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울 때, 냄비가 먼저 끓기 시작한다
사람이 그리울 땐, 냄비 안의 김이 먼저 울컥 인다
겨울의 첫 바람이 창문을 긁는다.
불을 켜기 전 마음이 먼저 식는다.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엄마 냄새나는 음식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토란국.
끓기 시작하면 부엌 가득 퍼지던,
그 흙냄새 섞인 따뜻한 김.
그 냄새만 맡아도
몸 안쪽까지 데워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안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소리
보글보글, 살아 있는 숨의 소리.
수능이 코 앞인 딸이 감기에 걸렸다.
밤새 기침을 하다 목소리가 잠겼다.
“괜찮아, 조금만 쉬면 돼요”
그 말이 딸아이 입에서 먼저 나올 줄 몰랐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감기 걸린 걸 어찌 아셨는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독감주사 맞혔니?”
“아직이요.”
“에휴, 수능 앞두고 요즘 감기 독한데 미리 좀 맞히지. 애 따뜻한 것 좀 끓여 먹여”
그 한숨이 이 오래 남았다.
딸의 감기,
엄마의 걱정,
그 사이에 낀 내 숨결이
갑자기 허공에 걸려버린 듯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엌 불을 켰다.
엄마가 자주 끓여준 토란국 생각이 나서 미리 사 둔 손질된 토란 한 봉지를 꺼냈다.
매끈하고 차가웠다.
칼 끝이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게 잡았다.
토란은 독성이 있어서 한 번 데쳐내야 한단다.
그걸 모르던 시절엔,
그냥 끓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살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는 걸.
뜨겁게 끓기 전에
한 번은 데쳐내야 비로소 맑아진다.
팔팔 끓는 물에 토란을 넣었다.
순식간에 김이 피어올랐다.
짧은 시간인데도
부엌의 냄새가 변했다.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나는 잠시 불을 줄이고,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오래 전의 부엌이 겹쳐졌다.
늦은 가을밤, 하얀 김 속에 잠긴 사람.
그 날씨에도 민소매 차림으로
“덥다, 덥다” 하시며 불 앞에 서 있던 엄마.
문득 그 시절의 엄마 얼굴이 그리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때의 나는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춘기의 시선으로는
그 불이 단지 신경질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온도를 안다.
그 뜨거움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고독의 불꽃이었다는 걸.
그건, 식지 않는 마음을 스스로 견디던 중년 엄마의 뜨거운 온도였다는 걸.
몸속 어딘가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감정은 제멋대로 뜨거워졌다가 식는다.
겉으론 멀쩡한 척하지만, 속은 늘 전쟁터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웃다가도 괜히 서글퍼지고 눈물이 난다.
엄마도 그랬을까,
그걸 이해하는 데까지 반평생이 걸렸다.
토란의 속살은
그 결이 엄마의 마디 굵은 손 같았다.
세월에 데쳐진 주름, 오래 버텨낸 빛깔.
나는 그걸 잠시 들여다보다가,
불 위의 냄비에 다시 넣고
소고기와 볶다가 쌀뜨물을 부어 간을 했다.
토란이 익어가며 국물은 조금씩 탁해졌다.
그 탁함이 좋았다.
삶이란 본래 그렇게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모든 맛은 섞이고,
모든 감정은 눅진하게 끓어야 비로소 깊어진다.
보글보글, 김이 오르는 소리.
누군가의 숨이 부엌 안을 지나가는 듯했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맛도 괜찮았다.
국물이 우러날수록 향이 깊어졌다.
그 냄새는 배고픔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리움의 냄새였다.
그립다는 건,
냄새부터 떠오르는 일이다.
그때 그 맛이,
그 온기가,
지금의 공기 속에서 되살아나는 일이다.
한소끔 끓여낸 토란국 한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두니 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감기로 붉어진 얼굴에
여전히 웃음기는 있었다.
“엄마, 냄새 너무 좋다.”
그 말이 부엌 공기를 또 한 번 데웠다.
“토란국, 할머니가 자주 끓여주셨잖아
뜨끈한 거 먹으라고 엄마가 흉내 내 봤어.”
딸아이가 식탁에 앉아 국물을 뜨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먹으니 할머니 생각난다.
매일매일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
그렇게 한 모금의 국물이
우리 셋을 천천히 이어줬다.
그 김 속엔 엄마의 손,
나의 숨, 딸의 기침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느새 공기는 하나의 결로 이어져
한 계절처럼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감정이란, 데치고 끓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너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게,
너무 식지 않게,
그 적당한 온도를 찾는 일.
그래서 오늘은 불을 조금 줄였다.
국이 천천히 끓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익어갔다.
밤이 깊어갔다.
딸의 방 문틈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기침 한 번,
그리고 다시 고요.
식탁에 앉아 있는 내 앞엔
식어가는 냄비 하나.
그 안엔 여전히 김이 피어올랐다.
그 안에 천천히 한데 섞여 피어오르는
엄마의 숨, 내 숨, 그리고 딸의 숨.
누구는 아파서,
누구는 끓이며.
누구는 냄새로
그 김 안에 모락모락 앉아 있었다.
토란국을 끓이던 내 손이
언젠가 딸의 손이 되겠지.
그때의 냄비엔 또
나의 숨이 끓고 있겠지.
사람이 그리울 때 우리는
그 얼굴보다 냄새를 먼저 떠올린다.
기억은 냄새로 남고,
그리움은 냄비 안에서 다시 끓는다.
그 냄비 위로
보이지 않는 손 하나가 스쳐 간다.
그게 엄마일 수도,
오늘의 나일 수도 있다.
나는 국자를 들어
토란 하나를 건져 올렸다.
입안에 넣자 부드럽게 흩어졌다.
입천장이 살짝 데였지만,
그마저 따뜻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입천장은 좀 데어도, 따뜻한 게 낫다.”
그 말이 다시 내 안에서 끓었다.
김이 옅어질 때마다
그리움은 다시 시작됐다.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에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자꾸 생각난다.
"불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을 닮아 있었다, "
by 《엄마의 숨》 ⓒbiroso나.
끓는 냄비처럼,
잠시 식어도 다시 데울 수 있는 마음.
그게 엄마가 남긴 숨이었다.
김이 피어오를 때마다
나는 엄마의 숨을,
그리고 나의 지금을 함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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