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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스 Aug 26. 2022

딸덕후의 삶

내 이럴 줄 알고 딩크를 꿈꿨건만

딩크로 살아볼까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어른의 외양은 갖추었지만, 깊숙한 내면은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만 믿고 세상에 나올 아이를 평생 책임지고 지지하며 멋지게 길러낼 자신이 없었다. 온갖 범죄와 고난이 난무하는 험난한 세상 속에 아이를 던져 넣어야 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이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내 인생을 아이에게 다 바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지키고 보살펴야 할 존재가 생기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그 존재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려 할 나 자신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아이를 낳지 말까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고 했고, 나도 딩크로서의 확신이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결혼 3년 차에 뒤늦게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아들이기를 원했다. 딸이 살기에 이 세상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였고, 또 딸과 평생 이어나가야 할 정서적, 신체적 유대감이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뱃속의 아이는 딸이었고, 나는 아들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실망을 해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길에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자마자 나는 아이와의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자타공인 딸덕후가 되어버린 것이다.


임신 전 나는 아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이목구비를 가진 깜찍한 아이들은 ‘인형같이 예쁘다’라고 느끼긴 했지만, 마트 장난감 코너에 드러누워 징징대는 아이들이나 식당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이들을 볼 때는 고개를 절로 가로저었던 것 같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 생명체들. 내가 보는 아이의 이미지는 대략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내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아빠를 닮아 쌍꺼풀이 없는 눈도, 볼살이 넘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동그란 얼굴도, 머리숱이 없어 하늘거리는 몇 가닥의 얇디얇은 머리칼도 모두 사랑스러웠다. 큰 쌍꺼풀을 가진 인형 같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아이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게 되니, 길을 가다 만나는 다른 아이들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한 가족의 소중한 보물이고, 또 다소 거칠고 시끄럽게 행동하더라도 그 또한 어른이 되고자 열심히 자라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아이들을 바라볼 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아이는 이제 만 8세, 한국 기준 초등학교 3학년생이 되었다(지금 해외에 살고 있어서 여기 학년으로는 Grade 4이다).

예전에는 초등학생쯤 되면 귀여움을 졸업할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이지만 여전히 정말 귀엽고 아기 같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그란 배를 내밀고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이의 왕만두 같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큰 기쁨 중 하나다.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도시락을 싸는 것이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해달라는 도시락 메뉴는 웬만해선 다 해주고 싶다.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아이를 깨우면, 부루퉁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마지못해 화장실로 향하는 것도 정말 귀엽다. 꿈 얘기, 친구 얘기를 조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식사를 하고, 급하게 책가방을 메고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는 아이와 동행한다.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은 몸과 마음이 좀 편하긴 하지만, 가끔 아이는 뭘 하고 있을까 떠올려보면 다시 왕만두 얼굴이 보고 싶어 진다. 학교를 끝내고 오면 공부 전쟁의 시작. 곧 한국에 돌아가야 하기에 공부를 놓을 수 없어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다 앉혀놓고 이런저런 문제집을 들이민다. 가끔 소리도 지르고 징징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가장 스펙터클한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이를 안고 물고 빨고 어루만지며 저녁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엄마랑 자는 게 제일 좋다는 아이를 위해, 스탠드를 켜놓고 이런저런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며 아이를 재운다.


회사를 잠시 휴직하고 있는 지금, 하루의 대부분을 딸을 위한 딸 덕후의 삶으로 채우고 있는 듯하다. 남편은 ‘자기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해 살라고’ 늘 얘기할 정도로 나의 딸덕후 삶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딸을 만난 순간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져버렸고, 이 사랑을 결코 줄이거나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을. 내 이럴 줄 알고 딩크를 꿈꿨던 건데, 남편은 내가 이렇게까지 덕후로 살아갈 줄은 몰랐나 보다.


글을 쓰다 보니 아이가 더 많이 보고 싶다.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더 힘껏 안아주고, 더 힘껏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줘야겠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덕질의 상대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덕후의 삶을 살아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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