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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스 Jul 05. 2022

엄마는 왜 새벽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셨을까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한 내 엄마의 일상

새벽 5시 45분.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에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철저한 저녁형 인간인 내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아이의 도시락 때문이다. 현지식과 서양식이 적당히 섞여 나오는 학교 급식을 아이가 딱 한 달 먹어보더니, 도무지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울상을 짓기에 어쩔 수 없이 매일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 잠시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매우 이른 시간에 학교에 간다. Primary School은 보통 8시에 첫 수업을 시작하는데, 대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서 나서는 시간은 훨씬 더 이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앞에 아이의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시각은 7시 15분. 고로 엄마인 나는 그전에 도시락을 싸고, 아이를 깨우고, 학교 갈 준비를 시켜 스쿨버스를 태우기까지의 기나긴 미션을 완료해야만 한다. 급하게 전기밥솥에 밥을 지으며 한두 가지 반찬을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왕좌왕, 우당탕쿵탕 거리기가 일쑤다. 이러다가 곤히 자고 있는 남편과 아이가 깨는 것 아닐까 침실 쪽으로 귀를 기울이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엄마는 수퍼워킹맘이셨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지방에 사시다가, 서울로 덜컥 이직한 아빠를 따라 연고도 하나 없는 낯선 동네로 오게 된 엄마. 금수저는커녕 건사해야 할 동생들만 줄줄이 딸린 장남 남편과 멋모르는 철부지 딸 둘과 함께 서울로 오시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의 20대를 생각하면 내 앞가림 하나 제대로 하기도 벅찼던 것 같은데, 어깨에 놓인 수많은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셨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쪼개 써도 줄줄 새어나가 버리는 아빠의 월급에 어떻게든 가계에 도움이 되어보려 엄마는 정말 아등바등 노력하며 사셨다. 내 기억 속의 첫 장면은, 집안 한가득 플라스틱 머리띠와 알루미늄 머리핀대를 쌓아놓고 반질반질한 공단을 예쁘게 붙여 헤어 액세서리를 만드시던 모습이다. 그때는 엄마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예쁜 머리핀과 머리띠가 신기하기만 했고,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까 요리조리 기회만 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눈에는 예쁘기만 했던 그 헤어 액세서리들이 엄마에게는 기한을 맞춰 보내야만 하는 커다란 일감 덩어리 었을 뿐이었을 텐데. 어리기만 했던 나는 그걸 몰랐다. 정해진 개수를 딱 맞춰 보내야 하기에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하나 얻어보려는 딸에게 머리띠 하나 턱 쥐어주지 못했을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 맘도 나는 몰랐다.


내가 국민학생이 되자 엄마는 보험회사로 일자리를 옮기셨다. 처음에는 집에서 부업을 하시던 엄마보다 예쁘게 차려 입고 회사에 가시는 엄마가 훨씬 더 멋져 보였던 기억이 있다. 다만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던 나는 엄마가 없는 빈 집에서 나보다 몇 시간 늦게 하교하는 언니를 기다리며 매일 같이 눈물바람이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비가 내린 날이면 학교 앞에 우산을 들고 오는 다른 엄마들이 부럽다며 엄마에게 여러 번 하소연을 하기도 했고,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 날에도 출근을 하셔야만 했던 엄마 때문에 고작 3살 차이 나는 언니의 등에 업혀 병원을 가기도 해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언니와 나를 돌보아 주지 않고 회사에 나가시는지 이해를 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짜증스럽게 생각했던 것 하나는, 바로 매일 새벽 곤히 잠을 자고 있을 때 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었다. 새벽녘 살포시 선잠에서 깰 때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릇 부딪히는 소리, 냄비를 꺼내는 소리, 뭔가를 요리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와 다시 잠에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왜 꼭 이 시간에 저런 소리를 내셔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도시락을 싸는 아침마다, 그런 불만을 가졌던 철없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셨을 텐데. 좀 더 주무시고 싶으셨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좀 쉬어보고도 싶으셨을 텐데.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새벽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전 날 미처 다 하지 못한 설거지를 마치고 도시락까지 준비하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휴직 중임에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회사에 다니시며 부모님이나 시터의 도움도 없이 모든 것을 준비하셔야 했던 엄마의 아침은 얼마나 벅차고 무겁고 힘드셨을까.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의 아침이, 엄마가 내었던 그 모든 요란한 소리들이 가슴 시리게 느껴진다.




아이 시절 나는 나이 마흔 쯤 되면 엄청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지혜롭고, 주변의 웬만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어른 말이다. 하지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람이란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이 여전히 많이 남은 미성숙한 존재임을 느낀다. 내가 아직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계들도 시간이 지나며 경험을 하다 보면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작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보다 직접 몸을 던져 경험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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