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특급(1)
지하철을 '지옥철'로 부르는 건 옛날 사람이지만 지금도 출근, 퇴근 열차의 지옥도(地獄道)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중에 금요일 퇴근 시간은 승객 포화도가 가히 폭발적이다. 아비규환의 열차 안에서 나의 갈비뼈와 흉부를 수십 명의 체중으로 인정사정없이 압박해 올 때면 몸 어딘가가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공포가 아닐 것이다.
그날따라 무엇이 급했을까. 아니, 분명 급했다. 거의 일 년 동안 고민한 끝에 오 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매한 무선 이어폰이 주문한 지 엿새 만에 회사에 도착했다. 언제부턴가 나의 눈에는 무선 이어폰을 낀 사람들의 귀만 보였다. 처음에는 오직 이어폰이, 그다음에는 이어폰의 브랜드가, 구매를 결정하고 나서는 이어폰의 컬러를 살피고 또 살파는 장고 끝에 인터넷 주문을 했고, 드디어 그것이 내 귀에 안착했다. 택배를 받자마자 언박싱을 하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착용한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봤다. 러블리한 레드빛 이어폰이 기막히게 내 귀에 어울렸다. 상상했던 착용컷을 만족스럽게 확인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페어링까지 일사천리로 마쳤다. 모든 것이 시뮬레이션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요란한 기계음이 폭풍처럼 덮쳐왔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스크린도어가 젖혀지고 열차 문도 따라 열린다. 이어폰에서 고막을 향해 멜로디가 스멀거리며 전달된다. 순식간에 달팽이관까지 장악해 버린 리듬을 타며 열차에 오른다. 급히 출발한 열차마저 내 음악에 박자를 맞춰 속도를 높인다. 열차 안 승객들도 덩달아 흥겨운 어깨춤을 추려는 찰나.... 또 졸아? 퇴근 안 해? 앞자리에 앉은 오 팀장의 PC 톡이 나의 행복한 상상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나 오늘은 무엇이든 좋다. 서둘러 가방을 싸자!
9호선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퇴근 승객들은 이미 전투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라도 좀 참아야 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는 흥분상태였다. 잠시 멈칫대는 내 발걸음을 책망하듯이 귀에 꽂힌 이어폰이 속삭인다. 뭘 고민해? 어서 집에 가야지! 황금 같은 불금을 지하철 안에서 허비할 거야? 설마 느려 터진 일반행을 타려는 건 아닌지?? 당연히 아니지! 새 차를 사면 드라이브를 즐기며 시승식을 하듯이 열차에 몸을 맡긴 채 조금이라도 빠르게 '청음식'을 하고 싶었다. 얼마나 상상했던 순간인가.
거기 그만 좀 밀어요! 아저씨 더 못 타요! 앗 내 팔.... 비명과 짜증과 고성이 돌림노래처럼 터져 나왔다. 서둘러 백팩을 앞으로 돌려 맸다. 이러면 가슴 부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최악의 사고는 방지할 수 있다고 방송에서 들었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가냘픈 미역 줄기처럼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 그런데도 온통 나의 신경은 청각으로 향했다. 여전히 감미로운 음악이 나의 감성을 나른하게 마시지하고 있었다. 몇 정거장만 참으면 열차도 조금은 한산해질 것이고 나도 곧 내릴 것이다. 서둘러 5호선으로 환승을 한 후 또 다섯 정거장만 가면 집이다. 그럼 나는 노트북을 챙겨 근처 카페로 직행, 아늑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즐기면서 얼마 전에 시작한 브런치 글도 쓸 수 있다. 진작 무선 이어폰을 살 걸. 아니,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맘껏 즐겨야지~ 노파심에 조금 헐렁해진 이어폰을 귓바퀴 속으로 더 깊게 넣으려고 할 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저 내려요!
내 뒤쪽에 자리한 누군가 인간 파도 사이를 허우적대며 급하게 문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떠밀려온 또 다른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한 여성의 어깨를 잡았고 이에 놀란 그녀는 왜 이러냐면 팔을 휘어졌다가 그만 나의 뒷머리 부근을 쳤다. 꽤 강하게 맞았는지 아팠다. 그녀는 내게 바로 사과했고 기분은 나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넘겼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음악이 사라졌다. 귓속 깊이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울리던 내 음악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순간 그녀에게 맞았던 곳이 정확히 오른쪽 귀라는 것을 인지했고 그 타격이 낳은 결과를 정확하게 감지했다. 나의 한쪽 이어폰이 귀에 빠진 것이다. 왼손으로 급하게 나의 오른쪽 귀와 목 언저리 이곳저곳을 더듬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열차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타는 사람은 하차하는 승객보다 늘 많았다. 심지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몇 발짝 옆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고개를 숙여서 바닥을 뒹굴고 있을 이어폰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열차 안 승객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바로 나의 이어폰을 구출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신발 밑에서 산산조각 날 것이 분명했다. 일분일초가 급했고 나의 이성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찾고 싶었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수부들이 물 밑으로 가라앉기 위해 납 허리띠를 차듯이 나는 반대로 팩백을 벗었다. 그러자 자세를 낮추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무릎을 굽혀 자세를 최대한 낮췄다.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열차 바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들 다리 사이를 비집고 움직이는 것 역시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 어디를 배회하고 있을 이어폰의 위치를 숨 가쁘게 추적했고, 저만치 빨간색의 물체가 시야를 사로잡았다. 저거다! 더 이상 인정사정 볼 거 없었다.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곳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 순간 누군가 휘청하더니 내 위로 넘어졌고, 이어서 엄청난 물살이 뒤덮었다.
시꺼먼 수렁이다. 어둠이 소리까지 흡수한 듯 멍멍하다. 끈적거리는 숨이 나의 콧속에 엉겨 붙는다. 콧구멍과 허파까지 말라 붙는데 온몸에는 수분이 넘쳐흐른다. 점점 숨이 막히고 의식은 흐릿해진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자꾸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기껏 땅에 떨어진 이어폰을 찾다가 죽는 건가? 평소에 죽음이 죽을 듯이 무서웠는데 막상 닥치니깐 두려움은 없다. 다만 당장 이번 달 월급부터가 걱정이다. 이제 겨우 12일이니 사장은 정확히 그만큼의 월급만 내 통장에 이체할 것이다. 일 년 남짓 다닌 퇴직금은 제때 넣어줄까? 둘이 벌어도 네 식구 먹고 입고 세금 내고 애들 학원비까지 빠듯했는데 앞으로는 수입이 반으로 줄면 어찌 될까? 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슬픔보다는 나로 인해 자신들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모두가 날 원망할 것이다. 내 카드 명세서에 이어폰 구매 금액이 찍힌 걸 보고 아내를 뭐라고 할까? 그것도 그토록 싫어하는 할부라니. 두세 달에 한 번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어머니를 차로 데려다줄 사람도 당장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어서 걱정과 원망뿐이다. 이대로 내 생명을 놓칠 수 없다. 해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다. 다시 온 신경을 하나로 모아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무언가 손발에 만져진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있는 힘껏 움켜쥔다. 앗! 비명이다.
억센 손이 나의 목덜미 부분의 옷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엄청난 힘으로 어디론가 질질 끌려왔고 허우적대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정신은 혼미했지만 눈앞으로 빛이 느껴지고 사람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지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당신 뭐야!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뭐 하는 인간이냐고?! 화가 잔뜩 난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고 나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변태같이 어딜 더듬거려! 무슨 말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저승사자 같지는 않았다. 그 나이 처먹고 할 짓이 없어서 지하철 바닥에서 같은 남자 다리나 만지냐고! 서서히 의식이 또렷해졌고, 남자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열차 안이 아니라 플랫폼에 주저앉아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른쪽 손으로 바닥을 짚는데 내가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시커먼 자국으로 이곳저곳이 더럽혀진 주먹을 펼치자 그 안에 낯익은 빨간 물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잊어버렸던 나의 무선 이어폰이다. 드디어 찾았다! 천지개벽하는 기쁨에 미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남자에게 그걸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남자도 같이 좋아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었다. 죽기 일보 진전의 이어폰도 내 삶도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말이다. 요란한 알림음과 함께 한 무리의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렸다. 경쟁적으로 사람들은 환승구 앞에 줄을 섰다. 이때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반복적으로 외졌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나도 줄을 섰다. 신줏단지처럼 꼭 쥐고 있던 이어폰을 다시 오른쪽 귀에 꽂았다. CONGRATULATIONS ON YOUR SAFE RETURN! WELCOME TO FRIDAY NIGHT NOW! 드디어 어 나만의 음악 세상으로 무사귀환했다. 이곳저곳에서 환영의 환호가 울리면서 환승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나도 리듬을 타며 가볍게 교통카드를 가져다 댄다. 나지막하게, 인도하는 듯한 여신의 소리가 전해진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환생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