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몹시도 귀여운 친구지요.(물론 객관적으로 보아도 예쁘지만 말입니다.)
유리창 너머 펼쳐진 너른 하늘을 즐기는 풍류 있는 거북이, 느릿한 발로 집안 여기저기를 쿡쿡 쑤시고 다니는 소심한 거북이,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면 하늘이 두쪽 나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절개(?)있는 거북이입니다.
거북이의 하루는 분주히 움직이는 제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가족들 모두가 일어난 아침. 각자의 아침을 맞아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아빠와 할머니 사이에서 거북이는 아직도 꿈나라를 여행 중입니다.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온 집안을 밝혀도 꿈나라를 헤매는 거북이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죠. 자, 그럴 때면 제가 나설 때입니다.
가볍게, 그러나 끈즐기게 톡톡톡톡 연거푸 볼을 두들기면 결국 거북이는 손을 들고 맙니다. 당최 못 이기겠다는 듯 커다란 눈을 꿈벅대며 깨어나지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는 거북이 앞에는 어느새 푸짐한 밥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제 서툰 음식 솜씨로 차린 아침 식사입니다.
밥상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간 거북이는 늘어지는 하품을 한 번 뽑아내곤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호를 그을 때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찾을 때도 있지요. 거북이가 제발 숟가락을 집어 들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누군가는 사람이 종교를 하나만 가져야지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고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군복무 시절 교회와 절과 성당을 오가며 세례와 수계와 영세를 모두 받은 사람이거든요. 수호신이 많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제 기도가 끝날 때쯤 거북이는 신중하기 그지없는 식단 탐색을 마칩니다. 다행히 기도가 먹힌 모양입니다. 의자에 붙인 궁둥이를 한 번 들썩인 거북이가 냉큼 숟가락을 집어 들어 밥 한 숟갈을 떴습니다. 그러자 거북이를 지켜보던 제 입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거북이가 요 며칠 아침밥을 한사코 마다하는 바람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꽉 차버렸거든요. 어제는 소고기, 그제는 돼지고기, 그끄저께에는 굴비 등등등.
가끔은 이 녀석이 혹시 광합성이라도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분명 잘 뛰어놀기는 하는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없으니 괴이쩍을 따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 들여 준비한 밥을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버릴 때의 서운함은 부모들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밥을 거부한 주제에 과자를 달라고 때를 쓰면 정말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오늘 차려준 아침밥을 아이가 싹싹 긁어먹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줄 때면 그런 감정 따위는 눈 녹듯 사라지곤 합니다.
그저 "예쁜 내 새끼, 예쁜 내 새끼."만 연신 내뱉을 따름이지요.
그리고 이쯤 되면 독자 여러분들도 눈치채셨겠지요.
예. 제가 키우는 거북이는 바로 사랑스러운 우리 네 살배기 아들입니다.
생후 30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말 한마디 내뱉기는커녕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싶은 아들. 발달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저와 아내의 속을 썩이다 썩이다 못해 한 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아들이지요.
이제 우리 거북이와 가족의 이야기, 생각지도 않았던 제 육아휴직의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