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의 오역이 남긴 상처의 각주>

무심한 위로 뒤에 남겨진 진짜 목소리

by 숨결biroso나

​“언어는 우리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감춘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 언어의 방패, 가장 흔한 오역의 순간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거짓 번역'은 무엇 일까요? 아마도 세 글자짜리 문장, "괜찮아"일 것입니다. 이 말은 때때로 사회생활을 위한 훌륭한 방패가 됩니다.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을 한순간에 덮어버리고, 모두가 원하는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게 해 줍니다. 직장 상사에게 혼이 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다퉜을 때, 혹은 중요한 프로 젝트에서 실패했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 단어를 방패처럼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사실 "괜찮아"라는 말은 감정의 원문(Original Text)을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가장 흔한 '오역' 입니다. 그 뒤에는 '당신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라는 착한 마음, 혹은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라는 방어적인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거짓말을 함으로써 우리의 가장 소중한 번역기인 진심을 스스로 고장 내고 맙니다. '괜찮아'는 단순히 습관 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얻는 잠시의 심리 적 안정을 위한 대가이며,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언어가 우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역설의 시작점입니다.




2. 고장 난 번역기가 남긴 상처의 각주


덮어둔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빠진 중요한 내용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각주(footnote)'로 남아 끊임없이 존재감을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의 각주'입니다.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이직과 이별이 겹치는 큰 스트레스를 겪었지만 만날 때 마다 환하게 웃으며 "이제 정말 괜찮아, 다 잘 돼 가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 그녀 의 몸은 달랐습니다. 밤마다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렸고, 신경성 위염과 이유 없는 근육통으로 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진단명은 신체화 (Soma tization)였습니다. 그녀의 본문은 "괜찮다"였지만 각주는 "나는 아직 아프다", "나는 버려졌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고 있다"라고 신체의 언어로 강제 발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병상에서도 '괜찮아'는 자기희생의 언어 였습니다.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제가 병문 안을 갈 때마다 늘 환한 미소로 "응, 엄마는 괜찮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뒤돌아서 병실을 나설 때 새어 나오던 작은 신음 소리, 내가 보지 못했을 때 잡고 계시던 손의 떨림은 그 '괜찮음'이 얼마나 큰 사랑의 거짓말이자 자기희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처의 각주였습니다. 그 '괜찮아'는 '나를 걱정 하지 마라', '네 삶을 살아라'라는 조용한 외침이 었습니다.


"피곤하지만 괜찮아" → 몸은 만성 피로와 통증으로 항의합니다.

"섭섭하지만 괜찮아"관계는 이유 없는 냉랭함 으로 반응합니다.


감정노동자 들이 잦은 두통과 소화불량을 겪거나, 청년들이 막연한 무기력함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 억눌린 감정의 강제 번역입니다. 억눌린 감정은 결국 몸과 관계의 언어로 강제 번역되어 터져 나옵니다. '괜찮아'라는 대리 번역은 결국 대리 고통을 불러오는 언어인 셈입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숨결biroso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께요 [비로소 나다워지는 시간, 숨결로 쓰는 마음] 서툰 하루 속 숨결 같은 위로를 찾고, 흔들림 끝에 마주한 '비로소 나'를 기록합니다.

3,45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불안,흔들릴 때 비로소 보이는 마음의 얼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