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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Jul 14. 2023

‘셀러브리티’를 보고: 자존감과 정서적 지지

N사가 제작한 ‘셀러브리티’를 보았다. 역시 주인공 캐릭터는 멋졌다. 권위에 기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기백, 사람들과의 격한 갈등의 순간에도 상대방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제대로 반격하는 침착함과 영민함!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주인공보다는 단역으로 나오는 악플러 bbb_famous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그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막 회에 가서야 얼굴을 드러내지만 사건의 발단과 전개에 큰 역할을 한다. 그녀는 DM을 통해서 주인공 서아리를 응원하면서 셀럽이 되는데 필요한 정보를 준다. 그러다가 아리에게 등을 돌리고 또 다른 셀럽 오민혜에게 접근해 아리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을 돕는다.


bbb는 아리를 공격하는 ‘깔판’이라는 사이트에서도 활동하며 아리에 대한 무수한 악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제거하고 싶은 세력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후 아리가 극적으로 회생하여 마지막으로 해결한 문제가 bbb를 만나서 “내게 왜 그랬어요?”라도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bbb의 실체는 충격적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은둔자였고 광적인 악플러였다. 직업이 마사지 테라피스트인 그녀는 자신이 부잣집 딸이라고 허언하면서 쓰레기로 뒤덮인 원룸에서 혼자 사는 젊은 아가씨였다. bbb는 자신을 찾아낸 아리와 아리의 지지자 시현 앞에서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다. 살아서 자신의 잘못은 벌을 받아야 한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녀는 왜 이렇게 됐을까? 원래가 나쁜 성품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아니다. 환경 탓이다. 환경 탓에 충분한 자존감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랄 때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은 배움의 기회도 빼앗고 자존감도 빼앗았을 것이다. 낮은 자존감으로 버티고 있는 그녀에게 마사지 숍에 오는 셀럽들과 부유층 사람들의 무시는 그녀의 자존감을 더 낮아지게 했을 것이다.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약도 먹어보지만 우울증 약이 자존감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녀가 자살하지 않고,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SNS에서 악플을 통해 잘 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망가뜨리는 데서 얻는 존재감이었다. 그녀에게 SNS는 총과 같은 무기였다. 그녀의 SNS에서 퍼붓는 언어폭력은 미국발 뉴스에서 보는 무차별 총기난사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세상에서 얻은 울분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를 표출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주인공 아리 역시 정말 혹독한 시련을 당한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능력있는 연인(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이 있었다. 그런데 bbb는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쓰레기들만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먼저 다가가 친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구에게 다가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녀를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녀는 방의 쓰레기를 치우고, 살아보기 위해 동네 헬스클럽이라도 등록했을지 모른다.


bbb 이야기를 하다 보니 최근 과외를 받겠다고 속이고 찾아가 같은 젊은이를 죽인 정유정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bbb 스토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bbb나 정유정 같은 사회적 은둔자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사회적 안전망에 살짝 기대해 본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국가가 아이들의 복지를 총체적으로 떠맡았으면 좋겠다. 최근 뉴스를 보니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한 국경 안에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아이들을 잘 돌보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에 방점을 두고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 준다면? 그러니까 부모나 양육자가 못하면 학교와 사회가 충분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bbb와 같은 가엾은 존재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 '가엾은' 존재들 때문에 피해를 받는 선량한 시민들도 줄어들 것이다.)


내 생각이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까. 매주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설문조사하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교사들의 최고의 관심사로 삼는 덴마크 말이다. 다른 유럽 나라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는 나라가 덴마크뿐이다. 여러 나라가 있으면 어떻고 한 나라이면 어떤가? 한 나라라도 영감을 주면 우리는 그 나라를 따라 하면 되는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적어도 대학까지는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스웨덴은 박사과정까지 무료라고 한다.) 물론 세금을 많이 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유능한 정치가들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치적을 위해 나중에 쓸모도 없는 뭔가를 지으려고 쏟아붓는 몇 백억이면 많은 아이들이 무상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선진국 아닌가?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부모와 교사들과 국가가 합심해서 사람들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모두가 원하는만큼 교육을 받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앎이라는 무기를 갖게 해준다면, 그에 따라 정서적 지지도 스스로 해결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쓰다 보니 머쓱해진다. 나의 문제들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살면서 무슨 남 걱정을 하는 건지.... 그런데 어쩌면 나는 남을 걱정하면서 슬쩍 나의 문제들을 조금씩 뛰어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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