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활을 마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은 양면의 감정을 오가며 흔들린다. 달력의 숫자들이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퇴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모니터에 띄워진 결재 문서를 처리하고, 간간이 팀원들이 들고 오는 계획서와 보고서에 가필을 하기도 하고, 후배들과 점심을 먹는 일상이 여전히 계속되지만, 그 모든 시간의 끝에 다가서고 있다는 예감은 종종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만든다.
삼십 년을 훌쩍 넘긴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1991년 겨울, 중앙동에 자리했던 부산시청 외벽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종 공고문이 붙어 있는 그 벽면 앞에 서서, 나는 내 이름을 찾기 위해 목을 길게 뺐다. 전화로 합격 소식을 이미 들었음에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전지 크기의 청색 공고지에 빼곡히 인쇄된 '부산직할시 지방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 사이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심장 박동은 지금도 귓가에 울린다.
청사진 위에 새겨진 이름 하나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청 공중전화 부스에서 떨리는 손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어머니의 울먹임은 그 순간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게 했다. 합격이라는 사실보다도, 그 순간의 떨림과 울컥함, 스스로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더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당시 공무원 시험은 지금처럼 치열하진 않았지만, 결코 쉬운 관문은 아니었다. 내가 응시한 보건직렬은 관련 전공자들이 대거 몰렸고, 응시자의 많은 수는 이듬해 대학을 졸업하는 대학 4학년이었다. 이후 동기 모임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그들 중 가장 어렸고 나보다 열한 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합격자 20명 중 고졸은 나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시청 인사과의 수요 예측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합격 발표 이후 1년여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발령을 받았다. 1993년 3월, 내가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부산 서구청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안고, 나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서구청의 낯선 복도를 걸었다. 새하얀 벽과 번들거리는 타일 바닥, 사무실 한편에서 낮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까지, 모든 것이 생경하면서도 또렷하게 내 기억에 각인되었다.
2025년 5월, 나는 33년째 공직의 길을 걷고 있다. 퇴직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년 6개월 남짓이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무상함이 느껴진다.
퇴직 이후의 삶을 상상하면 서로 다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온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제 편히 쉬면서 여가 생활이나 즐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도 인생은 길고 재취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퇴직한 선배들의 조언이 귓전을 때린다.
공직자로서의 시간이 끝난 후에 다시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할지를 생각할 때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스물세 살에 시작한 일이니, 퇴직할 즈음이면 무려 37년을 한 자리에서 일한 셈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길을 걸어왔다면, 그때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에 시계 알람 없이 눈을 뜨고, 평일 한낮에 여유롭게 거리를 걸으며 따스한 햇살 아래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쓴맛을 음미하는 일상을 그려본다. 그런 나만의 시간을 조용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그 여유가 잠시일 뿐, 반복되는 고요함 속에서 내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둘 사라져 갈까 두렵다. 정해진 출근길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책임져야 할 업무도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세상이 내게서 한 발짝 물러선 듯한 허전함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퇴직 이후 남은 생은 20년, 백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에는 어쩌면 40년,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함이 엄습한다. 독서나 여행, 운동, 글쓰기 같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그 긴 시간이 충분히 채워질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내 삶이 다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소속감'보다는 '쓸모 있음'이 더 절실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주변의 몇몇 퇴직한 선배들은 복지시설에 기관장으로 일하는가 하면 더러는 행정사로서 행정심판 청구 서류 작성을 대행하거나 음식업소 영업주를 대상으로 식품위생법과 식중독 예방 교육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물론 수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침에 눈 뜨면 어디 갈 곳이 있다는 거야."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민이 깊어진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65세면 또다시 퇴직해야 하고, 행정사로 일한다면 퇴직할 일은 없겠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감을 찾아야 하는 고단함이 기다린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체력과 여력이 있을 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는 봉사활동 같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확실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허전하지 않을 활동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은 단순한 업무의 종료가 아니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온 역할을 내려놓고,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일과 직책을 벗어난 후에도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깊이 묻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질문이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 사치를 누려볼 자격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5년 6개월 동안, 나는 퇴직 이후에도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삶의 구조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야겠다. 꼭 직업의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하루의 리듬, 사람과의 진정한 연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의미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이유, 그런 것들이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지난 30여 년간 직장에서의 시간이 흘러갔듯이, 앞으로의 시간도 언젠가는 흘러갈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더 이상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기를 소망한다.
첫 임지에서 임용장을 받던 날의 설렘과 긴장,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드렸던 선물, 승진 소식에 함께 기뻐했던 동료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이제 그 마지막 장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서른두 해 동안의 공직 생활이 내게 남긴 것은 연금이나 퇴직수당만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리듬과 질서,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시간의 무게다.
종이에 남겨진 공적인 기록들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순간들은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퇴직이라는 문턱을 넘어설 때,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남은 공직 생활 동안 내가 걸어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