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싶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내 나이 32살 다니던 6년 다닌 소프트웨어 회사를 관두게 됐다.
발전하는 소프트웨어 시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후배들의 치고 올라오는 실력 또한 부담감이 꽤나 컸으므로...
18살 이후 처음 쉬어보는 휴식 나름 처음 3달은 행복감에 젖어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 날이 80%는 된 거 같다.
이후 조금은 눈을 낮춰 내 실력으로도 갈 수 있는 회사를 알아보니 경쟁률은 말도 안 되더라.
상반기 공채에 맞춰 취업을 준비하며 면접 날짜가 잡히기 시작했다. 면접 가기 전 기분 전환하기 위해 새 출발 의미로 가게 된 등산. 그만 내려오는데 구르고 말았다. 결과는 왼쪽 발목과 발등, 오른쪽 복숭아뼈에 큰 부상을 입었다.
눈앞에서 놓친 면접들 때문에 상반기 공채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여름은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숨을 고르며 지냈다.
3분기 마지막인 9월 내 선택의 포기로 인하여 실업급여는 없었고, 통장에 남아있는 돈은 얼마 없으니 이제 슬슬 마음이 답답해지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머릿속은 끊임없이 상념에 젖어들고 실패했다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하반기 공채에 첫 질문은 늘 1년이나 쉬었는데 왜 쉬었는지 물어봤다. 나름 쉬면서 업종에 맞는 자격증도 2개나 합격하고 준비했지만 결과물보다 1년이나 쉰 거에 초점이 맞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30번이 넘는 면접을 봤고, 계속 떨어지고, 면접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으면 술을 찾게 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 안주는 집에서 눈치 보며 점점 방 안에서 면접날이 아니면 나오지 않게 됐고, 숨기 시작한 거 같다.
면접을 제외하고 오랜만에 나온 약속 결혼식 하는 친구 청첩장 모임에서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33살이면 그래도 한번 업종 변경은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도 잘하고, 친화력도 좋은 내가 움츠러드는 게 보기 안 좋았나 보다.
그래서 33살의 나이로 신입을 뽑는 다른 업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드웨어 회사가 눈에 들어왔고, 회사에서 공부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는 회사였다. 면접을 총 4번 봤고, 결국 합격했다.
첫 출근한 날 회사 분위기는 따뜻했고, 왜인가 해서 옆자리 직원에게 여쭤보니 6월 말과 12월 달 말만 예민하다고 말해 주셨다. 내년 6월에 겪어 보겠지만 그전에 열심히 공부해서 책잡힐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퇴근 후 집에 오는데 업종 변경을 얘기해 준 친구가 집 앞에 있었다.
면접 떨어지고 술살돈 없을 때 밥 먹는다고 거짓말하고 한 푼 두 푼 빌렸는데 술 먹은 건 역시 눈치챘었다. 모른 척해준 게 고맙고 들킨 게 멋쩍어서 치킨에 맥주 한잔만 먹었다. 별 얘기 없이 1시간 있다 헤어지면서 "금요일 날 코 삐뚤어지게 마시자. 내가 살게!" 하니 "먹자! 근데 지금 얻어먹으면 싼 거니까 월급날 얻어먹고, 내가 산다!" 그래서 "그럼 초밥 사줘!" "미친놈" 낄낄 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글을 끄적였다.
짧았지만 길었던 1년 인생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모른다는 걸 배웠고, 이래서 이직하고 퇴사하는 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