장님과 아들, 편의점 오전 알바인 오선숙씨와 아들, 편의점에 와서 혼술하던 사내와 가족, 곽씨와 그의 이혼 전 가족, 독고씨가 회상한 과거의 독고씨와 아내와 딸 등 소외되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이 변주처럼 작품 내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독고씨의 입을 통해 작가는 위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최소한 내 물건을 팔아주는 손님에게 하듯 친절하라고. 그렇다. 친절이 소통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독고씨는 말한다. “편의점에서 접객을 하며....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라고. 친절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불친절한 가족이 있으면 모두 편의점이나 판매직에 알바를 보내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친절을 연습하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당신이 길을 가는데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작은 친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당신은 손하나 까딱해서 지렛대를 눌렀는데 상대방이 느끼는 정서적 지지의 힘은 아주 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다른 사람들작은 친절때문에 힘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니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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