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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등석 Nov 22. 2021

웨리

 

 시골에 사는 동물들의 이름을 추측해볼 수 있는 팁을 주고 싶다. 개들은 웨리 아니면 해피, 고양이들은 나비, 소들은 누렁이, 닭들은 꼬꼬라고 부르면 대충 맞다. 우리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웨리는 아버지가 이웃집에서 얻어 온 몸집이 작은 강아지였는데, 그 녀석 역시 시골의 법칙에 의하여 웨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웨리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똑똑한 놈이었다. 낯선 사람이 오면 마당에서 맹렬하게 짖어 할머니를 지켜주었으니, 그녀의 호위무사나 다름이 없었다. 할머니 댁은 울타리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웨리도 목에 줄을 하고 살아야 했다. 밭을 이리저리 밟아 농작물을 헤치고 다닌다는 이유로, 길가에 똥을 싼다는 이유로, 남의 집 신발을 물어간다는 이유로, 이웃 간에 자주 다툼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시골의 개들은 목줄을 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웨리도 마찬가지였다. 갈색 빛깔의 털을 가지고 있는 웨리는 꼭 밤톨만 하였다. 할머니 댁에 온 지 꽤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집은 커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줄에 묶여 있어 더 작아 보였다.


 아버지의 생일날 나는 웨리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김장을 하여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나는 술을 몇 잔 얻어먹고는 밖으로 나와 웨리를 찾았다. 웨리의 집에 녀석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웨리의 행방을 물었고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며칠 전, 새벽녘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아버지의 눈에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모를 허전함의 이유는 웨리의 부재였다. 웨리가 묶여 있던 줄이 끊겨 있자 아버지는 개장수가 훔쳐 간 줄 알고 망연자실하셨다고 한다. 짐승도 정이 들기에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서운한 건 사람과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쉬고 있는 그 순간 웨리가 나타나 아버지를 반겼다.


 아버지는 놀라서 웨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웨리는 그런 아버지를 뒤로하고 새침하게 창고로 향했다. 아버지는 아무 생각 없이 웨리를 따라갔고, 창고 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을 때 입는 옷가지 사이로 웨리의 새끼들이 네 마리나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웨리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 워낙 몸집이 작았기 때문에 배가 불러온지도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매정한 세태라지만 새끼를 밴 짐승을 함부로 방치할 만큼의 시골인심은 아니다. 아버지는 웨리에게 많이 미안해하시며, 미역국과 닭국 등으로 극진한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웨리의 그날을 떠올리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 웨리는 추운 겨울날 새끼들이 혹시나 얼어 죽을까 봐 목줄을 끊었다. 그 작은 몸과 작은 입으로 온 힘을 다하여 질긴 운명의 줄을 스스로 끊었다. 사력을 다하여 자신과 새끼들을 옮긴 뒤에야 웨리는 잠깐의 휴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웨리는 나에게 치열한 생의 장면을 참 처절하고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교구


덧붙이는 글) 위의 이야기는 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녀석이 정말 기특하여 교구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교구의 새끼들은 할머니의 지인들에게 분양되었고, 교구는 할머니와 행복하게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어 할머니를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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