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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넘어, 김동연>을 읽고

by 이종철

Yes 24에서 신청한 <분노를 넘어, 김동연>(메디치, 2025,4)가 여러 날만에 도착했다. 표지는 일반적인 정치인과 달리 선하고 재기 넘치는 김동연 지사의 얼굴 사진으로 만들었다. 국판 311쪽의 책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이다.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쓴 책이라 그런지 가독성이 좋았다. 박진감이 있어서 서너 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시작하는 프롤로그와 마무리하는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환경을 뒤집는 반란>은 어려운 시절의 개인사 경험을 담고 있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일찍부터 가장 노릇 하느라고 고생하다가 마침내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 부총리에 이르는 이야기는 다소 식상할 법도 하다. 그러나 김동연의 신화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다. 최빈국 한국이 5-60년 만에 세계 국가 규모 10위 안에 든 것 자체가 우리 시대의 대한민국이 이룩한 하나의 신화이다. 김동연은 성장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정신을 익히는 계기로 삼았다.


2장 <자신의 틀을 깨는 반란>은 공직 생활의 초년기를 성공적으로 겪으면서 미시간 대학에서 유학하던 이야기가 나온다. 일전에 내가 쓴 '한국의 1970년대, 야만의 시대'라는 글에 그가 댓글로 차별과 수모를 겪은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말한 적이 있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할 경제기획원 안에서 조차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에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는 말이 부끄럼 없이 김동연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이런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고 그 기득권 구조를 깨기 위한 반란의 한 방식이다. 미시간 대학의 학위 과정에서 김동연은 평생지기가 된 좋은 선생을 만난다. 친근하게 '래리'(Larry)라고 부른 지도 교수와 함께 매주 한 두 번씩 만나 토론을 한 시간이 한 학기에 무려 100시간을 넘었다고 한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런 좋은 선생을 만나서 열심히 한 덕분에 그는 4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석-박사 학위를 다 마쳤다. 김동연은 인복이 많은 사람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장하는 데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맺은 방대한 '휴먼 네트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음을 알 수가 있다. 래리 교수는 그중의 하나이다. 트럼프의 상호 관세 때문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에 처할 것 같자 그는 바로 미시간주로 날아가 절친인 그곳 주지사를 만난 것도 그렇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3장 <사회를 뒤집는 반란>에는 정책 결정론으로 학위를 받은 저자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각계 전문가를 묶어 대한민국 미래를 짠 ‘비전 2030’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 빼어난 정책 구상이 여야의 진영 논리에 묻혀 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그 후 그는 잠시 공직을 떠나 아주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청년들과 함께 하는 경험도 하고,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부총리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다. 공직자와 대학의 정책 결정자로 그가 겪은 이런 다양한 경험이 김동연 개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사회 속으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그의 머릿속에서 샘솟듯이 나오는 아이디어와 문제 풀이의 대안적 사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틀을 새로 짜보려는 그의 정책은 여야의 권력 게임 속에서 실종된다.


4장 <우리 정치를 바꾸는 반란>은 공직 사퇴 후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유쾌한 반란’을 시도한다. 그 첫 번째가 2021년 ‘새로운 물결’을 창당하면서 적수공권으로 2022년 대선 가도에 뛰어든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런 시도를 거의 돈키호테에 가까운 무모한 행위라고 본 적이 있다. 사실 그를 보면 뜻은 높고 강하지만 그를 받쳐주는 지지 세력이나 그가 딛고 있는 자리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주역의 계사전에 나오는 밀운불우(密雲不雨)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른다. 구름은 잔뜩 끼었는데 비가 안 오는 격이다. 재능과 경륜이 넘치는 데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나거나 만들지 못한 것이다. 결국 김동연의 '새 물결'은 민주당의 이재명 캠프로 합류하고 만다. 하지만 대선 후 민주당이 절체 절명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김동연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극적으로 당선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5장 <절체절명의 시간>은 대통령으로서의 역량과 비전이 없는 윤석열 재직 기간 동안 엉망이 되어 가는 대한민국 호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경기도는 많은 경우 중앙 정부와 정책 기조를 달리하는 노선을 걷는다. 그러다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정상적인 비상계엄이 터지게 된 것이다.


6장 <우리가 다시 만날 대한민국>은 2025년 6월 조기 대선 출정식을 알리면서 유감없이 그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이라는 말처럼 민생이 피폐해지고, 행복이 실종된 대한민국을 회생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경제 관료 출신 답게 그는 그 핵심적 문제를 '불평등과 양극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지금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하는 승자독식 구조의 해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이 구조를 깰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모두의 나라, 내 삶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사용하는 이런 구호성 말 한 마디 하나 하나가 평소 그의 깊은 식견과 발랄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아울러 그는 현재와 같은 '기득권 깨기'에 필요한 여러가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로 '대한민국 3대 권력기관'인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검찰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 둘째로 "공직사회와 법조계의 공고한 '전관 카르텔' 기득권을 타파해야 한다." 셋째로 정치 기득권을 타파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 대연정'이란 제목으로 여러가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제안도 제시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그대 함께 가자’라는 구호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김동연은 주저 없이 "나의 정치는 '반란'이다"라고 답한다. 나는 이 '반란'이란 표현이 마음에 든다. 조만간 나올 나의 책 제목도 <철학은 반란이다>이다. 내가 함의하는 반란은 비판과 논증의 칼날로 이루어진 언어의 반란이란 의미이지만, 김동연의 반란은 재기가 넘치는 유쾌한 반란이고, 기득권 구조를 깨는 역동적이고 진정성 있는 반란이다. 이러한 반란은 갈 수록 우하향하는 대한민국 호에 새로운 바람과 활력을 일으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인 김동연이 그런 반란의 맨 앞에 서 있다. 부디 김동연의 앞날에 큰 성공이 있기를!


이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자가 겪어온 사적 공적 경험 등을 진솔하게 써 내려갔기 때문에 읽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김동연은 책벌레라고 할 만큼 바쁜 시간을 쪼개 독서도 많이 하고, 책도 여러 권 썼을 만큼 필력도 뛰어나다. 그런 빼어난 역량들이 이 책에 유감없이 드러나서 읽기가 정말 좋다. 선거철이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책들과는 격이 다르다. 나는 이 책을 손에 쥔 지 서너 시간 만에 독파를 했다. 독자 제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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