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면벽 참선을 해도 깨우치지 못할 수 있지만, 깨우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일 순간 일념으로 깨우칠 수도 있다. 8세기 당나라의 6조 혜능 선사는 스승이 5조 흥인 선사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중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을 듣고 단박에 깨우쳤다고 한다. 마땅히 머물지 않는 곳에서 그 마음을 내라는 이 구절은 머물거나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고, 그런 곳에서 비로소 마음을 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철학 공부하느라 애쓰지 말고 철학을 직접 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남의 글을 수십년 동안 읽어도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직접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깨우치는 경우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액션(action)이라 규정한 바 있다. 그는 파리통 속에 갇힌 자에게 탈출구를 보여주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 말한 적이 있다. 부처도 마찬가지로 고통에 사로 잡힌 자들을 해결해주고자 했다. 사성제(四聖諦)는 고(苦)의 원인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다.
'에세이철학'은 똑같은 의미에서 남의 생각에 올라타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적으려는 철학이다. 자기 생각을 간절히 밝히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술술 잘 풀리는 경험을 하고, 마음 먹은 대로 글이 써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종종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써진다는 말을 할 때가 있는 데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때 온 우주의 기가 나의 머릿 속으로 집중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자기 생각으로 글을 쓰는 일이 정말 재밌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