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은 이미 없는데

우리는 왜 아직 거기 서 있는가

by 박정민

No-100

"어차피, 라고 말하기 전에"


파이크증후군과 내가 멈춰 선 자리들


어느 날, 내 안에 오래된 습관 하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전도 해보지 않고 미리 포기하는 버릇이었다.


예전에 수조 속 파이크(강꼬치고기) 실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파이크와 먹잇감 사이에 유리벽을 세우면, 물고기는 처음에는 힘차게 돌진한다. 그러다 머리가 아프도록, 몸이 지치도록 몇 번이고 부딪치다가 결국 멈춰 선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어느 날 유리벽을 치워도, 파이크는 먹이가 코앞에 있는데도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벽이, 이제는 머릿속에 생겨 버렸으니까.


나는 그 물고기가 낯설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그런 유리벽이 적지 않았다. 마흔 즈음,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거로 먹고살 수 있겠어?" 그 짧은 한마디가 수조 속 유리벽처럼 오래도록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한동안 용기를 내어 달려들다가, 상처받고 피하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쓴다고? 그건 분수를 아는 거지.’ 마치 이미 정해진 한계를 인정하는 게 현명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유리벽은 어느새 사라졌는데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파이크증후군이라는 말은 어딘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복잡한 심리학 용어가 아니다. ‘어차피’라는 생각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마음의 벽일 뿐이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어차피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이런 ‘어차피’들이 모여 내 수조가 되고, 유리벽이 되었던 거다. 결국 내가 헤엄칠 수 있는 세상의 크기는 내가 만든 그 벽만큼 좁아졌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수조 안에 있다. 새로운 걸 시작하려다 망설일 때, 누군가의 멋진 성취를 보며 ‘저 사람이니까…’라는 마음이 들 때, 좋은 기회가 와도 먼저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할 때.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내게 묻는다.


지금 내 앞에 정말 유리벽이 있는 걸까? 아니면 예전의 기억, 내 안에 남은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하고 있는 걸까?


그러다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묵혀 두었던 글 한 편을 용기 내어 올렸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뜻밖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남겼다. “이 글 읽고 한참 멍하니 있었어요.”


그 짧은 한 줄이 오래된 유리벽 하나를 조용히 치워 주었다.


파이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한 번만 더 헤엄쳐 보는 것. 어쩌면 이번에는 벽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당신의 수조는 얼마나 넓나요? 유리벽이 벌써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지는 않나요?


삶은 가끔, 우리가 포기했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걸, 오늘도 나는 배운다.


과거의 좌절했던 경험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무기력을 보이는 현상. 1873년 독일의 동물학자 카를 뫼비우스가 수조 안의 창꼬치와 먹이 물고기 격리 실험을 통해 창꼬치 증후군을 입증했다. 1975년에는 마틴 셀리그먼이 개의 실험에서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제시했는데, 창꼬치 증후군은 이후 '학습된 무기력'의 주요 예화로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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