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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부끄러움, 마음 가장자리의 언어들>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번역이 완성되는 자리

by 숨결biroso나

"고독은 자아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장 엄숙한 질문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1. 존재론적 침묵, 외로움과 부끄러움의 서막


외로움은 인간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자리에서 피어나는 감정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의 끝자락에서 시작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은밀한 통로 입니다. 기쁨이 삶의 중심에서 폭발하는 감정 이라면, 외로움은 삶의 변두리에서 낮게 진동하는 주파수입니다. 이 감정이 사라지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그림자 뒤편에는 언제나 부끄러움이 따라옵니다.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감추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 그 모순의 자리에 인간의 자각이 시작됩니다.

외로움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존재의 경계를 가장 정확히 알려주는 언어입니다. 지난 화에서 불안 (2화)과 분노(6화)라는 격렬한 감정을 다루었 다면, 8화는 그 파도가 잦아든 후 남는 미세하고 근원적인 감정을 탐구합니다. 외로움은 '연결의 결핍'에서, 부끄러움은 '가치의 결핍'에서 비롯 되며, 이 두 감정은 모두 아직 번역되지 않은 마음 가장 자리의 텍스트입니다.




2. 연결을 원하면서 숨는 인간의 역설

SNS의 화면에는 웃는 얼굴이 넘쳐나지만, 그 화면 뒤에는 언제나 고요한 공백이 있습니다. 연결됨의 아이콘이 깜빡이지만, 실은 그 연결이 더 깊은 고립을 낳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기다리 면서 동시에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관계를 원하면서도 관계가 나를 다 들여다 보는 것이 두렵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존재가 들켜버리는 순간의 불안입니다. 인간은 연결된 채로 고립되고, 고립된 채로 연결 되려는 모순 속에서 살아갑니다. 외로움은 타인 에게 닿지 못한 감정의 여운이고, 부끄러움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다시 인식하는 정서 입니다. 이 두 감정이 교차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번역 중인 존재로 경험합니다.




3. 외로움은 고립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

"외로움은 고립이 아니라,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아렌트는 외로움을 결핍이 아닌 생각의 전제로 보았습니다. 누군가와 분리된 공간에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외로움이 견딜 만해질 때, 인간은 비로소 사유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다릅니다. 고독은 자발적인 성찰의 공간이고, 외로움은 원치 않았던 결핍의 공간입니다. 두 감정이 겹치는 지점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근원과 마주합니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인 상태가 아니라, 아직 연결되지 않은 나의 일부와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외로움은 인간이 자기 언어를 회복하기 위한 번역의 장입니다.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은 결핍을 성찰로, 침묵을 문장으로 바꾸어내며 자기 언어를 세상으로 옮깁니다.




4.부끄러움은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

"부끄러움은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다시 자각하는 순간의 감정이다."
- 이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레비나스에게 부끄러움은 윤리의 출발점 이었습 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 타인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부끄러움은 나는 완전하지 않다라는 자각에서 비롯되고, 그 자각이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성장시킵니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한 이유는 그 안에서 내가 감추고 싶던 나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선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윤리적 성찰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움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감정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윤리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책임을 자각하는 첫 번째 통증입니다.




5. 외로움의 번역 오류: 고독과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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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조용한 위로를 믿습니다.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분들에게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문장을 씁니다. 깊은 숨결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 에세이스트 'biroso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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